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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계율연구, 미지의 세계 개척한 독보적 성과”
한국불교선리연구원 21일 ‘호암당 인환 대종사 추모 학술회의’
2019년 10월 23일 (수) 14:40:56 이창윤 기자 budjn2009@gmail.com
   
▲ 최동순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가 ‘호암당 인환 대종사의 생애와 스승 원허 스님과의 불연(佛緣)’을 발표하고 있다.

재단법인 선학원 부설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고문을 지낸 호암당 인환 대종사의 삶과 학문세계를 조명하는 추모 학술회의가 10월 21일 오후 2시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지하 3층 만해홀에서 열렸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원장 법진)이 주최한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최동순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가 ‘호암당 인환 대종사의 생애와 스승 원허 스님과의 불연(佛緣)’을, 신규탁 연세대학교 교수가 ‘호암당 인환 대종사의 선학 연구와 사상’을, 이자랑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가 ‘호암당 인환 대종사의 계율학 연구와 사상’을 각각 주제 발표했다.

최동순 교수는 주제 발표문에서 자신이 채록한 인환 스님의 영상 구술자료를 토대로 인환 스님과 스승 원허 스님의 삶을 △지계 청정 △선정 생활 △불교학 연구 △소욕지족의 수행생활 등 네 가지로 나누어 비교·조명했다.

스승 원허 계승…지계·도제양성·무소유 실천

   
▲ 최동순 교수.

최 교수는 먼저 “평생 지계를 청정히 한 인환 스님의 삶은 스승인 원허 스님을 계승한 것”이라고 밝혔다. “청담 스님 등 금강산 마하연에서 수행한 많은 스님이 원허 스님을 지계행에 철저했던 스님으로 증언했다”고 밝힌 최 교수는 인환 스님이 평생 계율을 연구하고 지계행을 이어간 것도 평생 지계행을 지속한 원허 스님의 삶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정 생활’에 대해 최 교수는 “인환 스님은 학승의 길을 걸었지만 일과에서 좌선생활을 그치지 않았다”며, “원허 스님 또한 금강산 마하연선원의 운영을 지원하고, 표훈사에 선원을 개설·운영했으며, 수좌들을 아낌없이 지원했다”고 밝혔다.

‘불교학 연구’에 대해서는 “인환 스님은 도제를 양성하고, 계율학 연구와 선리연구로 학술연구의 업적을 남겼다”며, “원허 스님은 비록 연구자는 아니지만 당시 불교 엘리트를 중심으로 금강산 불교회를 조직하고 김태흡, 석전 한영 등 연구자를 지원했다”고 말했다.

‘소욕지족의 수행생활’에 대해서 최 교수는 “인환 스님은 연구생활과 학술발표 활동을 활발히 했으나 법맥 제자 양성이나 도량 개산은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인환 스님의 이런 모습은 원허 스님의 무소유를 계승한 것”이라고 보았다. 원허 스님은 표훈사와 낙산사 주지를 역임했지만, 입적 당시 한두 벌의 옷만 남겼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인환 스님이 남긴 유품은 대부분 불교학과 관련된 책”이라며, “학술자료인 서책이나 문서에 대한 의욕은 강했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인환 스님과 스승인 원허 스님은 전쟁과 분단의 혼란과 함께 북한을 탈출해 에데올로기의 긴장 속에서도 꿋꿋하게 사문의 길을 걸었다”며, “비록 북한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불교학은 물론 철저한 지계와 자비행, 예경에 지극정성을 다했으며, 조계종에 공헌했다”고 평가했다.

“문헌비평보다 ‘증도가’의 의도 전달 위해 노력”

   
▲ 신규탁 교수.

신규탁 교수는 주제 발표문에서 인환 스님의 저술인 《증도가》와 《선리참구》를 통해 인환 스님의 선사상을 살폈다. 《증도가》와 《선리참구》는 인환 스님이 재단법인 선학원이 발행하는 <월간 선원>에 연재한 것을 한국불교선리연구원이 엮은 책이다.

신 교수는 인환 스님이 선 관계 문헌을 다루는 방식이 계율학 관련 문헌을 다루는 방식과 달랐다고 지적했다. “인환 스님은 계율 분야의 종합적 저술이나 단편적인 글에서는 일본불교학계에서 훈련된 면모를 있는 그대로 살려 섬세하고 근거 있는 필체를 드러냈다”며, 이에 비해 “선 관계 글에서는 텍스트를 교감하고, 주석하고, 필자의 진위를 따지고, 사상의 계보와 영향 관계를 논하기 보다는 《증도가》 책 자체가 전하려고 하는 의도를 읽은 대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이를 두고 “인환 스님의 ‘읽기’는 평생 수행자의 본분을 지켜 사신 ‘품격’이 그대로 노정되어 있다”며, “고요하시고, 지혜로우시며, 잔잔하시고, 자애로우시며, 실천적이시고, 일상적이시며, 깨끗하시고, 근검하시며 총명하신 영혼과 언어로 점철돼 있다”고 평가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인환 스님은 《증도가》를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고 일정한 형식으로 서술했다. 본문을 34단락으로 나눈 다음 원문을 싣고 우리말로 번역한 뒤 글을 다듬었다. 이어 용어를 쉽게 풀어 해설한 뒤 해제를 붙이는 형식으로 꾸몄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또 다른 저서 《선리참구》를 통해 선에 관한 인환 스님의 생각도 살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인환 스님은 선 수행에 있어 중요한 것으로 수행자가 직접 수행한 다음 선지식 앞에 나아가 면전에서 점검하는 ‘참사문법(參師問法)’을 들었다. 인환 스님은 참사문법으로 인해 다양한 선풍이 생겼지만 공통되는 점이 있다고 보았는데, 그것은 “모든 것을 진리의 모습으로 보는 마음을 체험하고, 모든 것을 존중하는 마음을 전심전력을 다해 체험하고, 지금 여기에서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확립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끝으로 “문헌 연구는 학자마다 완성도의 높낮이, 문헌 섭렵 범위의 넓고 좁음이 다를 뿐 학풍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지만 가풍이나 기품은 다르다”면서, “인환 스님의 선사상 가풍은 스님의 회고 말씀대로 ‘수도의 요점은 자기가 그때, 그 자리에서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방대한 자료 검토·치밀한 분석 ‘추종 불허’

   
▲ 이자랑 교수.

이자랑 교수는 주제 발표문에서 인환 스님의 박사학위 논문인 <신라불교계율사상연구>와 이것을 우리말로 번역해 출판한 《한국불교계율사상연구》를 중심으로 신라불교계율에 대한 연구 성과와 특징을 살폈다.

이 교수는 인환 스님의 계율 연구에 대해 “황무지를 개척한 것과 다름없다”고 평가했다. “인환 스님이 박사학위 논문인 <신라불교계율사상연구>를 출판할 당시 한국불교계의 계율에 대한 연구는 매우 소홀했다”고 밝힌 이 교수는 “일본학계에서도 이와 관련한 전문적 연구 논문은 거의 발표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인환 스님이 박사학위 논문에서 방대한 자료를 검토하고 치밀하게 분석한 점에도 주목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인환 스님은 불교가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며 문화와 사회의 여러 방면에서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쳐왔다는 점을 감안해 계율 역시 인간과 사회와의 여러 관계까지 포함해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환 스님이 신라불교의 계율사상을 연구하면서 계율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료만 검토한 것이 아니라 신라불교 전체를 들여다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검토하고 소화해 그 속에서 계율 실천의 실상을 밝혀낸 것은 이러한 생각과 노력의 결실이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인환 스님은 한국이 중국불교를 그대로 수용했다고 하는 기존 이해를 비판했다.”며, “인환 스님은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수용 후 한국 고유의 신앙이나 문화 등과 융합하면서 독자적 발상과 형태를 이루었다고 보았다”고 밝혔다. 다분히 분파적 경향이 짙은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은 각 교리를 위화감 없이 융합해 종합적 통불교를 만들어 왔으며, 계율 역시 사상과의 융합을 통해 실천되는 독창적인 현상을 보인 것으로 파악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론과 실천의 양면’은 인환 스님이 신라불교를 설명하는 기준”이라며, “인환 스님은 신라 불교인들이 융합적인 입장에서 교리(이론)를 이해하고, 나아가 이 융합된 교리에 다시 계율을 융합해 실천하는 특징을 보였음을 밝혔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인환 스님은 ‘사상과 실천의 융합’이라는 일관된 시점에서 계율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이나 인물을 해석하며, 그 실상을 파악했다.”며 “인환 스님이 신라불교계율사상을 연구하며 밝히고자 했던 핵심은 ‘신라인들의 삶 속에서 계율은 신라인의 문화나 신앙, 그리고 불교 교리와 어떻게 접목해 가며 현실적으로 기능해 갔을까’였다”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인환 스님이 이를 위해 폭넓은 시각에서 신라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조망하고, 이를 기반으로 신라불교계율을 특징을 파악해 나간 것은 지금의 연구자들도 본받아야 할 연구 태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끝으로 “인환 스님의 신라불교계율사상 연구는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한 독보적인 성과”라며, “이 사실 만으로도 인환 스님의 공적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 첨석 대중이 주제발표에 앞서 호암당 인환 대종사를 추모하는 입정을 하고 있다.

“수행과 학문의 정신 계승하는 기회 삼아야”

한편,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법진 스님은 추모 학술회의 인사말에서 “호암당 인환 대종사님은 현대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학승이었다”며, “일본 유학을 마친 스님은 동국대학교에서 교수와 정각원장, 불교문화연구원장, 불교학술원장 소임을 맡아 후학 양성에 매진하셨으며, 1996년 정년퇴임 이후에도 교육과 포교에 소홀함이 없으셨다”고 회고했다. 법진 스님은 또 “스님께서는 후학에게 자료를 보고 분석하는 법부터 글 쓰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자상하게 때로는 준엄하게 일러주셨다”고 밝히고, “스님의 불교학에 대한 열정과 지도 적분에 한국불교선리연구원은 선학원의 정신적 기조와 나아갈 방향을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진 스님은 끝으로 “오늘 학술회의는 호암당 인환 대종사를 추모하는 자리이지만, 스님의 학은(學恩)을 입은 모든 이들은 스님의 수행과 학문에 대한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본분에 충실하고 덕욱 정진해 덕화에 보답”

인환 스님의 전계제자인 양주 지장사 회주 대운 스님은 ‘추모사’에서 “스님은 노년에 보행도 불편해지고 눈은 어두어졌으며, 귀도 조금씩 멀어져 작은 소리를 듣기가 어려워지는 지경에 이르셨으나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시고 적적요연한 경지의 청정본연으로 돌아가기 좋은 기회로 삼으셨다”고 회고하며, “큰스님에게 이 사바세계는 그대로 정토요, 법계였다”고 말했다.

대운 스님은 또 “수행의 요점은 자기가 그때, 그 자리에서 해야 하는 일이다. 공연한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고 마치 물 흐르듯 하면서 조금도 걸리는 바 없이 행하는 것이라 하셨다”며, “수행자로서 본분에 충실하고 더욱 정진해 큰스님의 덕화에 보답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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