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부에서 도반 오르는 구간은 걷기에 좋았습니다. 평탄했고, 풍경은 아름다웠습니다. 길 양쪽으로 대나무가 울창했으며, 아래쪽으로는 계곡이 흘렀습니다. 계곡물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바람소리와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걷는 게 보약인지 한참 걷다보니 피로감도 없어지고 기분도 한결 좋아졌습니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도반에 도착했습니다. 도반을 그냥 지나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해가 떠오르기 전이라 걷는 것이 덜 추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포터는 우리를 찻집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실내라고 하여도 난방장치가 없기 때문에 춥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손님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레몬차를 마시고 남편과 포터는 커피를 마셨습니다. 뜨거운 게 들어가니까 몸이 한결 따뜻해졌습니다.

도반에서 1시간 정도 쉬었습니다. 도반도 시누와만큼 경치가 빼어난 곳이었지만 아직 햇볕이 없어서인지 흥이 나지 않았습니다. 사진 찍는 일도 참 귀찮게 여겨졌는데 남편은 열정이 넘쳤습니다. 도반이 특히 풍경이 예뻐서 좋은 사진이 많이 나올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프레임 안에 잡히는 아름다운 풍경에 흥분했는지 남편은 완전히 신났습니다. 그는 정말 히말라야에 사진 찍기 위해 온 사람처럼 사진 찍기와 동영상 촬영에 매달렸습니다.

도반에서 히말라야호텔 오르는 구간도 340m정도 높이 차이가 있는데도 양호한 경사를 이루며 길이 대체로 평탄했습니다.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조용하게 걸었습니다. 히말라야 호텔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햇볕이 느껴졌습니다. 껴입었던 옷을 하나씩 벗으면서 걸었습니다. 햇볕이 있을 때와 없을 때는 온도차가 컸습니다. 햇볕이 없으면 겨울 날씨이다가 해만 뜨면 봄 날씨로 변했습니다. 따뜻한 봄 날씨가 되자 이제야 행복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히말라야에서는 햇볕이 행복의 원천입니다.

히말라야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히말라야 호텔에는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거나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대체로 포터들은 햇볕을 쬐고, 트레커들은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 히말라야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트레커들.

포터가 주문지를 들고 왔을 때 난 볶음밥과 라면을 주문했습니다. 빵, 피자도 먹고, 네팔식 국수도 먹어봤지만 우리에게는 라면과 볶음밥이 가장 맞았습니다. 특히 이렇게 많이 걸어야 하고, 추위에 떨어야 하고,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는 먹는 거라도 잘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라면 아니면 볶음밥, 삶은 감자를 번갈아 가면서 먹었습니다. 안나푸르나 트래킹 코스를 가장 많이 찾는 사람이 한국인이어서인지 트레킹 구간 내내 신라면을 팔아서 언제든 뜨겁고 매운 국물을 먹을 수 있어서 편했습니다.

우리 옆 테이블에 앉은 중국인 가족도 우리나라 라면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에서 누군가 물병을 가져 갔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남편한테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자리를 잡았는데 알고 보니 어떤 외국인이 물병으로 자리를 잡아놓았던 것’이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돌렸는데 우리 왼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물병 주인이 보였습니다. 괜히 뜨끔해서 얼른 라면그릇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식사 후 뜨거운 물을 사서 커피까지 마셨습니다. 역시 너무 맛있었습니다. 히말라야 호텔은 특별히 풍광이 좋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붐비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다들 행복해 보였습니다. 우리 같은 경우는 이제 정상이 얼마 안 남았다는 설렘이 있고, 하산하는 사람들은 목적을 이룬 기쁨이 있어서인지 여기서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행복한 기운이 넘쳐났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물병을 들고 갔던 외국인이 말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내가 남편한테 수군거린 것과는 다르게 한국인이었습니다. 이상한 말이라도 했으면 큰일 날뻔했습니다. 외국에서 의외로 이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국인이 없는 줄 알고 다른 사람 흉보다가 한국인을 발견하고 당황한 경우가 몇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말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 히말라야호텔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포터들의 모습.

물병 주인은 혼자서 포터와 산에 올라온 연극배우라고 했습니다. ‘역시’하고 감탄했습니다. 평범한 외모가 아니었기 때문에 외국인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포카라로 내려가 잠시 쉬었다가 다시 에베레스트 산을 올라갈 거라고 했습니다. 난 추운 밤이 너무 지긋지긋해서 얼른 산을 내려가고 싶은 생각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오래 산에 있을 생각을 하는지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그는 친절하기까지 했습니다. 고산증 약으로 약국에서 다이아목신을 사왔다고 하니까 그건 부작용도 많다면서 자신이 갖고 있던 아스피린을 네 알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ABC 올라가기 전에 한 알 먹고 잠자기 전에 한 알 먹으라는 설명까지 해주었습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정말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모르고 테이블을 차지했을 때도 자기가 잡아놓은 것이라고 할 법도 한데 순순히 양보하고, 아스피린까지 나눠주는 모습에서 마음이 푸근해졌습니다.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연극배우로서 성공하기를.

대체로 산에 올라오면 사람들이 친절해지는 것 같습니다. 같은 한국인을 만나면 사람들은 격려해주거나 약을 나눠주고, 걱정해주고, 자신이 아는 정보를 최대한 나눠주려고 하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많이 보였습니다. 산을 걷는 것이 사람을 선량하게 만드는 모양입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넓은 마음을 갖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