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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꽃’으로 만드는 불화
-현대불화 박경귀 작가
2019년 09월 23일 (월) 13:28:09 박선영 기자 budjn2009@gmail.com

여기 컵이 있다. 정확히 물이 2/1 든 컵이다.

그런데 얼핏 본 사람들은 2/1이 넘는다고 하고 어떤 이는 모자란다고 한다. 하지만 실측을 해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우선 우리는 정확하게 현상을 인식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각자 해석의 영역이다. 어떤 이는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고 어떤 이는 조금 남았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이는 관심이 없고 등등 자신의 성품, 살아온 배경, 현재 자신이 원하는 바, 즉 상황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박경귀 작가는 ‘인식’과 ‘해석’의 두 가지로 세상을 본다. 정확한 인식, 그리고 연기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긍정적 해석이 그를 이룬다.

   
▲ 불화작업 40년, 자신만의 세계를 확고하게 세운 박경귀 작가를 갤러리 까루나에서 만났다.

오윤 선생의 권유로 불교미술 전공, 새로운 인생 펼쳐져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불화를 접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형이 생업으로 불화를 그렸는데 그도 13세부터 옆에서 도왔다.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해 미술을 전공하면서, 실기담당 오윤 선생을 만났다. ‘현실과 발언’이라는 모임으로 당시 독재에 항거한 오윤 선생, 그는 조각으로 시작해 판화로 민중을 표현했고 후에는 불화에서 우리 회화의 뿌리를 찾아 감로도 형식을 그렸다. 고교생 박경귀는 홍익대에 갈 생각이었지만 오윤 선생은 그가 불화와 밀접하다는 내력을 알고는 동국대 불교미술과를 추천했다. 스승의 권유에 따른 박 작가는 불교미술과에 입학했고, 그때부터 새로운 인생이 펼쳐졌다.

형을 통해 접한 불화는 시대도 한정되고, 도제교육의 영향으로 한쪽 경향성이 두드러진 것이었는데 대학에 들어가서 전 시대의 불화를 보게 된 것이다. 남들과 달리 자신은 불화작업을 직접 해왔기에 자만심을 갖기도 했는데, “내가 알던 불화가 다가 아니었구나” 하는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불교는 피상적이고 관념적’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됐고 이제 불교가 자신의 신념이 되기 시작했다.

졸업을 즈음해 작업실을 구하고 작업에 전념했다. 고려불화의 디테일한 표현력에 감탄하면서 그것을 뛰어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연구하고 매진하는 시기였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몰두했다. 그런 노력으로 불화에 관해서만큼은 충만한 자신감이 차올랐다.

40대 중반이 되자 종교미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 지 고민했다.

“현대 작가들은 자신의 고민과 기쁨 등을 작품에 담지만 불교미술은 이타적인 미술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인의 선한 내용을 가지고 발전해왔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거지요.”

이전까지 단순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면 이후에는 관심의 테두리가 넓어지면서 이타적인 회화로 자연스레 주제가 바뀌었다. 이 지점에서 ‘불이(不二)’가 등장한다. 무생물을 포함해 모든 것이 서로 연기됐다는 것을 깨달으며, ‘너’와 ‘나’를 떨어뜨려 생각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 Link Buddha_잊지않으마 61X133cm(2014)
   
▲ 무우수꽃 석존55X120cm(2017)

 

 

 

 

 

 

 

 

 

 

 

 

 

 

 

‘삶을 위로는 따듯한 그림’이 불화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의 생계를 어린 나이부터 도운 탓에 ‘애늙은이’라는 별명을 가졌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존재에 대해 고민했다. ‘나’는 온전하게 ‘나’일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너’이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온전한 ‘나’란 무엇인가. 그의 고민을 처음 해결해준 것은 대학 재학 중 학교 법당 ‘정각원’에서 본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 成佛道)’라는 문구였다. 그는 그 글귀를 나름대로 ‘존재에 관한 것’으로 이해했고 더 이상 나와 너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 후 불이사상을 접하며 생각은 더 깊어졌다. 실마리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나’라는 존재는 모든 사람의 연기적인 상황에서 비로소 ‘나’가 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것이 그가 깨달은 ‘나’와 ‘연기’에 대한 인식이다.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해석하는가?

“각자가 연기적인 존재고 둘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모두가 귀하다고 받아들였습니다. 똑같은 인식을 하고도 그렇기 때문에 모두 귀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그러지 않습니다. 현상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해석할 때 따듯한 감성이 들어간다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제 그의 중요한 두 가지 키워드인 ‘인식’과 ‘해석’ 사이에 ‘감성’이 들어간다. 예술가나 종교인의 역할이 그것이 아닐까 싶다.

“불화는 삶을 위로하며 공감할 수 있는 따듯한 그림이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그는 전통불화의 몇 가지 중요한 조형방식은 유지한 채, 40대 중반부터 현대불화로 과감하게 변신했다. 마침 새로운 포교당을 짓는 젊은 스님들이 그의 현대불화로 법당을 장엄하겠다고 나섰기에 계속 이어서 그릴 수 있었다.

현대불화가 기존의 전통사찰 법당 구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법당 내부 인테리어를 몇 번 코치하다가 어느 순간 ‘법당장엄디자인’ 일도 겸하게 됐다. 조계사 극락전과 관음전, 백마사 법당, 보현선원 대웅보전, 수원사 정토마을 등 20여 곳의 법당장엄이 그의 손을 거쳐 간 작품이다.

그는 “조형이 단순한 장식적 요소가 아니라 의미와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며 이를 이용해 “사찰이 의례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에 머물지 않고 문화적인 감성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회갈등에 불이사상이 대안 될 것”

박경귀 작가는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스페이스 선’이라는 갤러리를 운영했다. 후배작가들에게 무료로 공간을 대여하고 또 공모전을 열어 매년 6명의 신진작가에게 소정의 금액을 지워하기도 했다. 그는 “붓으로 번 돈을 붓을 쥔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많은 신진작가들이 거쳐 갔고, 처음 문을 열 때 ‘최소 10년은 하자’던 다짐처럼 개인이 운영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10년을 채웠다.

그는 스스로를 “석존의 포로가 된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부처의 의미에 집중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한다. 불이의 세계관을 조형적으로 보여주면 불자들이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신앙심이 단단해진다고 믿고 있다. 또한 우리 사회가 겪는 세대 간, 진영 간의 극단적인 갈등과 이념적 대립 현상으로 받은 정신적 고통을 치유하는 데 불교의 불이사상이 대안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요즘 그가 주로 그리는 것은 달이다. 비우고 채우는 변화를 겪지만 꽉 차게 원만한 달, 그 빛이 은은하고 따듯한 달.

   
▲ White Lotus in White Moon 100X100cm(2015)

달은 높이 떠서 색색의 모포를 두른 붓다를 조용히 비춘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이름을 빼곡이 새긴 모포다. (〈Link Buddha_잊지않으마〉)

때론 달 안에 든 붓다가 각각의 상자에 든 작은 붓다들 위에 떠있다. 붓다에게나 우리 성불하지 못한 속인에게나 둥근 달은 평등하고 온화하다.(〈화엄법계도〉)

그는 달과 대상을 따로 그린 작품에 대해 “달과 대상이 대칭을 이루고 그 사이에는 다른 대상을 두지 않아 극도의 긴장 상태를 조장해 대상에 주목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한다. 또 전통불화는 장엄과 함께 대상을 부각하기 위해 다양한 문양을 빼곡하게 표현하는 특징이 있는데, 박 작가의 작업에서도 이러한 의미를 중요하게 여겨 작업에 적용하고 있다. 전통불화가 식물이나 기하학적 패턴으로 문양을 만드는 데 반해, 그는 문자의 집합으로 문양을 만든다. ‘사경’으로 종교의 가르침을 전달하며 자기 신념화한 선조들의 신행행위를 차용한 것이다.

달 안에 연꽃을 그린 그림에는 자신과 인연 있는 이들의 이름이 돌아가며 적어 달을 이뤘다.(〈The Full Moon〉, 〈White Lotus in White Moon〉) 그는 작업과정에서 한 명 한 명 호명하는 것처럼 그들을 떠올리면서 자신을 반추하게 됐다고 한다.

“법당에 가면 꽃으로 장엄한 세계를 ‘화엄’이라고 하지요. 저는 꽃을 바로 우리 각자라고 보고 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꽃처럼 그림을 장엄하는 거지요.”

그의 앞에 서면 나도 꽃이 된다. 사람에 따라 화사하기도, 소박하기도 한 꽃이 된다. 작품에서 느끼는 동질감은 그렇게 생겨났다.

박경귀 작가의 작은 전시는 비로자나국제선원 갤러리 까루나에서 이달 3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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