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느꼈지만 점심을 먹고 출발할 때면 처음 30분 정도는 정말 힘든 기분이 들었습니다. 배낭은 더 무겁게 여겨지고, 무릎도 갑자기 아픈 것 같고, 무엇보다 나쁜 것은 에너지가 하나도 없는 기분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걷다보면 언제 그런 기분을 느꼈나 싶게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음은 참 종잡을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겁다고, 괴롭다고 난리 치던 마음은 뭐고,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편안한 마음은 또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마음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누와에서 밤부 가는 길은 삼림욕을 하는 것처럼 좋았습니다. 다들 자기만의 방법으로 걸었습니다. 포터는 베테랑 짐꾼답게 우리가 잘 따라오는가 한 번씩 확인하면서 조용하게 길을 안내하고, 남편은 목소리까지 들어간 동영상을 열심히 찍었습니다. 남편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앞서가던 포터가 깜짝 놀라 뒤돌아보기도 했습니다.

나는 조용하게 걸으면서 히말라야의 바람소리를 들었습니다. 지금 듣고 있는 바람 소리가 히말라야인 것 같았습니다. 바람소리가 정말 강렬했고, 그것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직 바람소리만 존재하는 기분도 느꼈습니다. 물아일체의 평화를 만끽했습니다.

1시간 정도 걷다가 포터가 쉬자고 했습니다. 별로 힘들지 않았지만 우리는 쉼터에서 쉬었습니다. 포터는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아 온몸으로 자외선을 받았습니다. 캔디를 나눠먹고 물을 마시고 있으려니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롯지로 짐을 나르는 짐꾼 둘이 우리 짐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거대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꿀맛 같은 수다를 떨다가 떠나고, 여학생 두 명이 왔습니다. 필리핀에서 왔는데 포터 없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우리 애들하고 비교됐습니다. 이 힘든 일을 해내는 여학생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낯선 사람을 거리낌 없이 대하는 태도가 어른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우리도 히말라야를 걸으면서 얻은 것이 많지만 필리핀 여학생들은 어린 나이에 정말 귀중한 경험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동생이 20대 때 히말라야를 걸었던 시간을 자기 삶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힘겨울 때 그 기억을 떠올리며 살아가는 것처럼 분명 이 경험은 여학생들의 삶에 에너지가 될 것 같았습니다.

마침내 밤부에 도착했습니다. 포터는 자신이 잘 아는 롯지로 우릴 데려갔습니다. 포터는 특히 밤부 롯지에서 행복해 했습니다. 이곳의 요리사와 친구인 듯싶었습니다. 포터가 밝은 사람이긴 하지만 이곳 롯지에서는 다소 들떠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포터의 감정이 옮았는지 나도 이곳이 편안하고 익숙하게 여겨졌습니다.

▲ 풍광이 유난히 좋았던 밤부롯지.

호탕한 중국 여행객을 만나다

우리가 짐을 정리하고 핫샤워도 하고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갔더니 어떤 여자가 우리를 계속 쳐다보았습니다. 탐색하는 눈빛이었습니다. 중국인 여행객이었는데 우리가 자기나라 사람이 아닌지, 알아보려는 것 같았습니다. 다가가 영어로 통성명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포터와 단둘이 산에 왔는데 남편과 내가 음식을 나눠먹듯이 포터와 그렇게 허물없이 저녁을 나눠먹었으며 롯지 요리사와도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농담을 주고받았습니다. 사람에 대해서 경계심이 없고 마음을 다 열어 보이는 통쾌한 여자였습니다.

저녁으로 후라이드 포테이토와 수제비를 시켜서 먹었습니다. 후라이드 포테이토는 우리나라 감자볶음 비슷했는데 맛있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때 예쁜 아가씨가 식당으로 들어왔습니다. 좀 전에 우리가 들어올 때 중국인 아줌마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봤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인가,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갖고. 그런데 그녀가 중국인 아줌마랑 즐겁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녀 또한 포터와 단둘이 와서 중국 아줌마처럼 저녁을 시켜 포터와 사이좋게 나눠먹었습니다.

의무는 없었지만 우리는 항상 포터에게 저녁을 사주었습니다. 그렇지만 포터는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이 아는 사람들과 식사를 했고, 우리는 우리끼리 먹었는데 중국인들은 함께 온 일행처럼 포터와 식사를 하고, 또 함께 게임을 하면서 놀았습니다. 혼자 왔기 때문인 것 같긴 하지만 포터와의 사이에 벽이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 밤부 롯지 내부 모습.

중국인 아줌마와 아가씨는 순식간에 이 롯지를 점령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컸으며 웃음소리는 호탕했으며 롯지 요리사나 청소하는 아이, 심지어 우리 포터와도 농담을 주고받았습니다. 놀라운 친화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든 중국인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난 중국인이 대체로 마음이 열린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포터에게 한국과 중국, 일본 사람들은 각각 어떤 특징을 갖고 있냐고 물었더니 중국인은 말이 많고, 일본인은 말이 없고, 한국 사람은 친절하다고 대답했습니다. 한국인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좋게 말했을 수도 있지만 중국인과 일본인에 대한 대답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갔습니다.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인이던 중국인이던 서양 사람들보다는 친근하게 여겨졌습니다.

저녁을 먹고도 식당에서 한참 있다가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뜨거운 물병과 함께 핫팩을 들고 침낭으로 들어갔는데 전날에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다음이라 추위에 점점 적응이 빨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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