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에 보면 효녀 심청이가 아버지의 시력을 찾아주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을 절에 시주하고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하지만 심봉사는 눈도 뜨지 못하고 심청이를 잃은 슬픔과 여전히 맹인을 벗어나지 못한 신세, 게다가 뺑덕어멈의 학대로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그런데 이야기 끝에 가면, 심청은 용왕을 만나서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와 임금님의 부인이 되고, 이를 통해 심봉사와 다시 만나서 심봉사는 눈을 번쩍 뜨게 된다.

그러면 심청이는 절 스님한테 사기를 당한 것인가?

공양미를 권한 스님이 심청 앞에 펼쳐질 파란만장한 삶을 모두 알고 있었다면, 이건 사기가 아니다. 혹은 결과에 대한 확신만 있어도 사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스님이 공양미와 심봉사가 눈 뜨는 것에 대한 개연성의 증거를 대지 않는다면, 사기죄는 성립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심봉사는 눈을 떴고, 상식적으로 공양미 삼백 석으로 바로 눈을 뜨지는 않았지만 어떤 인연을 만날 거라는 운명적인 처방이었다면 또 사기로 단정 짓기 애매하다.

뜬금없이 심청이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요즘 넘치는 건강식품 방송 때문이다. 지상파를 비롯한 각종 채널에서 진귀한 약재, 식품, 건강 비결이 넘쳐흐르고 있다. 그래서 한의원에 오는 분들도 이런 정보의 진위를 종종 묻는다. 이런 논쟁은 위의 심청전 이 야기와도 맥이 닿는 부분이 있다.

‘만성암 환자가 개똥쑥을 먹었더니, 감쪽같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치자. 그게 개똥쑥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알기가 어렵다. 또 그 개똥쑥을 다른 암환자가 먹어도 낫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개똥쑥이야말로 암을 치료하는 기적의 식품이라고 이야기한다.

만약 심청이가 쌀을 바친 절이 방송을 탔다면, 전국에서 공양미 삼백 석을 가지고 찾아오는 시각 장애인들이 넘쳐나지 않았을까? 그런 시각 장애인을 비웃으면서 개똥쑥은 열심히 먹어야 되는 것일까?

바다에 용왕님이 사는지 안 사는지 나는 모른다. 개똥쑥이 암을 치료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역시 모른다. 하지만 용왕님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것과 암은 참 치료하기 힘든 병이라는 것을 비슷한 확률로 안다. 그렇다고 용왕님을 부정하거나, 암을 불치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심청이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한 매개체는 공양미 삼백 석이지만, 그 근저는 심청이의 갸륵한 마음이 아닐까? 그 마음이 공양미를 만나게 했고, 또 용왕님을 만나게 하지 않았을까? 절실하게 암을 낫고 싶은 사람이라면 개똥쑥 뿐만 아니라 얼마나 처절하게 암을 연구하고 암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조심했을까??

공양미 삼백 석의 위력이나 개똥쑥을 무시하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런 매개체로 표현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몸에 좋은 것을 찾아 먹고 건강비결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마음의 절실함과 내 몸에 대한 애정이 저절로 길을 만들고 답을 찾아가게 만드는 원리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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