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 회해(百丈懷海, 749~814)는 마조의 법을 이은 선사다. 그를 다루는 글이나 강의에서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구절이 있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굶는다.’는 말은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라는 성경의 구절과 겹쳐지면서 노동자부터 자본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급이 애용하는 정치적 구호로 변했다. 노동자는 임대수입 등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자본가를 향해 이 말을 쏟아내고, 자본가는 노동자의 파업을 억제하거나 성실한 노동을 강제하기 위해 이 구절을 강조한다. 어느 편에다 붙여놓아도 잘 어울리는 이 말을 최대한으로 확장해서 사용하는 쪽은 역시나 불교계다. 어느 불교 매체는 ‘일일부작 일일불식’을 다음처럼 풀어놓았다.

“유명한 이 말은 사실상 참선을 한답시고 손도 까딱하지 않는 나태한 수행자들에 대한 경종의 메시지이고, 빈둥빈둥 세월만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던지는 준엄한 경고이다. 진정한 수행이란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선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참선만 하는 수행자에 대한 경종’이나 ‘세월만 보내고 있는 이들을 향한 경고’라는 풀이는 사실 별다른 근거 없이 개인적 생각을 투영한 ‘오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선을 실천’한다는 해석까지 명백한 오류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 구절을 선농일치(禪農一致)와 이어붙이는 것이 한국 불교계의 일반적 경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선 ‘일일부작 일일불식’이 나오게 된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홍주백장산대지선사어록》은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한다.

“백장 선사는 노동을 할 때면 항상 대중들보다 먼저 행했다. 대중들은 이 상황이 불편해 작업도구를 감춰두고 선사에게 쉴 것을 청했다. 그러나 선사는 ‘나는 아무런 덕이 없는데 어찌 다른 이들만 고생을 시키겠는가.’라고 말했다. 선사가 감춰둔 도구를 찾다가 찾지 못한 경우는 밥을 먹지 않았다. 그래서 ‘일일부작 일일불식’이란 말이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위의 일화에서 가장 먼저 간파해야 할 사항은 백장과 대중들이 매일 노동을 했다는 사실이다. 붓다는 출가자에게 노동을 금하고 걸식과 보시로 생계를 이어가게 했음에도 왜 이들은 계율을 어겨가면서 일을 했던 것일까? 이유는 붓다 당시의 인도와 백장이 살았던 중국의 사회적 상황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외래종교인 불교가 중국에 정착하려 애썼던 초기는 말할 것도 없고,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이후에도 불교는 끊임없이 기득권의 반대와 탄압으로 고초를 겪었다. 그들이 불교를 탄압하며 내건 주된 명분은 승려들이 무위도식을 하며 사회와 민중에 불이익을 끼친다는 점이었다. 선종은 왕이나 귀족의 후원에 기대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억압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불교를 펼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결국 그들은 사원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계율을 어기고 노동을 택했다. 선종사찰이 불전이나 탑을 세우는 외형적 불사에 치중하기 보다는 불상도 없는 간소한 법당만으로 사원을 꾸렸던 것은 자신의 청정한 마음이 곧 부처라는 사상과 함께 이러한 사회적 상황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깨져버린 계율이었다. 특히나 원활한 공동생활과 독립적 경제생활을 위해서는 새로운 계율의 제정은 필수였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선불교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백장의 《선문청규》이다.

백장의 《선문청규》는 현재는 전해지지 않지만, 《경덕전등록》 등의 여러 문헌에서 그 흔적의 일부나마 찾을 수 있다. 백장 선사의 청규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을 꼽으라면 보청법(普請法)을 들 수 있다. 보청법은 선원의 공동 노동에 있어서 상하가 균등하게 참여해 대중이 힘을 합치라는 계율이다. 한 마디로 지위나 법랍을 핑계로 노동에서 빠지지 말라는 뜻이다. 백장의 ‘일일부작 일일불식’이 전하는 가장 명백하고도 중요한 메시지는 다름 아닌 노동에 있어 평등한 승가를 지향하는 보청법과 연결되는 것이다. ‘노동과 선의 일치’나 ‘일상 속에서의 선’과 같은 해석은 백장이 몸소 실천한 보청법의 토대 위에서 거론되어야 하는 사유의 확장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기본에 주목하는 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백장의 선사상에서 노동의 평등성이 지니는 중요성은 백장이 제자인 황벽 선사와 함께 밭을 개간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누는 문답이나 노동의 현장에서 발생한 사소한 일을 ‘관음보살의 진리의 방편’으로 연결시키는 가르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백장이 제자들과 함께 노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전할 수 없었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위계와 스승의 권위를 강조하면서 어느새 관료화되어버린 오늘날의 승가가 뼈아프게 여겨야할 부분이다.

백장의 위대성과 독창성은 노동 자체를 선으로 여겼다거나 일상의 모든 것을 선수행의 대상으로 삼은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지위와 계급에 상관없이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살아가야 한다.’는 평등승가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그 실천이야말로 그를 선종의 위대한 스승의 반열에 오르게 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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