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은 언어화할 수 없는 세계, 즉 언어도단의 길로 들어가게 하는 수행이다. 간화선을 통해 부정적 열매가 아닌 생명의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을 체험했다. 이것은 건설적인 체험(construction experience)이다. 나는 간화선을 통해 맑아지고 있다.”

참선하는 예수회 사제, 성철 스님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제로 잘 알려진 ‘푸른 눈’의 서명원(56. 본명 베르나르 스네칼,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 신부가 자신의 간화선 수행기를 이야기했다.

▲ 서명원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
서명원 신부는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원이 12월 22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개최한 ‘나의 화두 참선 입문기’ 주제의 초청 특강에 앞서 기자들을 만나 “간화선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 사람에 따라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내겐 잘 맞는다. 내가 끝까지 가야 하는 길이라는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의대를 마치고 신학을 전공했다. 이후 예수회 소속 가톨릭 사제로 입회했다. 1988년 한국에 와서 한국학을 공부하기 시작해 1993년 해인사를 찾아 성철 스님과 인연을 맺었다. 1995년 인도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시작해 그는 1996년부터 간화선 수행을 시작했다. 2004년에 파리7대학에서 ‘성철 스님의 전서 및 생애’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로 부임해 학생들에게 불교를 가르치고 있다.

서 신부는 우선 “간화선 수행이 ‘나의 집’이란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서 신부는 “간화선 수행은 어렵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때문에 간화선 수행이 나에게 맞는 수행법인지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신부는 더불어 “간화선 수행의 성과를 알려면 ‘오래’해야 한다. 나는 15년 동안 했다.”면서 “간화선 수행이 ‘내가 끝까지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 신부는 간화선 수행을 택한 이유에 대해 “동양문화를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한국에 와서 세상이 훨씬 넓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한마디로 우물란 개구리였다. 나의 우물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고, 우물 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웃 종교를 아는 것이 내 의무라고 생각해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인 간화선을 택했다. 간화선을 수행하면서 많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었고 지도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서 신부는 “간화선은 수행은 한국불교 전통의 수행방법이다. 한국에서 살기 때문에 한국의 전통을 선택했다.”면서 “간화선 수행을 하면서 한국 사람들과의 교류가 많아졌고, 대화도 넓어졌다. 지도도 많이 받았다”고 소개했다.

서 신부는 간화선 수행을 통해 얻은 성과를 한 마디로 ‘맑아지고 있다’는 말로 설명했다. 서 신부는 “간화선 수행을 하면서 죽어가는 느낌이 아닌 생사해탈의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과 생각이 들었다.”면서 “생명의 좋은 열매가 맺히는 것을 체험했다. 이것은 부정적 열매가 아닌 건설적인 체험(construction experience)이다. 나는 간화선을 통해 맑아지고 있다.”는 말로 간화선 수행을 자기화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서 신부는 “간화선 수행은 빨리 얻을 수 있는 체험의 세계가 아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 사회가 ‘빨리 빨리’ 문화이고, 인터넷 덕분에 결과를 더욱 빨리 얻고 싶어 한다“면서 ”의지가 약하면서 결과만 빨리 얻으려 해서는 안된다. 세상이 아무리 빨리 돌아가도 성장기는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수행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 신부는 “가톨릭 사제지만 간화선을 수행하면서 출가를 고민한 적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서 신부는 “내가 한국어를 잘하거나 귀화를 해도 한국 사람으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한국어를 내 모국어만큼 할 수 없다. 여러분들이 영어를 어렵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면서 “가톨릭 사제로서 ‘나의 뿌리’를 끝까지 잡고 가기로 했다. 현각 스님이 출가한 것과는 다르다. 모두가 자기의 길에 충실해야 한다”고 출가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서 신부는 종교 간 이해와 교류를 강조했다. 서 신부는 “각 종교마다 원천은 같지만 진리로의 길들은 다양하고, 수행의 길을 끝까지 걷기 위해 이웃종교를 사귀는 것이 중요하다”며 “간화선 수행을 통해 언어화할 수 없는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서 신부는 또 “불교는 ‘나의 뿌리’를 더 깊이 있게 알게 해 주기 때문에 불교의 매력에 더욱더 빠져든다”며 “다른 종교의 것이라고 해서 배타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 간화선 수련을 통해 자신의 가톨릭 영성이 더욱 더 깊어지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서 신부는 또 ‘종교간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불교를 통해 나는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았다. 부처님께서 힌두교안에서 해탈의 길을 찾으셨다면 불교는 창시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강조하면서 “언어를 사용하는 세계에 사는 만큼 가톨릭이나 불교, 힌두교의 진리가 어딘가에서 만나겠지만, 일단은 조금씩 다르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 신부는 “진리의 원천은 ‘침묵’을 통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똑같은 부분을 찾을 수 있지만,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신부는 특히 자신의 간화선 수행이 ‘업(業)’이라고 말하며 애정을 표했다. 서 신부는 “간화선을 할수록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한 확신이 강해진다”는 말을 다시 강조하면서 “간화선 수행은 나의 운명이며, 팔자고 업”이라고 말해 간화선 수행에 대한 확신과 애정을 드러냈다.

서 신부는 생활 속의 수행과 깨달음의 경지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서 신부는 “수행을 하다 보면 착각할 수 잇다. 수행을 통한 변화와 신비로운 체험에 착각할 수 있다. 일상을 통한 수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신비로운 강한 체험보다 일상에서의 체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확철대오(廓徹大悟)한 사람이 부럽지는 않다. 깨달음은 사람에 따라 늦게 오기도 하고 빨리 오기도 한다. <육조단경>에 ‘어떤 이는 빠르고 어떤 이는 느릴 수 있다’고 했다. 조급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자세는 버려야 한다.”면서 “누군가는 산 위에서 깨달았다고 하지만 나는 한국의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줘야 하는 교수이다. 깨달음을 너무 높은 이상적인 경지로 보는 것도 문제입니다. 깨달음은 100% 생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신부는 특히 “깨달음은 무조건적으로 남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라며 “산속에서 깨달았다고 해서 생활화할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깨달음의 생활화를 역설했다. 그는 “일상생활에 충실하는 것, 생로병사의 길을 따라 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혹독한 수행”이라고 말해 범인의 삶 자체가 수행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서 신부는 간화선의 생활화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도 고백했다. 서 신부는 학교에서의 예를 들었다. 그는 “학생들은 수행할 생각이 없다. 취업, 연애, 알바, 학점 등이 관심사이다. 수행할 여지가 없다. 학교생활의 이면을 보면 더욱 어렵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공부시키고, 취업을 준비한다. 경쟁문화 속에서 화두참구할 여지는 없다. 88만원 세대 문제를 수행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면서 간화선 수행의 생활화가 어려운 이유로 현실론을 들었다.

서 신부는 간화선 대중화를 위해 불교가 ‘대안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간화선은 ‘홀로서기’어렵다. 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간화선 교육을 했으나 실패했다. 그렇다고 간화선이 현대문명과 맞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안교육과 대안학교가 있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대안 사회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불교가 할 일은 대안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 신부는 간화선 수행을 ‘중국화된 수행법’으로 보고 한국전통이 아니라고 말하는 분도 있지만 간화선은 ‘평지돌출’된 것이 아니다. 불교의 연장선상에 있는 수행법“이라면서 ”불교계가 위빠사나와 간화선 등 수행법을 ‘동강’내서는 안된다. ‘다르다’고 해서 동강내는 것은 불교를 동강내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며 불교의 제수행법에 대해 ’차별적 시각‘을 보이는 것을 경계하길 당부했다.

서현욱 기자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