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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나'를 겹치니 하나의 그림되다
정윤영 작가, 큰 수술 후 깊어진 사유 표현
2019년 08월 27일 (화) 17:28:11 박선영 기자 budjn2009@gmail.com
   
▲ 작품 앞에선 정윤영 작가

정윤영의 전시회 〈겹의 언어〉가 지난 8월 21일부터 27일까지 삼청동의 갤러리 도스에서 열렸다.

전시회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작품 ‘20080903’.

이는 정 작가가 수술 받은 날이다. 그 이전의 정윤영이 죽고 다시 태어난 날이다. 두려움과 절망, 희망으로 범벅된 혼돈의 날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넘었고, 이제 그날의 체험이 그림이라는 결과로 꽃을 피웠다.

예술고등학교 시절까지 서양회화를 해왔던 정 작가는 동국대 불교미술학과에 입학해 정통 불화를 배웠다. 어머니가 불교신자여서 가끔 절에 동행했던 것도 작은 이유는 되지만 주된 이유는 불화가 새롭고 독특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졸업작품전까지 하고 나니 감정을 배제한 방식인 불화에서 벗어나 감정에 충실한, 자신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수술 후 달라진 세상 보기

그는 대학재학 시절, 우연한 기회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병으로 판정을 받았다. 대부분 의사가 그렇듯 수술에 앞서 크게 겁을 줘 앞날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었다. 개복해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말만 듣고 자신의 몸을 맡기는 심정이 어찌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병의 판정부터 수술까지, 그리고 회복하던 병실에서 그는 ‘건강’과 ‘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생명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절실하게 느꼈으며 그럼에도 생명 연장을 간절히 갈망하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생각은 이런 극단적인 과정을 여러 번 겪었고, 비슷한 생각이라도 때론 강하고 때론 옅게 강도가 달랐다. 하나의 것처럼 보이지만 무한한 것이 모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그 후 알게 된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병실에 작은 식물 화분을 가져다 주셨다. 평소라면 무심하게 봤을 그것이 특별하게 보였다.

“저렇게 작은 식물도 살기 위해 절실한 몸짓을 하는구나 싶었지요. 문득 연약하다고 생각한 식물에서 동물 같은 역동성을 느꼈던 겁니다.”

어쩌면 그건 자신의 마음을 투영한 건지 모른다. 자신이 연약한 몸이라는 자각이 식물과 자신을 동일선상에서 보았고 그러자 식물의 살고 싶은 에너지를 자연스레 느꼈던 것이다. 틈틈이 곤충을 유인해 잡아먹는 식물 등, 동물적인 삶을 사는 식물을 찾아보며 흥미를 키워갔다.

   
▲ Pseudocopulation_모시에 먹, 수채, 분채, 아크릴_52×180cm_2019

비단 서너 겹에 각각 그려 한데 배접해 ‘겹’을 표현

자신의 그림에서 식물에 인간의 몸을 투영하려는 콘셉트를 잡았다. 그것을 표현하려면 순수회화가 맞는 것 같아 그림의 스타일을 바꾸어 보았다.

이런 희망과 계획이 살고자 하는 마음을 들게 하고 회복에 도움을 준 것은 당연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주로 비단 바탕에 먹, 분채, 석채, 봉채, 아크릴, 수채, 금분 등의 재료를 쓴다. 한 겹을 그리고 말리면서 다른 한 겹을 그리는 식으로 세 겹, 또는 네 겹까지 작업한 다음 포개어 배접한다. 서양회화라고 하지만 정통 불화를 그릴 때 쓰던 방식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비단 뒷면에 색을 칠해 은은한 느낌이 앞으로 배어 나오게 하는 배채법, 석채· 분채· 금분 등의 재료 사용, 붓선의 모양 등은 정통 불화에서 쓰던 방식이다.

그는 화려한 서양란꽃을 그리며 다른 겹에서 인간의 장기를 그려 넣었다. 잃어버리기 전의 자신의 장기, 무결하지는 않았어도 자기 안에 있던 장기에 대한 그리움일지, 애도일지…… 이런 모호한 감정도 겹으로 쌓여 하나의 작품을 이뤘다. ‘겹’이라는 뜻은 이렇게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된다.

국민대학교 김희영 교수는 정윤영 작가의 그림을 보고 “생기 가득한 역동적이고 추상적인 화면 위의 절개된 꽃의 단면, 잎의 줄기, 혹은 장기를 연상시키는 유기적인 형태들은 무한한 자유가 부여된 자율적인 화면의 리듬을 간헐적으로 정지시키는 듯하다”라고 작품 설명을 했다. 이어 “이러한 조용한 분절과 정지는 작가의 미학적 실험의 근거를 드러내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불교미술학과 졸업생을 주축으로 만든 ‘핑크붓다’의 일원이기도 한 정윤영 작가는 자신처럼 정통 불화를 전공하고 서양미술을 하는 젊은 작가에게도 불교계가 문턱을 낮춰주길 당부했다. 기법과 상관없이 내용에 불교를 담고 있는지가 더 관건이라는 말이다.

인터뷰 말미에 정 작가는 “그 동안 순수회화와 불화를 구분하고 경계 지었던 것 같다”라며 “다시 불교를 더 공부해서 불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몸에서 내 것이었던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의 경계, 식물과 동물의 경계, 무결함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에서 서성이며 묻고 답하는 과정을 그림에 쏟아놓았던 정윤영 작가는 이제 작품의 표현방식에서도 경계를 허물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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