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거되기전의 안정사 대웅전, 뒤에 보이는 암벽에서 마애불좌상이 발견되었다

조계종과 태고종의 소유권 다툼과 무관심으로 건축업자에게 매각(2003∼2005년)돼 곧 아파트촌으로 변할 처지에 놓은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소재 안정사에서 조선 말기 전형적인 민불(民佛) 양식을 한 마애불좌상과 근대시기 불상 1기가 발견됐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18일 밤 한 불교계 관계자의 제보를 받고 19일 오전 8시 안정사를 찾아 마애불좌상과 불상의 존재를 확인했으며, 공사업자의 철거를 우려하여 문화재청 직원이 확인할 때까지 경찰에 신고하여 보존조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는 “마애불 전문가인 명지대 이태호 교수(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한국의 마애불 저자)에게 그 가치에 대해 20일 현장 확인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 조선말기 민불양식을 띈 안정사 마애불좌상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보이는 이 마애불좌상은 대웅전 뒤편 암벽의 벽면 감실에 저부조로 새겨진 것으로 최근 대웅전을 철거하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마애불좌상이 새겨진 감실은 가로 약 1미터 세로 약 40센티, 깊이 30센티 정도의 크기로 1943년 대웅전이 지어진 후 66년간 지붕에 가려져 있어 보존상태도 비교적 양호한 편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측은 “마애불좌상은 다소 투박한 수법으로 조각됐지만, 애기(동자) 모습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예술적으로도 빼어난 수작으로 평가하며, 좌대까지 조각되어 있었다. 마애불은 조선말기 불교와 민간신앙이 결합되어 나타난 전형적인 마애불 양식이며 그 옆에 새겨진 명문인 ‘나무산왕대신지위(南無山王大神之位)’로 볼 때, 산신각을 대체한 산신신앙의 대상으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조선말기 민불양식을 띈 안정사 마애불좌상 부분 확대 모습

이태호 교수는 “이 마애불좌상은 우리나라 마애불 전통에서 조선말기의 마애불 양식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며 우리나라 마애불 전통이 조선 말기에 이르러 민불화하면서 기자(祈子)신앙과 산신신앙의 결합된 양식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조선시대 서울지방을 중심으로 마애불이 많이 조성되는데, 그 형태는 상계동 학도암 마애불처럼 조선말기 왕실후원의 거대 마애불과 서민들의 소박한 꿈을 담은 작은 규모의 민불형식 마애불로 나뉜다”면서 “안정사 마애불좌상은 전형적인 민불 양식의 마애불이며 이같은 서민적 전통의 마애불 양식은 창신동 안양암의 마애관세음보살, 성남 남한산성 망경암의 마애불을 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대웅전을 철거한 뒤 암벽에서 발견된 근대시기 불상

특히 이 교수는 “산신을 아기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은 미술사적으로도 매우 큰 가치가 있으며, 일제 강점기에 마을공동체나 민간신앙의 대상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아마도 당시의 대웅전을 신축하면서 지붕으로 마애불좌상을 가려서 마을공동체 정신을 해체시키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한다”라고 추정했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는 “보다 자세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우리나라 마애불 전통의 충실한 계승하고 있다는 점, 기자신앙과 산신신앙의 결합이라는 신앙적 측면에서도 독특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는 “불교 조계종과 태고종의 소유권 다툼과 무관심 때문에 사라지게 돼 안타까웠는데, 이번 마애불좌상과 불상의 발견으로 안정사의 사료적 가치가 다시 한 번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는 또 “서울의 도읍 결정에 큰 역할을 했던 무학 대사의 전설이 내려오는 천년고찰 안정사를 없애고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짓는다는 것은 문화의 가치가 존중되는 21세기에 매우 부끄러운 일이며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마애불에 대한 조사와 안정사의 가치를 재검토해 지금이라도 소중한 문화유산 보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7년 3월 서울시는 건설사인 에덴건설에 실측보고를 하게 하였으나 이번에 발견된 마애불좌상과 불상은 조사하지 못 하였고 오히려 아파트를 건설할 수 있도록 철거하도록 승인한 바 있다.

▲ 대웅전을 철거하자 감실이 노출되었고 감실안에서 마애불좌상과 불상 1기가 발견되었다.

안정사는 신라 흥덕왕 2년(827년)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고찰. 특히 조선시대 무학대사(1327∼1405)가 이 사찰을 중건하고 7일간 기도하다가 관세음보살의 화신을 접하고 경복궁 터를 정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사찰로,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문화유산이다.

안정사의 대웅전(1943년 건립)과 대방(염불당·1934년 건립)에 대해서 서울시 문화재위원회는 “근대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다”고 결론 내린바 있다.
문화재위원회는 “△대웅전이 일제강점기 다른 전각과 달리 조선 말기 양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일제강점기 건립돼 전해져 오는 대방이 극소수여서 희소가치가 높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안정사는 조계종과 태고종 두 종단 사이에서 수십 년간 소유권 분규를 일으켰던 사찰로 갈등이 법정 다툼으로 비화하면서 마침내 건설회사에 팔렸다. 그동안 이 사찰은 서울시에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는 “서울시가 서울 성곽 복원 등 도시개발 과정에서 훼손된 서울의 옛 모습을 되살리기로 한 만큼 서울 정도 600년의 역사·문화적 상징인 안정사와 사찰 터는 반드시 보존되어야하며, 이번에 발견된 마애불좌상과 근대시기 불상1기와 기존의 마애불까지 모두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서현욱 기자
사진, 자료=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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