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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과 커피와 햇볕
2019년 08월 12일 (월) 16:28:01 김은주 자유기고가

아침으로 감자와 마늘수프를 먹었습니다. 감자는 그냥 봤을 때는 싹도 생기고 시커멓고 그야말로 볼품없는데 뜻밖에도 맛있었습니다. 단맛이 강했습니다. 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이 키운 감자라서 더욱 맛있는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아침은 삶은 감자로 먹자고 했습니다.

고향사람처럼 반겨준 서양인 커플

주인과 작별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대문 밖으로 당나귀 무리가 줄을 지어 내려갔습니다. 이 당나귀들은 짐꾼인데 나야풀에서 촘롱까지 짐을 나른다고 했습니다. 촘롱 위로는 사람이 나른다고, 포터가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촘롱 구간에는 당나귀가 싸놓은 똥이 계단이나 길 위에 질퍽했습니다. 더럽다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똥을 피해 계단을 내려오는데 또 뒤에서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나서 돌아봤더니 당나귀 무리가 계단을 내러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피해 옆으로 비켜섰습니다. 내가 난간에 서있었더니 포터가 반대편으로 와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혹시 당나귀들의 발길질에 떨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고객의 안전에 신경을 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친절한 포터로 돌아왔습니다.

   
▲ 촘롱에서 시누와 가는 길. 히말라야 거주민들의 가옥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오늘은 촘롱에서 출발해 시누와를 거쳐 밤부까지 가는 구간인데 출발할 때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지난밤에 워낙 떨었기 때문에 햇볕이 따뜻한 길을 걷는 것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 구간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였습니다. 서양인 커플을 만났는데 이 사람들은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눈이 마주쳤는데 아주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한참 걷다가 농가 마당에서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는 그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보자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좀 전에 처음 만났고 고양이 앞에서 두 번째 만나는 것인데 마치 고향사람처럼 반가워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따뜻한 히말라야의 봄날의 정취에 취해서 그렇게 기분이 좋았고, 고양이가 누워있는 모습에서도 삶의 환희를 느끼고, 처음 만난 사람도 잘 아는 것처럼 여겨지는 마법에 빠졌던 모양입니다.

허술한 집, 초콜릿을 달라는 작은 손

촘롱에서 시누와까지도 결코 만만한 구간은 아니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내려갔다가 다시 돌계단을 2시간 정도 올라가는 구간입니다. 돌계단을 올라가는 길에 히말라야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옥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기서 어떻게 사람이 살아가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허술했습니다. 힘센 사람이 밀어버리면 금방 무너질 것처럼 대충 지어진 집이었습니다. 콘크리트 벽돌로 지어진 튼튼한 집에서도 그렇게 떨었는데 판자로 얼기설기 지어진 집에서 추운 밤을 어떻게 보낼까, 그게 더 걱정스러웠습니다.

살림도 거의 없었습니다. 몇 개의 옷가지가 빨래 줄에 널려 있고, 그릇 몇 개는 양지바른 곳에서 말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단출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우린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히말라야에 오르면서 지고 가는 짐만으로도 그들이 가진 세간 보다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그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에 비해서 내가 더 행복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히말라야에서 롯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굉장한 부자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오는 노동자들 중에서 이 꿈을 갖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고용된 요리사나 청소하는 사람도 나름 일자리가 있고, 또 짐꾼도 일거리가 있어 굶지는 않지만 다들 가난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노인들이 히말라야 산에 남아서 감자나 푸성귀를 조금 일궈 살아가는데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 보였습니다.

어느 집에서 작은 여자 아이가 문 앞에 있다가 우리가 지나가자 초콜릿을 달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가방에서 초코바를 꺼내 주었습니다. 아이는 그걸 시큰둥하게 받았습니다. 남편은 아이의 태도에 좀 상처 받았는지 “좋아하지도 않네?” 했습니다. 허구한 날 이 자리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한테서 초콜릿을 얻어먹는데 어떻게 맨날 감동받겠느냐고 나는 대답했습니다.

   
▲ 시누와의 점심. 찬란한 햇빛 속에서 먹은 라면은 인생 최고의 행복을 느끼게 했다.

히말라야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날씨가 너무나 좋아서 몸에 엔돌핀이 도는지 시누와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게 왔습니다. 한두 번 힘들다는 생각도 했겠지만 대체로 힘든 줄 모르고 올랐습니다.

우린 시누와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신라면을 시켰습니다. 난 계란이 없는 걸로 하고, 남편은 계란이 들어간 라면으로 주문했습니다. 우리는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아주 잘 보이는 곳에서 라면을 먹었습니다. 너무 맛있었습니다. 뜨거운 물을 사서 믹스커피까지 마셨습니다.

마음이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했습니다. 이 시간이 히말라야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입니다. 행복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평범한 시간에 찾아왔습니다. 행복을 위해서 많은 준비물도 필요하지가 않았습니다. 라면에 믹스커피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정말 소박한 준비물이었는데 그런데도 난 평생 기억될 행복을 느꼈습니다.

행복을 위해서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여기면서 살아왔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만 행복할 걸로 여겼고, 항상 조건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행복은 라면과 믹스커피와 햇볕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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