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완 선원장.

육조 혜능은 “《금강경》을 듣는다면 마음이 열려서 깨달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금강경》 제2선현기청분과 제17구경무아분에서 수보리는 부처님에게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낸 사람은 어떻게 그 마음을 머물고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합니까?”라고 질문한다. 최고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낸 사람은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시키고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러야 하느냐는 이 질문이 바로 《금강경》의 주제를 나타낸다. 즉, 불교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는 일이란 첫째는 중생의 마음을 어떻게 항복시키느냐는 문제이고, 둘째는 마음을 항복시키고서 그 마음이 어떻게 머무느냐는 문제인 것이다.

부처님은 수보리의 이 질문에 대하여 이렇게 답한다. “최고의 깨달음을 얻으려는 모든 보살들은 마땅히 그 마음을 이렇게 항복시켜야 한다. 모든 부류의 중생들을 나는 모두 남김없이 열반에 들어가게 하여 사라지게 해야 한다. 이렇게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는 중생들을 사라지게 하지만, 실제로 사라지는 중생은 없다.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만약 보살에게 나라는 생각․사람이라는 생각․중생이라는 생각․목숨이라는 생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말하는 마음의 항복이란, 모든 부류의 중생들을 남김없이 사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항복이므로 당연히 내면의 마음에서 중생들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지, 바깥의 육체를 가진 중생을 없애라는 말은 아니다. 마음에 있는 중생을 없애기 때문에 비록 모든 중생을 없애지만 실제로는 없어지는 중생이 없다고 한 것이다. 중생을 모두 없애지만 실제로는 없어지는 중생이 없는 까닭을 보살에게 나라는 생각․사람이라는 생각․중생이라는 생각․목숨이라는 생각 있으면 보살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보면, 마음에서 없애야 할 중생은 바로 이러한 생각들인 것이다. 이는 제17이상적멸분의 “모든 생각을 전부 벗어나는 것을 일러 모든 부처님이라고 합니다.”라는 말에서도 확인된다. 생각은 본래 헛된 것이므로 생각이 없어졌다고 해서 실제로 없어진 무엇은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각은 산스크리트 saṃjñā의 번역이다. ‘이해, 지식, 생각, 개념’이라는 뜻을 가진 saṃjñā를 중국에서 상(想) 혹은 상(相)으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마음에 나타나 있는 분별된 모습인 생각을 가리킨다.

그러면 마음에서 모든 생각을 남김없이 다 없앤다는 것은 마음이 아무 생각이 없는 무생물과 같이 된다는 뜻일까? 만약 생각을 모두 없앤다는 것이 그런 뜻이라면,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마음은 졸도하거나 깊은 잠에 빠지거나 요가에서 말하는 선정삼매에 들어 있는 것과 같은 무의식(無意識)의 상태일 것이다. 이런 무의식의 상태라면 식물인간과 같은 상태인데, 당연히 깨달음을 얻는 것이 곧 식물인간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깨달음이란 일상적인 의식활동을 하면서도 마음에 분별되는 생각이 없어서 마음에서 얽매이거나 시달리는 번뇌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을 하되 생각이 없는 것이고, 보되 보지 않는 것이고, 듣되 듣지 않는 것이고, 느끼되 느끼지 않는 것이다. “중생들을 사라지게 하지만 실제로 사라지는 중생은 없다.”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이고, 제5여리실견분의 “만약 모든 모습이 모습이 아니라고 보면, 곧 여래를 본다.”라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이다.

그런데 생각하지만 생각이 없다는 말은 생각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니, 분별심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이러한 경험은 마음이 분별심을 항복시킬 때에만 경험되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러한 불가사의한 경험이 바로 불이중도(不二中道)의 견성(見性) 체험이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중생의 마음을 항복시켜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곧 중생의 분별심을 극복하는 불이중도의 불가사의한 체험인 것이다. 《금강경》을 읽어 보면 “모습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고, 모습이 없는 것으로써도 여래를 볼 수 없다.”라든가, “법도 얻을 수 없고 법 아닌 것도 얻을 수 없다.”라는 등 끊임없이 마음의 분별을 가로막아 분별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불이중도의 견성으로 이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태완 | 무심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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