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했으니 손 좀 따주시오”라며 한의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이 있다. 신기 하게도 손을 따거나 침을 맞거나 뜸을 뜨면 속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양방에서는 이 체한 증상을 급성 장염(AGE)'이라고 한다. 즉 급성으로 소화기관에 염증이 생긴 것을 모두 급성장염군으로 진단한다. 하지만 한방에서 체한 증상은 소화기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얼굴이 파랗고 손이 아주 찬 경우에 손을 따면, 혈색도 돌아오고 손발에 땀이 나면서 따뜻해진다. 이걸 소화기 증상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체한 증상’에는 아주 포괄적인 의미가 있다. ‘체했다’의 반대말이 ‘통했다’이고, 체했다는 말이 작게는 소화불량이지만 크게는 몸의 순환장애를 뜻한다. 뭔가 술술 통하고 순환이 되어야 하는데 막혀서 통증이 있거나 답답할 때를 일컫는다.

한의학에서는 몸의 병을 크게 체(滯)해서 오는 병과 ‘허해서’ 오는 병, 두 가지로 본다. 체해서 오는 병은 날카로운 침으로 뚫어주고 허해서 오는 병은 보약으로 도와 낫게 한다.

양의학은 질병 개념이 형태(形態)적이고 정태(靜態)적이다. 즉 어디가 아프고 어느 부분이 형태적으로 다른지가 중요하다. 즉 체했다, 허했다라는 전체적인 개념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컨대 요통이라면, 허리뼈의 뒷부분 인대가 늘어나고 염증이 생겨 뒤에 있는 척수(척추의 관 속에 들어 있는 골) 신경 분지를 추간판이 눌러서 생긴 것이라고 진단하듯이, 어떤 곳이 잘못되었는지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외과 치료가 필요한 경우나 부분 치료에서 양방은 뛰어난 점이 있다.

대신 한방은 요통이 와도 체해서 온 건지 허해서 온 건지를 본다. 체해서 온 것은 막힌 게 원인이므로 상대적으로 격렬하고 움직임에 제한이 있고, 한열(寒熱) 등 체온이 변한다. 반면에 허해서 오면 통증이 은은하고, 움직이다 보면 덜해지고, 아픈 곳도 분명치 않게 돌아다닌다. 더불어 요 통뿐만 아니라 몸 전체에 여러 증상이 같이 온다.

체해서 온 병은 실제로 소화장애나 다른 부위에 통증이 생길 확률이 높고, 허해서 온 병은 추위를 잘 고, 피곤하고, 입이 마르는 등의 증 이 따라올 확률이 높다. 이렇듯 한방은 병을 기능(機能)적이고, 동태(動態)적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침 한 대로 요통뿐만 아니라 모든 증상이 모두 좋아질 수도 있기 때문에 기능적이고 전신적인 질환에는 한의학이 우수하다. 이런 이치로 체해서 오는 경우는 소화불량뿐만 아니라 매우 광범위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체한 경우, 자신의 감정 소통이 체한 경우, 음식이 체한 경우, 혈액이 체한 경우, 액이 체한 경우, 근육과 근육의 운동이 서로 원활하지 않고 체한 경우, 위아래가 막혀서 체한 경우 등, 모든 막히는 것들은 체해서 오는 것이다.

따라서 생각, 행동, 감정에서 체하지 않고 술술 풀어내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 건강 비결이다. 또 막혔다 싶으면 욕심을 줄이고 좀 지켜보는 것도 좋다. 늘 과식하지 말고 적게 먹으라는 건강 조언도, 체하는 것을 예방하는 데 좋다.

체했을 때 손끝과 발끝만 따도 일부분을 뚫어 공기를 통하게 해주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위생에 문 만 없다면 체한 데에는 매우 좋은 응급처치법이다. 마치 꽁한 사람을 간지럽히거나 울려서 뻥 뚫어버리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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