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대전(佛敎大典)》(1914)은 만해 스님의 불교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불교대전》을 편찬한 것은 《조선불교유신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 다른 경전과 달리 근대불교라는 시대의 산물이다. 《불교대전》를 집필한 배경으로서 《조선불교유신론》과의 상관성이나 《불교대전》 편찬에 드러난 근대 인식을 검토하는 것은 만해사상을 깊이 있게 파악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자치품과 대치품에 역점

만해 스님이 백담사에서 정식으로 출가한 해는 27세 때인 1905년이다. 이때 일본에서는 영국에 유학을 다녀온 일본 정토진종 동본원사파 난조분유(南條文雄, 1849~1927)가 마에다 에운(前田慧雲)과 함께 편찬한 《불교성전(佛敎聖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일본 사회에 급속히 보급되고 있었다. 1908년 약 6개월간 일본을 돌아볼 기회를 가진 만해 스님은 이때 《불교성전》을 접한 것 같다. 짧은 기간이지만 일본의 개화된 실상을 직접 목격한 만해 스님은 《조선불교유신론》으로 개혁의 의지를 다지고, 《불교성전》(1905)에 자극 받아 《불교대전》 편찬에 박차를 가하였다. 《불교대전》은 구성 체계의 독창성이나 풍부한 경전 인용 등을 감안하면 《불교성전》을 훨씬 능가하는, 만해 스님의 독특한 사상이 고스란히 반영된 산물이다.

총 9품으로 구성된 《불교대전》의 제6 <자치품>이나 제7 <대치품>에는 유교적 세계관과 서구 근대사상의 요소가 스며있다. 만해 스님이 역점을 두고 공 들인 이 두 품은 양적으로도 그 중요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치품>과 <대치품>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것은 만해사상의 특성을 밝히는 중요한 방법이다. 《불교대전》의 체계나 구성 방식은 만해 스님이 지향하고, 구상한 바가 무엇인지 가늠케 하는 중요한 단서라고 할 수 있다.

《불교대전》 역시 시대의 산물이므로, 만해 스님이 어떠한 상황과 시대정신으로 편찬 작업에 착수하였는지 그 배경을 탐색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일제 강점기 식민지 지식인이 전통과 근대를 어떻게 극복하고 수용하였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이자, 만해 스님의 사상이 한국불교사상 뿐만 아니라 한국 사상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의의를 살펴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대중불교’ 실현을 위한 초석 작업

세계정세와 나라 안팎의 격변하는 시대 흐름에 민감했던 만해 스님은 백담사로 출가하고도 산중에서 조용히 수행에만 정진할 수 없었다. 스님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일본, 만주 등 바깥세상을 탐방하는 외유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서도 불교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며, 시중(市中)의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하였다. 《조선불교유신론》과 《불교대전》은 만해 스님이 직면한 시대상황을 불교적 방식으로 모색한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불교대전》은 만해 스님의 교상판석서(敎相判釋書)이자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언급한 개혁적 이상을 집약한 사상서로서 만해사상의 다양한 지형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기본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조선불교유신론》이 승가의 개혁론이었다면, 《불교대전》은 재가신도를 위한 불교교리 및 불교사상 길라잡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대전》을 편찬하기로 계획한 만해 스님은 1912년부터 경남 양산 통도사에 비치된 《고려대장경》 1,511부 6,802권을 낱낱이 열람하기 시작하여, 2년 후인 1914년 범어사에서 간행하였다.

《불교대전》은 만해 스님의 신념인 ‘대중불교’를 실현하기 위해 초석을 놓은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즉 고려대장경과 범어, 팔리어 경전 등 400여 개가 넘는 경전에서 총 1741(1,742)개에 달하는 인용구를 가려 뽑아 《불교대전》을 편찬한 것은 한국불교사의 기념비적인 일이다. 불교의 골수를 일반 대중에게 전하고자 한 만해 스님의 대승적 보살정신에서 연유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만해 스님은 탈세속적 구도의 초역사적 일탈을 부인하고, 끝임 없이 변화하는 역사의 현장 가운데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현실 속에서 구현해 나가고자 하였다.

어릴 때 가슴 깊이 품었던 의인·열사를 추구하던 지사적 정신은 대승보살의 원력으로 승화되고, 일체중생개유불성(一切衆生皆有佛性)의 불성론(佛性論)은 자유·평등의 근대적 사상 체계의 안에 자리매김하였다. 《불교대전》은 이러한 일련의 만해사상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만해는 경전에서 간추린 인용구들을 총 9개의 품(品)과 32개의 장(章), 189개의 절(節), 항(項)으로 분류하여 수록하였다. 품과 품에 속한 장, 절, 항 등에 적합한 내용의 불교경전 구절들을 대입시키고, 그 핵심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주제어를 각각 달아 일목요연하게 구성하였다.

총 9개의 품은 ‘서품(序品)’, ‘교리강령품(敎理綱領品)’, ‘불타품(佛陀品)’, ‘신앙품(信仰品)’, ‘업연품(業緣品)’, ‘자치품(自治品)’, ‘대치품(對治品)’, ‘포교품(布敎品)’, ‘구경품(究竟品)’이다.

만해는 ‘경전의 민중화’, ‘문자로의 선포’라고 표현할 정도로 역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불교대전》은 바로 만해의 대중교화, 포교, 역경에 대한 사상과 실천 의식 속에 탄생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제6 자치품’과 ‘제7 대치품’은 《불교대전》에 담겨있는 만해 사상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품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두 품에 인용된 경전 수가 전체 인용경전의 약 60%에 이르는 만큼, 만해가 제6 품과 제7 품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불교대전》을 편성하였는지 알 수 있다.

제6 품, 제7 품의 내용은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내용 즉 사회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과 자세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불교의 대중화, 근대화라는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의도가 ‘자치품’과 ‘대치품’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유교적 도덕규범과 근대적인 윤리 의식이 혼재되어 있는 구성의 함의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만해 사상의 여러 층위를 살펴볼 수 있다.

《불교대전》에 언급된 경전은 약 430여 종에 이르며, 이들 가운데 20여 차례 이상 인용된 경전은 《화엄경》, 《열반경》, 《아함경》, 《법구경》, 《제법집요경》, 《대승기신론》, 《출요경》, 《심지관경》, 《대방등대집경》, 《대승보살장정법경》, 《사십이장경》, 《유마경》이 있다. 특히 《화엄경》의 인용 횟수가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열반경》이 뒤를 잇고 있으며, 《화엄경》과 《열반경》에 이어 《유마경》에 대한 만해의 특별한 관심 또한 만해 사상의 특성을 규명하는데 주목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불교대전》은 만해가 지향하는 특정한 사상의 구도 하에 체제가 편성된 다음, 그 틀에 걸맞은 경전 내용들이 자리매김 됨으로써 잉태된 만해 사상의 결산물이라 할 수 있다.

한용운의 《불교대전》이 갖는 독창성으로는 ‘신앙’의 차원에서 ‘발심(發心)’의 강조, 부처뿐만 아니라 ‘보살사상’의 강조, 일체 만유의 ‘평등성’과 ‘수학(修學)’과 ‘수행(修行)’의 강조 등이다. 그것은 부처와 보살과 일체중생의 평등을 강조하는 평등주의적 세계관과 발심과 발원을 통한 인간의 주체적 자각을 강조하는 한용운의 기본 사상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불교대전》의 목차 구성상의 특징에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유가적 성격도 발견할 수 있다는 지적처럼 대승 불교적 보살사상이나 유교적 세계관이 두드러진다는 것은 《불교대전》의 특성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정토진종(淨土眞宗)에서 발간한 《불교성전》이 정토계열의 경전을 많이 인용한 반면 《불교대전》에는 선사(禪師)로서 한용운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선불교적 측면들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선불교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이라 할 수 있는 《금강경》은 단 한 번도 인용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면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여러 가지 특징들을 고려하여, 《불교대전》을 보다 심도 있게 분석한다면 한용운의 유교관, 계율관, 경전관, 불교관 등 다채로운 만해 사상의 파노라마를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대전》은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밝힌 구세주의적 불교개혁 의지의 구체적인 산물로서, 성전(聖典)의 대중화를 통한 대중 불교 운동의 첫 행보였다. 그리고 《불교대전》 편찬 작업 그 자체가 한용운에겐 종교수행이자, 보살행의 실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즉 《조선불교유신》의 평등주의와 구제사상의 구체적인 실현물이 바로 《불교대전》이라 할 수 있다.

한용운 사상의 의의는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전통의 비판적인 계승 발전을 들고 있다. 즉 유가적 선비 정신을 대승불교 보살사상으로 승화시킨 것처럼, 유학의 한계가 노정되었을 때 불교에 귀의함으로써 유학을 비판적으로 극복 계승하였다. 불교에 귀의하여서도 은둔적인 산간 불교를 역사 사회와 더불어 호흡하는 불교로 재생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이와 같이 전통적인 것에 대한 새로운 검토와 근대 서구사상을 주체적 입장에서 선택적으로 수용 소화하여 반제 반봉건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둘째, 사상과 행동의 일치를 들 수 있다. 만해에게 사상과 행동, 이론과 실천은 둘이면서 하나로 융합되어, 행동은 행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의 연장이며 동시에 사상을 더욱 심화시켜 준다. 보살행이라는 행동의 세계에 대한 관심은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과 서로 대립하면서, 보충하는 속(俗)과 성(聖)의 상보적 계기를 이루고 있다.

한용운은 전통의 기반 위에 서구 사상을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그 사상이 현장성을 띠며 적극적인 힘으로 전화되어 작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한국 근대 사상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