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종여 '의곡사 괘불도'(1938, 면에 채색, 652x355cm, 진주 의곡사 소장) <자료=국립현대미술관>

914년 거창 출생, 거창보통학교 졸업 후 해인사에서 생활하다가 해인사 스님의 후원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뒤 태평양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우고, 다시 오사카미술학교에서 일본화를 배웠다. 1934년 오사카미술학교 본과에 입학하여 1942년 연구과를 졸업할 때까지 한국을 오가며 이상범 문하에서 한국화를 배웠다. 1939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 수상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으나 전운이 짙어지면서 일본에 협조하는 행적을 보이기도 했다(《결전미술전람회》에 전쟁화 출품, 대동아전쟁 출정자에게 나누어줄 수호불상 1천매 헌납 등). 해방 후 두 차례의 개인전을 열고 왕성하게 활동하던 중 월북했다. 북한에서는 조선화 교육과 보급에 앞장서며 공훈예술가, 인민예술가로서 인정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개한 정종여 화백에 대한 해설이다.

월북이나 친일행각을 이유로 국내에서 조명 받지 못한 정종여 등 일제강점기, 해방기, 한국전쟁과 전후 시기에 활동한 화가 6명을 조명하는 작품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근대미술가의 재발견1: 절필시대>전을 9월 1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관에서 개최한다.

전시는 △근대화단의 신세대: 정찬영, 백윤문 △해방공간의 순례자: 정종여, 임군홍 △현대미술의 개척자: 이규상, 정규 등의 3부로 구성했다.

정찬영(1906~1988)과 백윤문(1906~1979)은 각각 동경 유학파 출신의 이영일(1903~1984)과 김은호(1892~1979)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우고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채색화조화와 채색인물화로 두각을 나타낸 신세대 화가였다. 이들은 1930년대 전람회의 스타 작가로 부상했지만 정찬영이 가정사로, 백윤문이 지병으로 절필을 한 뒤 화단에서 사라졌다.

정종여(1914~1984)와 임군홍(1912~1979)은 1940년대 누구보다 왕성하게 활동했으나 1950년 월북을 기점으로 남한 미술사에서 삭제되었다. 정종여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전 국토를 화폭에 담고자 하였으나, 분단으로 인해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임군홍은 중국을 여행하며 자유로운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으나, ‘운수부 월력 사건’에 연루되며 그 빛을 잃고 말았다. 이후 이들은 해금조치 되었으나 남한에 남아 있는 작품은 수가 많지 않다.

이규상(1918~1967)과 정규(1923~1971)는 일제강점기에 교육을 받고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현대미술을 개척한 한국 모던아티스트 1세대다. 이규상은 일체의 형상이 배제된 극도의 추상회화를 추구하면서 세상의 이해로부터 멀어졌고, 정규는 현대 판화와 현대 도자의 개척에 몰두하면서 상대적으로 화가로서 위상이 서서히 낮아졌다. 두 작가는 주류 화단과 거리를 두었기에 오랫동안 변방에 머물러왔다.

이번 전시에는 정종여가 조성한 〈진주 의곡사 괘불도〉(등록문화재 제624호)가 선보이는데 이 작품은 6미터가 넘는 괘불로 전통 불화 양식이 아닌 파격적인 채색 화법으로 그려졌으며 사찰에서는 1년에 단 하루만 공개하는 그림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근대미술 연구와 전시로 특화된 덕수궁관의 역할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 추진 중인 한국미술사 통사 정립 사업에도 일익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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