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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택 신회
평가는 역사에 맡긴다
2019년 06월 17일 (월) 11:54:12 강호진 작가

“1924년, 나는 《중국선학사(中國禪學史)》의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혜능까지 써내려가다가 펜을 놓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송고승전》에서 신회가 북종(北宗)과 대결한 기록을 보았고, 또 종밀의 저서에서는 ‘797년 칙명이 있어 신회를 7조로 했다.’는 부분을 읽었다. 어떻게든 신회에 관한 자료를 찾아야 했다.”

중국 근대불교학을 정초(定礎)한 호적(胡適, 1892~1962)은 《신회화상유집(神會和尙遺集)》의 서문에서 위와 같이 썼다. 《중국선학사》를 제대로 쓰기 위해선 하택신회(684-759)를 복원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호적이 볼 때 남종선에서 이름이 지워진 신회야말로 5조 홍인의 상수제자인 북종의 신수(神秀, 606-706)를 젖히고 과감하게 무명(無名)의 혜능을 6조로 내세운 인물이자, 달마를 남종선의 법맥으로 끌어온 공로자였기 때문이다. 돈황석굴에서 뒤늦게 발견된 신회의 저술들과 유배를 당하면서도 굽히지 않았던 6조현창운동을 통해 우리는 신회가 투사이자 논객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역사는 신회의 손을 들어주었다. 혜능은 6조로 자리 잡았고, 남종선이 중국의 선종 전체를 대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에게 ‘남종의 7조’라는 영예까지는 허락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알음알이로 깨달음에 접근하려는 ‘지해종도(知解宗徒)’로 낙인이 찍힌 채 남종선에서 퇴출되고 말았다. 그 이유의 절반은 신회 자신이 제공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운명이라 부를만하다. 운명이라고 하는 이유는 신회를 옹호하고자 했던 후대의 시도들이 그를 더 깊은 수렁으로 처박아버렸기 때문이다.

중국의 규봉종밀과 이 땅의 보조지눌이 신회를 옹호했지만, 그들 모두 화엄교학에서 출발해 선(禪)에 닿았던 이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선교일치를 주장했던 이들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신회는 불립문자를 내세우는 정통선사의 이미지와는 점점 멀어져갔다. 만약 종밀과 지눌이 애초에 선사에서 출발해 선교일치를 말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까? 우리는 그 답을 간화선(看話禪)을 제창한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대혜는 ‘화엄경 구절구절이 선이 아님이 없다.’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대혜를 지해종도라 부르지 않았다.

“돈오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 VS "점수 이론 더해 훼손“

그렇다면 신회가 지해종도로 낙인 찍히게 된 나머지 절반의 이유, 즉 스스로 빌미를 제공했다는 부분은 무엇일까? 그전에 왜 오늘날 선종사를 연구하는 다수의 학자들이 신회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가 남종선의 주류사상과 전혀 관련이 없다면 선사로서 재평가를 해야 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신회의 사상을 대표하는 핵심적 용어는 돈오(頓悟)이다. 신회는 남종선이 달마의 선법을 이은 정통선임을 주장하면서 신수의 북종은 점오(漸悟)의 선법이고, 남종선은 단박에 깨닫는 돈오로 표현했다. 신회는 북종을 본래 모든 중생은 불성을 갖추고 있으나 번뇌와 미망의 구름에 가리어 보이지 않으니 수행을 통해 점차로 불성을 되찾자는 점진적 깨달음으로 파악한 반면, 남종선은 번뇌와 깨달음이 둘이 아닌 불이법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우리 6조 대사는 단도직입과 직료견성(直了見性)만을 말할 뿐, 북종과 같은 단계적 수행을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신회의 주장은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을 기치로 삼고 있는 남종선의 근본사상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또한 신회는 좌선이라는 구례의 형식적 선수행법을 벗어나 좌선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했다.

“나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고, 자신의 본성을 보는 것을 선(禪)이라 한다.”

이 부분은 《육조단경》의 〈좌선품〉에서 혜능이 말한 내용과 일치하는데, 돈황본 《육조단경》이 《신회어록》과 많은 부분에서 겹쳐지는 것은 《육조단경》의 진짜 저자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신회를 지우고서 육조혜능만 모셔온 선종의 역사가 과연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여기서 끝이었다면 신회의 복권은 완벽했겠지만 《보리달마남종정시비론》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의 발언이 등장한다.

“공부하는 이는 단박에 불성을 보고, 점차로 인연을 닦아야 해탈할 수 있다. 비유하면 어머니가 아이를 단숨에 낳지만 젖으로 점차 양육해 아이의 지혜가 자연히 증장하는 것과 같다.”

위의 말은 신회 자신이 역설해온 돈오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처럼 보인다. 신회가 돈오를 말하고서 점차적 수행을 덧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돈오는 분명 깨달음에 대한 새로운 활로를 열어젖히지만 실천적 입장에서 보면 약점이 된다. 구체적 수행방법이 들어설 여지를 없애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불자들이 선불교를 떠나 초기불교의 수행법으로 몰리는 현상도 이와 연관이 깊을 것이다. 일각에서 신회의 이런 주장에는 북종의 공세에 대항하기 위한 일종의 방편이었다고 보고, 신회의 사상은 돈오에 방점이 있는 것이지 곁가지인 점수를 중심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수가 소위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두 측면을 다 말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신회를 돈수나 점수 가운데 한 가지 입장으로만 통일하려는 모든 시도에 괄호를 쳐두고 싶다. 신회를 지해종도로만 낙인찍어온 지난 역사도 편파이지만, 신회를 돈오돈수론자로서 복권시키려는 일각의 시도 또한 독선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부침 속에서 겨우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신회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러니 여러분, 제 평가는 역사에 맡기는 것이 어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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