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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예술의 힘
'시저는 죽어야한다', '빌리 엘리어트'
2019년 06월 17일 (월) 11:45:42 박정미 자유기고가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말로는 ‘예술은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자기 안의 위대한 본성을 일깨워 준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이 현재의 삶에 자유를 줄 거라는 희망을 갖는다. 실제로 예술은 자본주의의 노예로 사는 삶에서 풀려나 좀 더 관조적으로 세상을 보길 권한다. 현실과 떼어놓음으로서 더 객관적으로 현실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술을 주제로 한 영화 두 편을 골라보았다.

   
▲ <출처=다음>

강력범들의 생애 최초 연극

‘시저는 죽어야 한다’ (2012, 비토리오 타비아니· 파올로 타비아니 연출)

영화감독 비토리오. 티비아니와 파올로 타비아니 형제는 이탈리아 레비비아교도소 재소자 교화사업으로 실시하는 연극 공연을 맡아 진행하면서 모든 과정을 영화로 만들었다. 연기자가 아닌 실제 재소자들의 상황을 찍은 영화로 강력범들에게 배역을 맡기는 장면, 연기를 지도하는 장면, 이들이 연습에 몰두하는 장면과 연극을 성공리에 공연하는 모든 과정을 필름에 담았다.

그렇다고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다큐와 드라마의 경계인데 둘의 장점을 완벽하게 조화시켰다.

무료한 감옥생활에서 탈출하고자 연극에 참가한 죄수들의 면면을 보자.

시저 역을 맡은 지오반니는 17년 형을 선고받았고 카시우스 역을 맡은 코시모레가는 종신형을, 브루투스 역의 살바토레는 14년 8개월 형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그들의 오디션이 첫 장면인데 열정이 너무 뛰어나고 눈빛이나 감정이 살아있어 자막이 없었다면 교도소에서의 오디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을 정도다. 그들 중 경쟁을 뚫은 인원이 선발됐고 드디어 연습에 돌입했다.

이들이 할 연극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다. 총 연습기간은 6개월, 그들은 고대 로마인들의 영웅적 삶을 연기하면서 심경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마약 밀매로 복역 중인 지오반니가 시저 역에, 살인범인 코사모레가는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서 시저 암살 음모를 꾸미는 카시우스 역에 몰두했다. 카시우스는 절대 권력의 야망으로 공화정을 능멸하는 시저를 살해하려고, 주저하는 브루투스를 회유하여 살인 음모에 가담시킨다. 범죄 조직에 관련되어 형을 살고 있는 살바토레는 배신자의 상징으로 불리는 브루투스 역을 맡았다. 시저의 양자인 브루투스는 시저의 제2상속인으로서 시저 암살 모의에 가담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카시우스의 회유, 공화정에 대한 열의로 브루투스는 시저를 배신한다.

배역에 몰입할수록 배우들은 자신이 경험한 과거 범죄 정황이 떠올랐다. 권력과 돈에 대한 야망, 그 과정에서 우정을 배신하고 신의를 배반하고 살인과 음모도 불사했던 순간이 떠오르면서 다시 분노가 일기도 한다. 하지만 범죄 피해자들의 심경도 헤아려져서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보면서 후회가 밀려왔다.

재소자들은 연습에 몰입하면서 관계에 대한 애착이 생기고 삶이 충만해지면서 생활에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배우들은 부족한 연습 시간을 안타까워하며 교도관과 조정에 나섰고 이러한 변화에 감동한 교도관은 규정에 없는 연습 시간을 허용했다. 좀 더 나은 연기를 위해 골몰하는 그들의 순수한 열정을 카메라가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다.

배우들의 열정과 연출자의 노련함이 어울린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로 공연은 성황리에 끝났다. 공연자들은 물론 가족과 지인인 관람객들도 감격에 겨워 환호하며 서로 부둥켜안았다. 카시우스 역을 맡은 코시모레가는 공연을 마치고 자기 방에 돌아와서 탄식했다.

“예술을 알고 나니 이 작은 방이 감옥이 되었구나.”

예술을 통해 자유의 힘을 알게 됐고, 그러니 자신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만약 그들이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 전에 예술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실제로 살바토레 스트리아노는 출소해서 배우가 되었고, 또 다른 누구는 작가가 되었다 한다. 아마 이들이 다시 범죄에 가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영혼을 정화하고 진정한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 <출처=다음>

정해진 인생을 거스르는 용기

빌리 엘리어트(2000, 스티븐 달드리 연출)

영국 북부 탄광촌에 사는 빌리는 파업 시위에 열성인 아버지와 형, 그리고 치매증세가 있는 할머니와 살고 있다.

때는 1980년대 중반, 영국의 대처수상과 탄광 광부들이 극한 대립하며 파업을 하는 와중이었다. 이 말은 아버지와 형이 광부인 집안에 돈의 씨가 말랐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자신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한 아버지는 빌리에게 약간의 돈을 주어 권투를 배우게 시켰다.

권투를 배우러 다니다가 체육관 한쪽을 같이 쓰게 된 발레학원의 수업을 우연히 보고 매력을 느낀 빌리는 토슈즈를 신은 여학생들 뒤에서 동작을 따라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재능을 발견한 발레 선생님 윌킨슨 부인은 빌리를 발레리노가 되도록 도와주려 한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것과 집안 중심에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형이 있고, 그나마 지지해줄 수 있는 할머니는 치매라는 배경을 설정한 것은 완벽하게 빌리의 재능을 이해하고 지지해줄 사람이 없음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이다.

발레 선생님은 로얄발레학교의 오디션을 권유하며 빌리의 개인레슨을 자처한다. 엄마의 품이 그리운 빌리는 선생님에게 마음을 열지만 계속되는 강도 높은 레슨으로 힘들어지자 선생님에게 대들게 된다. 아무도 지지해주지 않아 마음에 갈등이 쌓이는 상황에서 몸까지 피곤해지자 폭발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곧 빌리를 품어주고 빌리의 아버지에게 오디션 이야기를 한다. 남성중심적인 ‘광부의 문화’에 젖은 아버지와 형은 ‘발레는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라며 완강히 반대한다.

그러던 성탄절 저녁, 텅 빈 체육관에서 혼자 연습하던 빌리의 춤추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실망하던 아버지, 빌리는 그동안 갈고 닦은 춤 실력을 선보인다. 너무나도 아름답게 춤추는 빌리의 모습에 아버지는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바라본다.

아버지는 아들의 능력을 깨닫고 아이의 앞길을 위해 파업을 접고 출근한다. 그 동안 파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던 빌리의 아버지는 파업을 하는 동료들의 비난과 욕설을 들으며 탄광 가는 버스에 오른다. 쫒아온 빌리의 형이 아버지를 설득하려 하지만 아버지는 빌리의 앞날을 위해, 빌리에게 기회를 주자고 하며 형을 잡고 운다. 빌리의 형도 함께 운다.

결국 아내의 유품을 판 돈으로 아버지는 빌리와 함께 왕립발레학교에 간다. 촌에서 올라온 빌리는 오디션에서 초조함을 견디지 못해 오디션을 망치게 되고 심사위원과의 마지막 면담 순간, 거의 자포자기에 가까운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춤을 출 때의 기분을 묻는 질문에 빌리는 “춤을 추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지고 새가 되어 날아가는 것 같다”고 말하며 그 짜릿한 감정을 고백한다. 춤의 기쁨을 솔직하게 표현한 빌리의 대사로 심사위원이 감동하게 된다.

몇 주가 지난 후 우체부가 합격통지서를 전달하고 빌리는 왕립발레학교에 입학하고, 빌리의 아버지는 1년여 동안 버텨오던 광부 파업이 패배로 종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성인이 된 빌리는 멋진 발레리노가 돼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 분장을 하고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실제 로얄발레단원인 무용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영화는 척박한 땅에서 죽지 않고 파랗게 솟아난 새싹을 떠오르게 한다.

빌리의 대사처럼 예술은 “한번 시작하면 모든 걸 잊게 돼요. 모든 게 사라지는 기분이에요. 몸 전체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감전된 것 같기도 하고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나는 기분이에요.” 그렇게 우리 몸을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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