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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륙재
시방법계 떠도는 외로운 넋에 전하는 부처님 가르침
2019년 06월 17일 (월) 11:11:51 김현남 전 삼화사 국행수륙대재 사무국장
   
 

수륙재는 505년 황제보살이라 알려진 양나라 무제(武帝:464~549)에 의해 처음으로 설행되었다. 《불조통기(佛祖統紀)》 권 33에 나온 수륙재의 연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양 무제가 어느 날 법운전(法雲殿)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비몽사몽간에 어떤 신승(神僧)이 나타나서 ‘황제께서 발심을 하셔서 많은 사찰을 짓고 불탑을 쌓고 경전을 번역하심은 대단히 좋은 일이오나, 육도사생(六道四生) 속에서 고통 받는 중생과 비명횡사로 참혹하게 죽은 무주고혼이 삼라만상에 가득 찼거늘 어찌 수륙재를 설행하여 이들을 구제하시지 않습니까? 이것이 공덕 중에서 가장 큰데, 이것을 설행하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유감입니다.’하더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잠에서 깬 양 무제는 이상하게 여기고 다음 날 여러 고승대덕을 초청하고, 수륙재가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참 있다가 지공(誌公)이라는 스님이 말하길, ‘8만대장경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라 하였다. 양 무제가 학식이 뛰어난 스님들에게 경전을 열람케 하니, 《불설아귀다라니경(佛說餓鬼陀羅尼經)》에 수륙재에 관련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를 토대로 3년간 연구하게 하여 완전한 ‘수륙재의문(水陸齋儀文)’을 지었다. 어느 날 밤에 설단을 차리고 이 수륙재의문을 손수 들고 향과 초에 불을 붙였다가 끈 후 부처님께 ‘만일 이 예문의 뜻이 부처님의 뜻에 맞으면 절을 하는 동안에 등촉이 스스로 밝아져 저절로 불이 켜지고 그렇지 못하면 불이 꺼진 채로 있게 하소서’라고 아뢰고 한 번 절을 하니 등촉이 모두 밝아지고, 두 번 절을 하니 궁전이 진동하고, 세 번 절을 하니 천상에서 꽃비가 내렸다.”

산 자와 죽은 자, 원수와 친구, 범부와 성인 모두에 평등한 자비심 일으켜

동북아시아 불교 문화권에서 전승되고 있는 수륙재(水陸齋)는 설행되는 나라의 전통문화와 불교문화가 잘 어우러져 있어, 수륙재가 설행된 시대나 그 나라의 문화적인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보고(寶庫)이며 종합예술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수륙(水陸)’의 어원에 대해 《석문정통》 권4에서, “수륙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신선은 음식을 흐르는 물에서 베풀고, 귀신은 음식을 깨끗한 땅에서 베푼다고 하는 뜻에서 취한 말이다.”라 하였다. 수륙재를 다른 이름으로 수륙회(水陸會)나 수륙도량, 혹은 비재회(悲齋會), 무차재(無遮齋)라 부르기도 한다.

좀 더 ‘수륙’의 의미를 부연해 설명하면, 말 그대로 물과 땅, 또는 바다와 육지를 총괄적으로 아우르는 말이다. 하지만 수륙은 물과 땅이라는 일반적인 의미 외에도, ‘수’는 땅(이승)을 ‘륙’은 하늘(저승)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륙재에는 하늘 위아래의 세상, 그리고 지하의 명부세계까지 포함하여 시방법계에 떠도는 외로운 넋들을 위해 깨끗한 땅과 물이 있는 장소를 선택하여 음식을 베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지 못한 중생들까지 구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수륙재는 태생· 난생· 습생· 화생으로 태어난 생명의 현세와 망자들의 내세, 그리고 온갖 괴로움과 고통을 되풀이하면서 육도의 윤회세계를 전전하는 모든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여 업장을 소멸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수륙재에 참석하는 대상은 원수가 됐든 친구가 됐든 상관없고 지위고하의 구별이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치지 못한 범부중생이나 지혜와 공덕이 뛰어난 성인이 함께한다. 참석한 이들은 평등한 자비심을 일으켜 구별과 차별이 없고, 시비와 분별, 걸림이 없도록 소통하고 화합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치고 한량없는 공덕을 나누는 공간이자 도량이기 때문에 수륙도량이라 한다.

게다가 수륙재의 의식에는 유주무주의 고혼을 천도하는 공양의례를 비롯하여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참회와 교화적인 공양 의례도 포함하고 있어, 망자와 산 자 모두를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설행되고 있는 수륙재는 크게 상단· 중단· 하단의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단은 불보살과 나한․ 목련존자 등의 성자들을 중심으로, 중단은 천장보살․ 지지보살․ 지장보살을 비롯하여 불교의 오랜 역사에 수용되어 온 모든 호법신들을 모신다. 하단은 영단을 말하는데 범부중생, 지옥중생, 무주고혼과 무연의 아귀들을 모두 한곳에 모이게 하여, 이들에게 공양을 베풀고 예배하여 삼세의 업장을 면하게 하고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기원한다.

   
 

조선 태조가 건국 과정에서 살해한 이들의 명복 빌며 국행수륙재 실시

전승되고 있는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의 수륙재는 고려 광종 19년에 귀법사(歸法寺)에서 처음으로 설행(設行)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에는 팔관회와 연등회 등과 함께 전승되어 오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국행수륙대재로 설행하였다. 특히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태조(太祖)가 고려왕실과 종친 및 신하들을 많이 살해했고, 건국을 한 후에는 이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왕명으로 봄 가을에 강화도의 관음굴(觀音堀), 거제도의 견암사(見巖寺), 동해 삼화사(三和寺)의 국행수륙대재를 시작으로 여러 곳에서 설행하였다.

중종(中宗) 때에 접어들면서 유생들의 상소로 인해 국가 행사로 거행되는 것이 폐지되었다가 최근에서야 다시 서울의 진관사와 동해의 삼화사를 비롯하여 여러 사찰에서, 지역의 특색에 맞는 수륙재가 활발하게 설행되고 있다.

이처럼 조선 초에 수륙재가 활발하게 설행된 것은 건국과정에서 희생된 전(前) 왕조의 넋들을 달래고 이반된 민심을 어루만지고 소통과 화합을 꾀함으로서 사회의 안정을 찾으려 하였던 왕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 전기 태종대에서 세종조로 오면서 사찰 및 야외에서 빈번하게 개설된 사실에서도, 수륙재의 사회통합적인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불교탄압 정책에 의해 불교 의례를 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륙재는 지속적으로 설행되었다. 이는 수륙재가 신분과 지위고하의 차별이나 빈부를 초월하여 평등하게 부처님의 자비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 미술, 음악, 무용이 조화 이룬 종합예술의 보고

수륙재의 내용을 문화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전통과 불교문화가 조화를 이룬 종합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수륙재의 근간이 되는 의례문의 구성을 보면 시적인 요소가 들어 있는 게(偈)와 송(頌), 그리고 각종 제문(文)과 다라니 등이 서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단에 배치되는 탱화는 경전에서 이야기하는 부처님의 진리에 대한 가르침이 다양한 형태로 묘사된 불교미술의 예술성이 잘 드러난다. 게다가 각 단을 장엄하는 작약이나 목단· 다리화· 국화· 싸리꽃· 연꽃 등을 오방색으로 한지에 천연염색하고, 전통지화 기법으로 꽃을 만들어 장엄을 하고, 반야용선과 금·은전 등을 한지로 제작하는 등 전통 종이공예의 뛰어난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뿐만 아니라 범패와 짓소리와 홑소리, 안채비와 바깥채비 등의 소리와 전통악기를 다루는 음악, 작법인 바라무와 나비무・법고무・승무 등 전통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수륙재는 불교의례의 원형으로 다양한 형태의 불교의식과 불교문화사를 연구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된다. 또한 수륙재의 내용 가운데 민간신앙의례와 융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그리고 하단의 대상은 역사와 사회문화, 지역의 특징과 자연재해 등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시의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다.

지역적인 이기주의를 비롯하여 개인주의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상실되어 논쟁이 만연하는 현대사회에서 수륙재의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 보면, 공동체적인 업(業)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실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배려와 소통, 가족 간의 소통, 국가사회와의 소통, 자연과의 소통, 살아 있는 모든 것과 소통하는 데 수륙재의 사회적 가치와 의미는 더욱 절실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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