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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독립운동가’ 만해 스님
보훈처 선정…“위대한 저항시인·독립투사”
2019년 06월 12일 (수) 14:42:33 이창윤 기자 budjn2009@gmail.com
   
▲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에 세워진 만해 스님 동상(부분).

재단법인 선학원 설립조사 중 한 분인 만해 한용운(1879~1944) 스님이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함께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저항 시인이자 독립투사인 만해 스님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5월 31일 밝혔다.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에서 태어난 스님은 1913년 불교 개혁 방안을 제시한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을 발간했다. 《조선불교유신론》 발간으로 스님은 불교 혁신 운동을 일으킨 주역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1919년에는 종교계를 중심으로 추진된 3·1운동 계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불교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탑골공원 만세운동과 전국 만세운동에 적극 동참하도록 권유했다. 스님은 그해 7월 10일 옥중에서 <조선독립의 서>란 논설을 집필해 조선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스님은 1921년 12월 21일 출옥한 이후에도 선학원 중앙선원에 주석하며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22년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된 물산장려운동을 지원하고, 1923년에는 조선민립대학 기성회 상무위원으로 피선돼 물산장려를 통한 민족경제 육성과 민족교육을 위한 사립대학 건립 운동에 앞장섰다.

1927년 2월 좌우 합작 신간회(新幹會)의 창설이 추진되자, 스님은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신간회가 창립되자 경성지회장으로 피선되어 민족운동의 최일선에서 활동했다.

스님은 55세 되던 1933년 성북동에 심우장(尋牛莊)을 짓고 입적할 때까지 주석했다. 심우장을 지을 때 총독부 청사가 보기 싫다고 북쪽을 향해 집을 지은 일화는 유명하다.

스님은 일제 말기 총동원체제 아래 자행된 황민화 정책의 거센 파도 속에서도 민족적 자존심을 꺾지 않았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1940년 창씨 개명 반대운동, 1943년 조선인 학병 출정 반대운동 등을 펼쳤다.

스님은 1944년 6월 29일 조국 광복을 1년여 앞두고 입적했다. 법체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독립운동에 기여한 스님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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