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 봉정사 영산암 응진전 선학도<사진=노재학>

작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의 이름으로 통도사, 부석사 등 한국산사 7곳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산사는 7~9세기 창건 이후 현재까지 불교의 신앙, 수행, 생활 기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종합승원으로서 세계유산의 필수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고 등재이유를 밝혔다. 그럼으로써 우리나라는 자연유산 하나를 포함해서 총 13건의 세계유산을 가진 문화강국의 위상을 갖추게 됐다. 그런데 등재 명칭은 아쉬움을 남긴다. ‘한국의 산사 7곳’이라는 이름으로 지정하면 등재 대상이 보다 명확하고 보편성을 가질 것인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개념은 어딘가 애매모호한 느낌을 준다. ‘산사’와 ‘산지승원’의 병렬적 나열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산사를 설명하는 문구 같기도 하고, 동어반복 같기도 하고, 산사의 큰 범주 중에서 산지승원으로 압축하는 개념으로도 해석 가능하게 한다. ‘산지승원’이라는 개념은 대웅전 등 법당건축 보다는 스님들의 생활 및 수행공간에 초점을 맞춘 듯한 오해를 갖게 한다. 세계유산 등재 기준인 ‘지속성’과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맞추려 지혜를 발휘한 개념이라 하더라도 명확하지도, 조화롭지도 못한 측면이 있다. ‘산지승원’의 개념성은 한국산사의 수도자들의 수행과 생활공간 측면을 부각함으로써 한국산사 내부에 간직한 문화예술 영역은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힘든 걸림돌로 작용한다.

첨단기술과 접목하면 콘텐츠의 보고

한국산사는 그 자체가 미술관이고 박물관에 가깝다. 대웅보전, 대적광전, 극락보전 등 중심법당에는 한 시대의 종교, 철학, 건축, 예술이 결집해 있다. 위엄 갖춘 목조건축과 불상, 후불탱화, 벽화, 불단, 닫집, 꽃살문, 천정장엄, 단청 등 당대의 가장 뛰어난 건축역량과 조각, 회화, 금속공예 부문의 예술역량이 펼쳐져 있다. 한국산사 법당(法堂)은 말 그대로 ‘법의 집’으로서 불국토를 구현한 건축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서 한국산사 7곳을 안내하는 콘텐츠의 중심은 산지지형의 가람배치 외형구조에 둘 것이 아니라 법당의 장엄세계에 보다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다. 법당 장엄세계는 한국문화의 정수와 독창성, 고유성이 응집된 보고이기 때문이다.

▲ 양산 통도사 대웅전 천정 문양과 화판. <사진=노재학>

한국산사 콘텐츠의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의 관점 차이는 향후 연관사업의 주된 흐름을 결정하는 상수로 작동할 것이다. 산지승원의 수행공간에 접목한 연관사업은 명상이나 템플스테이 위주의 체험이 중심에 놓이게 된다. 산사 7곳이 저마다 갖춘 특성은 명상체험의 일반화에 따라 고유성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천편일률로 흐를 경향성이 내포되어 있다. 법당의 장엄세계에 콘텐츠의 중심으로 놓을 경우 한국산사의 문화예술적 가치는 세계 속으로 파고들며 무한히 확산된다. 방탄소년단의 'K팝'에 이은 한국단청미술을 활용한 'K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산사 법당은 극락정토, 영산회, 연화장세계 등 불교 세계관을 구현한 불국토이며, 경전 내용을 충실히 반영한 교의의 세계다. 법당은 진리와 자비의 세계로서 용, 봉황 등의 조형으로 표현한 길상과 신령한 기운으로 충만하며 연꽃, 넝쿨, 물고기 등의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모든 건축부재에 빈 곳 하나 없이 미묘한 색채와 세련된 디자인으로 규범 갖춘 단청을 베풀고 있다. 단청 색채와 디자인, 풍부한 소재의 사찰벽화, 천정문양, 꽃살문의 패턴, 불단에 펼친 세계는 사찰 저마다 고유하고 개성을 드러낸다. 온갖 꽃과 넝쿨, 기하적인 패턴으로 정형성을 갖춘 단청문양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일차적 질료들로 불교사상과 사유체계로 재해석한 상징세계다. 형이상의 심오한 상징세계이고 지고지순한 예술적 미로 승화된 한국산사 종교장엄, 나아가 한국 전통미술의 결정체이자 원형질이다. 그 원형질이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법당 내부의 어둠과 고요, 그리고 무관심 속에서 주의를 끌지 못 하고 있다. 우리시대 디지털 첨단기술을 만나는 순간 예술적, 종교적, 민족문화 가치는 폭발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 내부엔 그런 안목과 도전적인 발상을 가진 주체가 없다. 세계문화유산을 세계에 확산시켜 문화강국의 위상을 갖춰야 한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IT강국이다. IT와 전통미술을 하나로 결합시켜 민족문화의 자부심을 고양시킬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있다. 미디어 아트, 가상현실, 사물인터넷 등 시대 흐름을 반영한 첨단기술과 접목시켜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다.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등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산사 7곳은 권역별 지역에 고유하게 나타나는 장엄세계 특성의 플랫폼으로 역할 해야 한다. 컴퓨터, LCD, 비디오,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접목시킨 디지털 작업을 통해 한국산사 단청미술을 우리시대에 재해석하고 재생산하는 것, 그것이 침체일로에 있는 한국의 불교문화를 부흥시킬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한국산사의 장엄세계는 미디어 아트의 무궁무진한 보고다.

노재학 | 사진작가, ‘한국산사의 단청세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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