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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의 발원지 육조 혜능
2019년 05월 20일 (월) 13:42:15 강호진 .

올봄이 첫 악수를 건넬 무렵 하동 쌍계사를 찾았다. 매화 향에 취해 경내를 거닐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육조 혜능(六祖慧能, 638~713)의 머리를 모셔두었다는 금당이었다. 금당 안에는 7층으로 된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이 있는데 만약 혜능의 등신불이 중국에 있다는 사정을 아는 이라면 이 탑의 내력이 의심스러울 것이다. 중국 남화사에 모셔진 혜능은 그 모습이 온전하기 때문이다. 세속의 시각으로 따지자면 남화사의 미라가 혜능이 아니든지 쌍계사 금당에 육조의 머리가 없든지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있음의 반대가 없음이고, 사실의 대척점에 허구가 있다고 확신하는 태도는 불교적 사유는 아니다. 모든 현상이 실체가 아님을 아는 것이 곧 여래를 보는 것이라 말하는 《금강경》의 구절이 이를 말해준다.

진실과 진실이 아님을 애초에 분할할 수 없다는 안목으로 보아야 육조정상탑은 물론 혜능에 관해 내려오는 다양한 이야기 또한 불교적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선종의 역사에서 혜능이 개조가 된 이유

육조의 머리가 쌍계사에 있다는 연기설화가 생겨난 것은 《경덕전등록》의 기록, 즉 신라 승려 김대비(金大悲)가 육조의 머리를 신라에 가져가려다 실패한 사건이 빌미가 되긴 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혜능이 남종선이라 불리는 중국 선종의 개창자로 모셔졌다는 데 있다. 선종의 근원은 달마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달마는 남종선이 북종선에게서 빼앗아 온 상징자본일 뿐, 중국 특유의 색깔을 지닌 선종은 육조혜능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렇다면 쌍계사에 육조의 머리가 모셔졌다는 연기설화는 선리(禪理)의 골수가 이 땅에 있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홍인 아래에서 혜능과 동문수학했던 현색(玄賾)은 《능가불인법지(楞伽佛人法志)》에서 혜능을 포함한 몇몇 제자들을 언급하며 “모두 남들의 스승이 될 자질을 갖추었으나, 단지 일방의 인물이다[此並堪爲人師 但一方人物].”라고 썼다. ‘일방(一方)’이 한 지역에 국한된 그릇이란 뜻인지, 혹은 깨달음이 원만하지 못하다는 뜻인지 알 수 없지만 ‘다만[但]’이란 말이 앞에 붙은 것으로 보아 한계를 드러낸 것임은 분명하다. 그저 그런 선사로 스쳐갈 수도 있었던 혜능을 선종사의 무대 중앙에 세운 이는 제자였던 하택신회(荷澤神會)였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기획한 ‘혜능 띄우기’는 성공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역사는 신회를 혜능의 적자에서 제외시켜 버렸다.

혜능의 전기를 다룬 선서(禪書)는 18종에 달한다. 하지만 자료의 풍부함이 혜능을 이해하는 데 있어 꼭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혜능의 한자는 ‘慧能’이지만, 초기문헌에는 ‘惠能’이라 쓰여 있고, 홍인의 문하로 든 나이 또한 자료에 따라 22세, 32세, 34세로 들쑥날쑥하다. 특히 후대의 기록일수록 혜능을 육조로 신비화시키는 경향이 농후해져 혜능의 진면목을 알기가 더 어려워진다.

오늘날 혜능의 일생을 거론할 때 근본자료로 삼는 것은 가장 오래된 기록인 〈광효사예발탑기〉인데, 혜능이 홍인의 법을 비밀리에 전수받고 숨어 지내다 인종법사를 만나 삭발을 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의 비문이다. 그러나 이 비문조차 진위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불자들이 혜능의 친설이라 믿는 《육조단경》은 어떠한가?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살피기 위해선 플라톤이란 안경을 쓰고 보아야하듯 돈황본 《육조단경》 또한 하택신회의 입김이 덧입혀져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육조단경》의 어디까지가 혜능의 직설이자 진실이고, 어떤 부분이 혜능의 이름을 빌린 후대의 가탁(假託)인지 밝히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선불교의 요체도 아니기에 여기선 《육조단경》에 묘사된 혜능의 행장과 사상이 《신회어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아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렇다면 혜능이 남종선의 개조(開祖)로 모셔진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 질문은 전후가 바뀌어있다. 상식대로라면 혜능의 가르침이 이후 조사선(祖師禪)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물어야 한다. 하지만 선종의 역사에서 시간이 항상 과거에서 미래로 흘렀던 것은 아니다. 혜능이 남종선의 종조가 된 것은 신회의 노력도 무시할 순 없지만 결정적으론 후대 선사들의 간택과 공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사들이 혜능을 내세워 드러내고자 한 남종선의 특징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가 언하변오(言下便悟)이고, 둘째는 불이법(不二法)이다.

언하변오는 말을 통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뜻으로 마조와 석두 이래 끊임없이 행해진 스승과 제자 간의 선문답을 말한다. 혜능 이전까지의 선법은 달마의 벽관(壁觀)에서 알 수 있듯 망념이 스미지 않도록 마음을 벽처럼 단단히 챙기는 수행법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혜능 이후로 굳이 좌선을 하지 않더라도 문답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열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달마가 혜가에게 설했다는 저 유명한 안심법문 또한 선종이 역사의 시간을 되돌려 만들어낸 일화임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특징인 불이법은 번뇌가 보리(菩提)와 다르지 않다는 관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번뇌를 제거하고 보리를 획득하는 점차적 수행이 아니라 번뇌나 보리가 본디 있는 것이 아니니 자신의 본래 성품을 보기만 한다면 단박에 깨달을 수 있다는 견성돈오(見性頓悟)의 사상을 말한다. 혜능이란 라벨을 붙인 언하변오와 견성돈오 사상은 결국 선불교의 긴 역사를 하나로 관통하는 중핵이었던 것이다.

나는 쌍계사 금당에서 서서 육조혜능이 일자무식의 나무꾼이자, 방아를 찧는 행자의 신분으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지닌 선적(禪的)인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며 탑을 향해 천천히 두 손을 모았다.


강호진       동국대 불교학과 박사를 수료하고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했다. 불교에 관한 세 권의 책을 썼고, ‘올해의 청소년도서상’과 ‘올해의 불서10’을 수상했다. 현재는 불교철학의 눈으로 사찰벽화를 읽어내는 네 번째 책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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