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더디 온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느새 코앞까지 봄이 와버리더니, 봄을 채 느끼기도 전에 여름이 오는 것 같다. 사계절 중 봄과 가을이 아주 짧아진 느낌이다. 그래도 5월은 부처님오신날이 있는, 불자들에게는 축제인 달이며 아직은 봄나물을 맛볼 수 있는 시기이다.

겨울에는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 열량이 많은 음식을 먹게 된다. 요즘은 고열량 식품이 많아 계절이 바뀌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봄에 신진대사가 원만해지려면 절대량의 비타민과 칼슘, 철분 등 필수영양소가 많이 들어있는 식품을 찾기 마련이다.

겨우내 추위로 웅크려졌던 몸에 활력을 주려면 간에 도움이 되는 식품을 많이 섭취하고 신장의 독소를 배출시키는 식품을 먹어서 춘곤증으로 무력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때 가장 필요한 음식은 무엇일까?

어린 시절 피난민 수용소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혹한의 그 겨울 일사후퇴 때 북한의 흥남부두에서 군함을 타고 거제도로, 다시 부산으로 옮겨 다녔다. 그때 커다란 군용 천막에 사는 피난민 어린이들을 모아서 가르치는 지금의 어린이집과 같은 보육시설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다섯 살의 꼬맹이에게 봄은 춘곤증 때문에 고역의 시간이었다. 보육시설에 갈 때는 신을 신고 신나서 갔지만 조금만 지나면 그냥 잠에 빠져 들었다. 깨어 보면 아이들과 함께 신발도 사라져서 맨발로 수용소로 돌아오기도 했다. 어머니는 “너, 오늘도 또 잤니?”하고 핀잔을 하셨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한의원에 데려갔는데, 간과 신장이 허하니 한약보다 돈이 덜 드는 미나리 즙을 먹여보라고 했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입에 미나리 즙은 마치 독 같아 날마다 울고불고, 죽을 듯 버티다가 결국에는 억지로 마셨다. 그때부터 미나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가 되고 나서 우리 집 식탁에 봄나물로 가끔씩 미나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맑아진다는 의학적 효능을 알고는 더 자주 먹다 보니 지금은 오히려 미나리 향에 푹 빠졌다.

낳은 엄마가 두고 떠난 남편의 두 아들을 20여 년간 키워 장가를 보냈는데, 큰아들의 아이가 신장이 나빠 오줌을 눌 때마다 고생했다. 큰며느리가 병원이란 병원은 다 다녀보았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마지막으로 민간요법인 미나리 즙 요법을 써보기로 했다. 젊은 아들 내외는 처음에는 수긍을 하지 않았지만, 내 어린 시절에 미나리 즙으로 춘곤증과 신장염을 치료했다는 얘기를 듣고 시도하기로 했다. 어린 손자 역시 잘 먹으려 하지 않았지만, 부모가 열심히 먹여 그 후 건강을 되찾아 잘 지내고 있다.

미나리는 여러해살이풀로 그 종류가 80가지나 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먹어 본 미나리는 불과 서너 가지에 그칠 것이다. 종류가 조금 달라도 미나리 효능은 대체로 다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겨우내 미나리 키만큼 물을 채워 키우는 물미나리는 그 줄기 속이 비었으며 부드럽고 향이 적다. 밭에서 크는 돌미나리는 향이 진하고 줄기는 비교적 단단하면서 줄기 끝 부분이 붉은색이 돈다. 또 불미나리는 밑부분이 거의 붉은색이라서 붙여진 이름인데, 효능도 다른 미나리보다 좋은 것으로 친다. 청도에서 나는 한재청도 미나리는 비닐하우스 재배로 낮에는 미나리 밭에 물을 채워 두었다가 밤에는 물을 빼주는 재배법으로 키우는 돌미나리로, 거머리가 거의 없다.

《동의보감》에서 미나리를 이르기를 “음식물이 대장과 소장을 잘 통과하게 하고 황달과 부인병(월경불순), 음주 후의 두통이나 구토증에 효과적이다. 김치를 담거나 날로 먹으면 좋다. 또 갈증을 풀어 주고 머리를 맑게 하고 주독(酒毒)을 제거할 뿐 아니라 신진대사를 촉진한다.”고 했다. 《본초습유》에는 “미나리의 생즙은 어린이의 고열을 내려 주고 항상 머리가 묵직하고 부스럼이 나는 두풍열(頭風熱)을 치료한다.”라고 했다.

한방에서는 미나리를 수근(水芹), 수영(水英)이라고 한다. 고열이나 가슴이 답답하고 갈증이 심한 증세에 효과가 있으며 이뇨작용으로 부기를 빼주고 가래를 삭혀 기관지와 폐를 보호한다. 때문에 황사가 심한 봄에 좋으며 토사곽란이나 오줌소태에 효과가 있다. 땀띠가 심한 경우에도 미나리 즙을 내어 환부에 발라 주면 좋다.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 했던가. 음식이 약이고 약이 곧 음식이라는 말처럼 제철에 잘 챙겨 먹으면 약을 필요 없다는 옛말이 미나리와 같은 식재료를 도고 하는 말이 아닐까.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서도 미나리는 그 성질이 달고 매우며 서늘하고 청량하여 열을 내리고 부기를 가라앉히며, 여름철의 구갈, 황달, 부종과 부인병인 대하를 다스리는 데 쓰인다고 했다.

미나리는 고려시대부터 김치로 담가 먹었다. 종묘에 제사를 올릴 때나 3월 세시음식인 탕평채 주재료로 사용할 만큼 반가의 주요 음식으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냉한 체질이거나 평소에 기력이 쇠한 경우, 한여름에는 삼가야 한다.

미세먼지가 시시때때로 우리를 위협하는 때, 돌미나리 비빔밥 한 그릇으로 건강을 예약하시기 바란다.

※돌미나리 비빔밥

재료_돌미나리 100g, 밥 150g, 고추장 1작은술, 알 배추잎 2장, 냉이 15g, 원추리 15g, 깻순 15g, 방풍나물 15g, 집간장, 천일염, 깨소금, 참기름, 된장 1/4작은술, 황설탕 1작은술, 들기름 1/2작은술.

1. 돌미나리는 깨끗이 씻어 물기를 털고 쫑쫑 썰어 놓는다.
2. 밥을 고슬고슬하게 짓는다.
3. 알 배추잎은 살짝 데쳐서 된장과 참기름, 황설탕을 조금씩 넣고 조물조물 무쳐 놓는다.
4. 방풍나물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된장과 참기름에 무친다.
5. 냉이는 흙을 충분히 씻어낸 후, 4~5cm 길이로 잘라 물에 데쳐 물기를 적당히 짜낸 다음, 집간장과 소금, 깨소금으로 무친다.
6. 원추리나물은 길이 3~4cm 길이로 잘라 끓는 물에 데친 후, 고추장과 참기름, 황설탕과 참기름을 넣고 무친다.
7. 깻순은 데쳐서 들기름과 집간장, 황설탕을 조금씩 넣고 조물조물 부쳐서 팬에 살짝 볶는다.
8. 고추장에 참기름과 설탕 남은 것을 넣어 비빔장을 만든다.
9. 발우나 우묵한 그릇에 무쳐 놓은 나물을 차례로 돌려 담고, 가운데에 미나리를 올려 동글게 담는다.
10. 밥은 따로 밥그릇에 담아서 먹을 때 나물과 같이 버무려 비벼 먹도록 한다.

이 백련성 | 사찰음식점 ‘마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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