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큐를 향해 짚차를 타고 가면서 바라본 포카라 시내 풍경.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레킹 시작지점인 마큐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4륜 구동 SUV에는 우리가 고용한 포터가 탔고, 인도를 여행하다 왔다는 A가 함께 탔습니다. 30대 초반쯤 보이는 A는 포터 없이 20 킬로그램이나 되는 배낭을 혼자서 지고 산을 오르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선택이 다소 무모하게 생각됐습니다.

차가 한참 달려 나야풀에 도착했습니다. 안나푸르나를 올라가는 사람들은 나야풀 여행자검문소(TIMS Check- Pos)t에서 팀스(TIMS, 트레커 정보 관리 시스템)와 퍼밋(ACAP 안나푸르나 보존 구역 프로젝트) 카드를 검사 받아야 했습니다. 일종의 트레킹 허가증인 팀스와 퍼밋을 우리는 미리 여행사를 통해서 신청 했습니다. 포터가 내려서 검사 받으러 갔습니다. 그 사이에 남편과 나는 포터에게 줄 음료수와 고산증 약을 샀습니다.

차로 돌아왔을 때 포터는 카레가 들어간 만두 튀김을 사왔습니다. 그는 그것을 차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카레 향과 기름의 고소함이 어우러져 맛있었습니다. 포터가 건네준 만두를 먹으면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포터는 차에 타고 있는 다섯 명 모두를 생각해 만두를 사왔는데 나는 옹졸하게도 포터만 챙겼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테두리 밖으로 밀어내며 편 가르기를 한 것입니다.

4시간여를 달려서 마침내 차의 종점인 마큐에 도착했습니다. SUV 여러 대가 서있고, 오렌지나 음료수, 과자 등을 파는 가게도 있고, 간단한 음식을 파는 식당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린 전열을 정비했습니다. 이제부터 일주일간의 트레킹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는데 포터는 우리가 갖고 갈 스틱의 키 높이를 맞추었습니다. 포터에게 감동받았습니다. 출발 전에 고객의 준비물을 꼼꼼히 점검하는 모습을 보면서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신뢰감이 생겼습니다.

마침내 안나푸르나산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날씨가 너무 좋았습니다. 따뜻하고 밝아 만물이 소생할 것 같은 봄 날씨였습니다. 거기다 길도 좋았습니다. 평탄한 흙길로, 걷는 맛이 있는 길이었습니다.

정말 오랫동안 히말라야에 오겠다고 별렀는데, 지금 그 히말라야에 있고, 히말라야의 흙을 밟고 있으며 히말라야 공기를 마시고 있고, 히말라야의 물소리를 듣고 있다는 사실에 황홀한 느낌이었습니다.

1시간 정도를 갔을 때 차를 함께 타고 왔던 A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의 등에 있는 배낭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내 마음까지 무거워졌습니다. 20킬로그램이나 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어떻게 산을 오를지 걱정됐습니다. A는 생 라면을 먹으면서 올라갔습니다.

“오늘 어디까지 가세요?”
“촘롱까지 올라가요.”
“우리도 촘롱 가서 자려고 하는데….”
“밤에 보게 되면 또 만나요.”

 

▲ 짚차의 종착지점인 마큐.


차 한잔 함께 못해 아쉬웠던 날다람쥐 여행객

걱정과는 달리 A는 굉장히 빨리 올라갔습니다. 뛰어 올라가는 것처럼 빠르게 사라지는 A를 보면서 남편한테 날다람쥐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20킬로그램이나 되는 짐을 지고 그렇게 빨리 올라가는지 모르겠는데 A는 항상 우리 보다 먼저 올라갔습니다. 30분쯤 올라가서 또 마주쳤는데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안나푸르나산에서 몇날며칠을 보내고 하산할 때 다시 만났는데 A는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베이스캠프에서 이틀 밤이나 잤다고 했습니다. A의 대답에 다소 놀랐습니다. 하룻밤도 지옥처럼 끔찍한 밤이었는데 자발적으로 두 번이나 경험했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밤에 고산증 때문에 힘들지 않았냐고 하니까 괜찮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고산증도 모두가 경험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A는 추위도 별로 못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는 안나푸르나산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고, 그래서 사진에 욕심을 낼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A를 포카라에 있는 음식점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때 A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A가 포카라를 떠나는 밤에 또 우연히 만났습니다. 늦게 숙소로 돌아오다가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 A를 마주쳤습니다. 배낭을 지고 있는 그의 옆에는 음식점에서 봤던 사람이 서있었습니다.

떠나는 A에게 “건강하게 여행 잘 해요” 하고는 헤어졌습니다. 이때 비로소 나는 A가 하찮은 인연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정류장에 서있는 그의 모습이 슬퍼 보였고, 내 마음도 조금 슬퍼졌던 것입니다. 좀 더 잘해줬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우리가 떠나고도 음식점에서 만난 사람은 A를 위해 그 자리에 끝까지 서있었습니다. 잠시뿐인 인연이지만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좋은 느낌으로 와 닿았습니다.

A는 이번 네팔 여행 중 가장 많이 만난 사람입니다. 트레킹 출발할 때 차를 함께 타는 것에서 시작된 인연은 산을 내려와 A가 포카라를 떠나기까지 잠깐씩 계속 마주쳤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차 한 잔 함께 마시지 않았습니다.

A를 단지 차를 함께 타고 가는 사람 정도로만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차에서 음료수를 사주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한 번 보는 인연인데 잘해줄 거 없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이 생각을 조금만 바꿨으면 훨씬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번뿐인 인연이기에 더 잘해줘야 한다’로.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옷깃을 스치려면 전생에 5백겁이라는 시간 동안 연을 맺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작은 인연은 있어도 하찮은 인연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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