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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불교예술인의 눈으로 본 불교예술 - 문학
불교문학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2019년 05월 16일 (목) 17:16:25 유응오 소설가

홍기삼 평론가(전 동국대 총장)는 《불교문학의 이해》이라는 저서에서 불교문학을 분류하면서 △불교경전 문학 △붓다의 가르침을 세계관적 토대로 수용한 창작문학 △경전과 창작의 중간 지대에 걸쳐 있는 문학의 자원(선시, 불교설화, 승전류, 영험록 등)으로 나눴다.

설령 창작문학만으로 불교문학을 국한한다고 불교를 소재로 다뤘는가, 아니면 주제로 다뤘는가 하는 문제는 남는다.

하여 필자는 소재(體)와 주제(用)가 모두 불교적인 서사작품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불교문학의 범주를 불교의 승려, 사찰, 경전을 소재로 다루면서 주제는 보살(菩薩)사상, 무아(無我)사상, 선(禪)사상 등 불교사상을 표현하는 작품으로 국한할 때 아전인수식 해석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광수-김동리-황석영’ 불교문학의 계보

근대문학 초창기에 본격적으로 불교소설을 선보인 것은 이광수다. 이광수는 《이차돈의 사》, 《사랑》, 《세조대왕》, 《원효대사》 등 장편과 〈무명〉, 〈꿈〉 등 중·단편의 불교소설을 남겼다.

이중 단편 중에는 조신설화를 모티브로 한 〈꿈〉이, 장편 중에는 원효대사의 행장을 그린 《원효대사》가 대표적인 구도소설로 꼽히고 있다. 이광수 이후 한국적인 서사 안에 불교사상을 용해하는 데 성공한 작가는 김동리다. 김동리의 작품 중 〈솔거〉 3부작, 〈등신불〉, 〈극락조〉, 〈눈 오는 오후〉, 〈저승새〉 등이 불교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에 해당한다.

〈솔거〉, 〈잉여설〉, 〈완미설〉등 솔거 3부작은 불화(佛畵)를 모티브로 한 연작소설로서 비록 불교사상이 서사 속에 제대로 용해되지 못했으나 탐미적인 한국의 예술가 소설의 원형이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등신불〉은 김동리의 대표적인 불교소설로 꼽히고 있다.

산업화 시기인 1970~1980년대에는 한국문학의 층위(層位)가 다채로워지는데, 당시 불교문학은 산업화의 기치 아래 민주화가 억압 받는 시대상황에 발맞춰 보살사상과 미륵사상에 주목한다.

그 대표적인 작가로 황석영과 조정래를 꼽을 수 있다. 황석영은 단편 〈삼포 가는 길〉에서 백화라는 술집 작부의 삶을 통해 관음보살을 현현(顯現)하고 있다. 조정래는 대장경을 편찬하는 과정을 그린 역사소설 〈대장경〉을 통해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가르침을 역설했다.

당시 양대 대하소설로 평가받는 《태백산맥》과 《장길산》에 등장하는 승려들이 신음하는 민초의 삶을 위무하는 역할을 하는 것도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1970~1980년대 불교문학의 특징 중 하나는 본격적인 구도문학이 잇따라 발표된다는 것이다. 김성동의 《만다라》, 한승원의 《아제아제 바라아제》, 강인봉의 《구나의 먼 바다》가 대표적인 구도소설로 볼 수 있는데, 이 작품들은 승려인 주인공이 불교적인 가르침을 사회에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고뇌하고 있다.

1990년대 불교문학은 미시(微示) 담론인 존재론을 전면에 내세우는데, 윤후명, 윤대녕의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두 작가는 빼어난 문체미학을 통해서 영원성을 희구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윤후명의 〈돈황의 사랑〉과 윤대녕의 〈신라의 푸른 길〉 을 꼽을 수 있다.

1990년대에도 구도소설은 꾸준히 발표되는데, 이전과 다른 점은 실존인물의 전기를 다룬다는 것이다. 고은은 《화엄경》과《선(禪)》을, 한승원은 《초의》와 《원효》를, 최인호는 《길 없는 길》을 발표했다.

1990년대 이후 불교소설로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황석영의 《심청》, 송기원의 《안으로의 여행》을 꼽을 수 있다. 《심청》은 매춘 오디세이아의 서사 속에서 보살행을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고, 《안으로의 여행》은 자전적 구도 여정이 돋보인다.

이상 소개한 내용이 개괄적인 한국 불교문학의 골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되 불교적인 교훈 담아야

2000년대 이후 이렇다 할 불교문학은 발표되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문학도, 불교도 이전에 비해 사회적 영향력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문학은 오락적인 측면에서는 영화에게, 사회고발적인 측면에서는 언론방송에게, 탐구적인 측면에서는 다른 인문학에게 입지를 빼앗긴 지 오래다. 불교는 이런저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출가자도, 재가자도 젊은 층의 유입이 막힌 지 오래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니다. 세계 자본주의의 단계를 살펴보면, 1750~1810년 중상주의(상인자본), 1810~1870 자유주의(산업자본), 1870~1930 제국주의(금융자본), 1930~1990 후기자본주의(국가독점 자본), 1990 이후 신자유주의(다국적 자본)으로 나눠지고, 이러한 단계에 발맞춰 종교도, 문학도 존립가치에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불자(佛子)이고 문학도인 까닭에 인류에게 가장 궁극적인 깨달음을 제시하는 것은 여전히 불교와 문학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당의(糖衣)’는 약을 먹기 좋게 하거나 휘발 성분이 없어지지 않도록 약의 겉에 당(糖)을 입힌 것을 말한다. 내게 화두가 된 말이다.

이태 전 필자는 《하루코의 봄》이라는 옴니버스 형식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이 작품은 내용은 한물간 화류계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지만, 주제는 불교적인, 나아가서는 종교적인 화소(畵素)로 채워져 있다.

앞으로도 필자는 어떠한 글을 쓰든 재미를 잃지 않되 감동(혹은 교훈) 또한 놓치지 않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그것만이 불교문학의 종언이 공공연하게 회자되는 이 시점에 숭고미의 본령인 불교와 문학을 동시에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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