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이 민주화 열기가 넘쳐나던 1980년대 중후반에 쓴 원고를 모은 책 《깨달음과 역사》가 20년 만에 개정증보판으로 나왔다. 이 책은 불교 입문서 역할을 함과 동시에 대 사회 소통의 길을 제시한다.

이 책은 해인사 강사를 역임할 만큼 내전(內典)에 대한 깊은 이해는 물론 외전(外典)의 폭넓은 소양을 바탕으로 불교의 내적 깊이와 대 사회문제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곧 불교의 인식론과 존재론을 깨달음(보디)의 영역으로, 현실과 실천의 범주를 역사(사트바)의 영역으로 거두어들인 최초의 불교역사철학 에세이로서, 새로운 불교해석을 통해 불교도에게 세상을 보고 역사를 인식하는 안목을 열어주고, 보살행 실천의 지침을 제공해준다.

《깨달음과 역사》에서 깨달음은 높디높은 경지가 아니라 다급한 현실, 역사의 중요한 근간임을 현응 스님은 강조한다. 깨달음이란 변화와 관계성의 법칙을 깨닫는 것, 곧 삼라만상이 서로 연기적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깨닫는 일임을 역설한다. 한편 깨달음을 소극적이거나 허무적인 세계관으로 이해하는 이들에겐 “절대적인 가치체계에 종속되지 않는, 열려진 적극성이며 변화를 지향하는 역동성이 바로 깨달음의 세계”라고 일침을 가한다.

특히 한국불교는 대승불교를 지향하고, 보살(보디사뜨바)을 이상향으로 내세운다. 여기서 현응 스님의 새로운 관점의 해석과 의미부여가 나타난다.

“보디사트바(보살)란 ‘깨달음(보디)’과 ‘역사(사트바)’의 합성어가 되는 것입니다. 통속적인 표현으로 ‘깨달음의 역사화’, ‘역사의 깨달음화’라고 하고 싶습니다만, 이 보살의 삶에 있어서는 그의 깨달음에 기초하는 역사로부터 자유로움만 만끽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사와 교섭하도록 적극 참여하여 그 자신을 투사시킨다고나 할까요, 표현은 뭐 합니다만, 저는 이것을 ‘역사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being and history)’와 ‘역사에로의 자유(freedom to being and history)’를 겸한 삶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곧 사회현실을 떠나 불교는 있을 수 없고 사회문제를 도외시한 보살은 불교가 아님을 천명한 것이라 하겠다. 사실 한국불교는 삶, 사회, 역사에 뛰어들지 않는 게 불문율로 되어왔다고 현응 스님은 말한다. 이러한 이원적 사고를 벗어나 일련의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두는 자들이, 그러한 문제들이 불교교리와 어떠한 연관성을 갖는지에 대해 숙고하는 자들이 진정한 불자라 할 것이다.

그래서 현응 스님은 깨달은 사람이 깨달음의 영역에 자족하지 않고 역사의 길에 나서는 것은 존재에 대한 사랑(慈)과 연민(悲) 때문이며, 이 자비야말로 역사적 행위의 원동력으로서 깨달음과 역사를 묶어내는 고리임을 거듭 강조한다.

이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 ‘사제(師弟)에게 보내는 열두 번의 편지’에서는 불교교리의 시원한 설명이 돋보이고, 2장 ‘각(覺) - 깨달음’에서는 역사의 현장에서 보살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일깨운다. 3장 ‘깨달음을 위한 산책’에서는 십우도를 우화에 곁들여 현대적 의미로 내용을 구체화시키고, 4장 ‘돈오점수, 돈오돈수설 비판’에서는 한국불교 수행의 점검과 확충하기 위한 진진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5장 ‘역사에 다가가는 불교’에서는 젊은이들도 보수화되어가는 오늘의 상황에서 새로운 안목을 제시하고, 6장 ‘젊은 날의 단상(斷想)’은 현응 스님의 글맛이 느껴지는 에세이이다.

저자 현응(玄應)스님은 1971년 해인사로 출가해 종성(宗性) 화상을 은사로 수계했고,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 민족문화추진위원회의 국역연수원에서 수학하다가 봉암사, 해인사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하기도 했다. 특히 불교단체(대승불교승가회, 선우도량, 실천불교승가회 등)를 결성해 활동했으며, 총무원 기획실장, 중앙종회의원, 불교신문사장, 해인사 주지 등 종단 소임도 역임했다. 현재는 조계종 교육원장에 재임 중이다.

현응 스님/신국판/불광출판사/13,800원

김영석 기자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