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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의 종교 실천
불교혁신론 목표는 사찰령 극복과 정치·경제적 독립
2019년 04월 12일 (금) 14:06:09 한국불교선리연구원 .
   
▲ 일제 강점기 31본산 중 하나였던 금강산 유점사 능인보전.

1. 종교수행인 만해

만해는 자신이 불교를 믿는 세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첫째, 불교는 그 신앙이 자신적(自身的)이어서 오직 자신의 마음, 즉 자아를 통해서만 불(佛)을 성(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소위 자아라 함은 자기의 주위에 있는 사람이나 물(物)을 떠나서 하는 말이 아니ᄃᆞ. 사람과 물을 통한 ‘자아’이다. 둘째, 불교의 교지(敎旨)는 평등인데, 석가의 말씀에 의하면 사람이나 물(物)은 다 각기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므로 평등하다. 셋째, 불교가 말하는 심(心)은 물(物)을 포함한 심이지만, 정신이 육을 지배하는 편이 많아 보이므로 삼계유심(三界唯心)·심외무물(心外無物)이다. - 한용운, <내가 믿는 불교>

불교는 그 신앙에 있어서는 자신적이요, 사상에 있어서는 평등이요, 학설로 볼 때에는 물심(物心)을 포함, 아니 초절(超絶)한 유심론(唯心論)이요, 사업으로는 박애·호제(互濟)인 바, 이것은 확실히 현대와 미래의 시대를 아울러서 마땅할 최후의 무엇이 되기에 족하리라 합니다. 나는 이것을 꼭 믿습니다. - 한용운, <내가 믿는 불교>

만해는 현세적이자 미래지향적인 진리로서 불교를 확신하고, 자신의 모든 사회활동의 지침으로서 불교적 진리관에 입각하여 문학활동, 독립운동, 개혁운동 등의 행적을 남긴 종교 수행인이었다.

우주 만유(萬有)에는 불성(佛性)이란 다 있어서 그것은 멸(滅)하는 것도 아니고 감(減)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색즉시공이니까 산대도 죽는대도 별로 두렵거나 피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일체는 불성으로 돌아갈 뿐이지요. - 한용운, <인생은 사후에 어떻게 되나 - 기자와의 문답>

만해의 생사를 초월한 투철한 믿음은 독립운동으로 수감되었을 때 죽음을 뛰어넘는 순교자적 항쟁의 모습으로 드러났다. 생사를 초탈한 확고한 믿음 위에 종교 수행인으로서 항일·독립운동을 삶의 현장에서 몸소 실천해 나갔던 것이다.

비구의 출가는 출가 그것이 최대 목적이 아니요, 이진(離塵) 출가하여 오도수행(悟道修行)의 목적을 달하면 곧 출산 입세하여 도생제중(度生濟衆)의 구경(究竟) 목적에 종사하는 것이다. 그러면 출가라는 것은 불교를 온전히 오수(悟修)하려는 일시의 방편이요, 최대 목적은 일체 중생을 제도하여 자타 함께 불도를 성취하자는 것이다. - 한용운, <불교와 효행>

만해는 불교가 ‘무부무군자지교(無父無君子之敎)’로 비판받는 상황을 해명하며, 출가는 일시적인 방편이고 대중 속에서 중생 제도가 불교의 궁극 목표임을 강조한다. 만해의 대중 구제 몸짓은 산과 저잣거리를 오가며 자신이 체득한 깨달음을 사바세계에 구현하고자 한 종교수행인으로서의 실천 행위라 할 수 있다.

1917년 12월 3일 밤 10시경 39세의 만해는 강원도 설악산 오세암에서 수행자로서 내적 체험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오도(悟道)’를 경험하게 된다. 이 체험은 만해가 향후 전개하는 다양한 행적들의 원천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종교의 절정 체험을 경험한 만해는 거침없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깨달음을 현실화하기 위해 다차원적으로 분투한다. 만해가 용(用)적 차원에서 다양한 변신을 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체(體)적 차원에서 그의 정체성은 여전히 선사(禪師)로서 불교수행자였으며, 용적 차원의 모든 행적들은 바로 수행 그 자체로 갈무리되어 만해의 내적 성장과 성숙에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2. 중생구제의 대중불교

종교를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부르조아의 향략적 유희물로 보아서 자본주의 몰락과 동시에 종교도 사멸하리라고 보는 것은 종교에 대한 인식 부족의 착각이다. 종교, 그 중에서도 불교와 같은 것은 교리 자체에 있어서 평등주의, 비사유주의(非私有主義), 즉 사회주의의 소질을 구유(具有)하고 있는 것이나, 그것을 설명하려면 상당한 시일과 지필(紙筆)을 요하겠으므로 후일의 기일로 미루거니와 종교라는 것은 시대와 근기(根機)를 맞추어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본령인 이상,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모든 주의와 제도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그 시대 그 중생에 적응한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가장 현실적, 과학적인 실행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시대에 있어서는 그 시대에 적응한 방편이 있고, 사회주의 시대에 있어서는 그 시대에 적응한 방편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종교라는 것은 인간 사회를 철학적, 윤리적 혹은 정치적으로 어느 제도를 구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 어느 때 어느 사람을 물론하고 그의 기연(機緣)대로 제도하여 마지않는 것이 종교의 금도(襟度)요 본령이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부르조아의 유희물이 되어서 프로 계급의 해독이 된다는 것은 그 이론의 부족은 고사하고 종교의 본회(本懷)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종교는 제도에 구니(拘泥)하는 것이 아니오, 제도를 초월하여 거기에 구니되지 아니할 뿐 아니라 간섭도 하지 않는 것이다. - 한용운, <세계 종교계의 회고 – 불기 2958년>

만해는 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중생 제도에 있으며, 시대와 주의를 초월하여 이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적절히 방편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대중불교 운동으로서 자신의 종교적 이상을 실현해 나가고자 하였다. 1913년 30대 중반의 나이에 만해가 불교의 개혁과 유신을 위해 집필하였던 《조선불교유신론》의 의욕적 개혁정신은 인생의 중·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대중 속으로 깊이 스며들어 현실 속에서 불교의 이상과 정신을 펼쳐 나간다. 1920년대 후반 이후에는 앞서 1910년대 초의 유신 논의와는 다른 차원의 개혁론을 주창하였는데, ‘산간에서 가두로, 승려에서 대중으로’라는 구호로 잘 알려진 불교 대중화 운동과 함께 사찰령을 비판하고 주체적 민족불교를 지향하는 변모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1920년대의 불교혁신론은 사찰령 체제의 모순을 인지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새롭게 제기되었고, 특히 불교의 정치‧ 경제적 독립성 확보에 목표를 두고 있었다. 한편 이전 시기부터 추구되어 온 불교 대중화와 사회화 운동도 본격화되었다.

‘일체 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다〔一切衆生 皆有佛性〕.’ 이것이 불교의 이상이므로 불교는 일체 중생의 불교요, 산간에 있는 사찰의 불교가 아니며, 계행(戒行)을 지키고, 선정(禪定)을 닦는 승려의 불교가 아니다. 불교가 출세간의 도가 아닌 것은 아니나, 세간을 버리고 세간에 나는 것이 아니라 세간에 들어서 세간에 나는 것이니, 비유컨대 연(蓮)이 비습오니(卑濕汚泥)에 나되, 비습오니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염세적으로 고립독행(孤立獨行)하는 것이 아니요, 구세적(救世的)으로 입니입수(入泥入水)하는 것이다. 대중 불교(大衆佛敎)라는 것은 불교를 대중적으로 행한다는 의미니, 불교는 반드시 애(愛)를 버리고 친(親)을 떠나서 인간 사회를 격리한 뒤에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만반 현실(萬般現實)을 조금도 여의지 않고 번뇌(煩惱) 중에서 보리(菩提)를 얻고 생사 중에서 열반(涅槃)을 얻는 것인즉 그것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것이 곧 대중불교의 건설이다. - 한용운, <조선불교의 개혁안>

만해는 이를 강조하며,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내적 종교 체험을 현실 속에 구현하려는 실천행에 더욱 주력하였다. 대중과 더불어 민중의 삶 속에서 불교의 깨침을 실현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만해의 화광동진(和光同塵)적 삶이 바로 심우장(尋牛莊) 생활이었다.

만해의 불교 구세주의는 민중불교, 대중불교, 불교사회화 운동으로 점차 확산되었다. 대사회적 활동과 중생구제 운동은 불교진리에 대한 만해의 확신과 자신의 내적 종교체험에 입각한 종교적 실천행위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불교는 중생을 제도(制度)하기 위하여 입니입수(入泥入水)하는 것이 본령인즉, 중생의 집합체인 사회를 떠나서 그 본령을 실시할 수가 없는 것이므로, 사회는 불교로서의 제도할 최요(最要)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 있어서 얼마 동안 정치적·사회적 여러 가지 관계로 쇠퇴 일로를 밟아서, 산간벽지에 칩거(蟄居)하여 일반 사회와 격리하게 되어 인간 사회를 떠나 산간 암혈(巖穴)에 은거하는 것이 불교의 진리인 줄로 오인하게까지 되었던 조선 불교도는 무엇보다도 먼저 불교의 사회성을 재인식하고 또 그것을 실행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다. - 한용운, <31본산회의를 전망함>

만해는 깨달음의 사회화·역사화의 기본 테제로서 중생구제를 중심에 두었다.

만해는 “어느 종교든 종교라고 명목(名目)한 이상에는 창생(蒼生)의 구제를 목적하는 것은 물론인데, 이미 창생의 구제를 목적할 것 같으면 세상을 떠나 세상을 구(救)할 것이 아니라 세상에 들어와서 세상을 구할 것이니, 마치 병자를 떠나 병자를 치(治)할 수 없고, 병자의 손을 잡아 맥(脈)을 보며 가슴을 두드려 진찰한 후에 적당한 약을 투(投)하는 것과 같도다.”(한용운, <불교유신회 – 불교의 자치와 신활동의 필요>)라고 하며, 중생구제라는 과업을 완수할 때 비로소 완전한 종교로서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참고 문헌 -----
·강은애, <만해 한용운의 행적에 대한 종교학적 고찰>.
·김용태, <한국 근대불교의 대중화 모색과 정치적 세속화 - 대처식육을 중심으로>, 《불교연구》 35, 2011.
·한용운, <31본산회의를 전망함>, 《불교》 신 15, 1938, 《한용운전집》 2, 불교문화연구원, 2006.
·한용운, <내가 믿는 불교>, 《개벽》 45, 1924, 《한용운전집》 2, 불교문화연구원, 2006.
·한용운, <불교와 효행>, 《불교》 신(新) 13, 1938, 《한용운전집》 2, 불교문화연구원, 2006.
·한용운, <불교유신회 - 불교의 자치와 신활동의 필요>.
·한용운, <세계 종교계의 회고 - 불기 2958>, 《불교》 93, 《한용운전집》 2, 불교문화연구원, 2006.
·한용운, <인생은 사후에 어떻게 되나 - 기자와의 문답>, 《삼천리》 1-8, 1929, 《한용운전집》 2, 불교문화연구원, 2006.
·한용운, <조선불교의 개혁안>, 《불교》 88, 1931, 《한용운전집》 2, 불교문화연구원, 2006.

한국불교선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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