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응 스님.

유년시절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다기를 올리고, 다기를 숙일 때는 별도의 놋대접에 따라 한 모금 마시곤 했는데 그 물맛이 아직도 심신에 감돈다. 시원한 냉수 몇 모금은 지치고 오염된 육신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새로운 기운을 북돋게 한다. ‘냉수 마시고 속 차려라’는 말은 기실 애정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기에 인간은 물론 온갖 동물들이 수원을 찾아 이동을 하고 식물도 습기가 풍부한 곳으로 뿌리를 뻗는다. 우리가 환경을 이야기 할 때도 마시는 물과 호흡하는 공기를 첫 번째 덕목으로 삼는 데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옛 시절 우리의 어머니들은 길 떠난 자식의 무사귀환을 빌거나 집안에 우환이 있을 경우 정안수 한 사발을 장독대 위에, 혹은 뒷마당에 자리를 마련하여 단정히 올려놓고는 손을 모아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서산 대사의 ‘화청(和請/회심곡)’에 ‘목마른 이 물을 주어 급수공덕 하였느냐’는 대목이 나오는데, 물 한 모금의 보시공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이야기 한다. 이래저래 만 생명을 살리는 한 사발 물의 의미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민족이다.

불교에서는 물의 생명성과 정화 능력을 일찌감치 인식하고 공양과 수행의 방편으로 삼아서 각단과 의식에 여러 종류의 다게(茶偈)를 설정했다. 향수해례(香水海禮)의 ‘아금청정수 변위감로다 봉헌삼보전 원수애납수我今淸淨水 變爲甘露茶 奉獻三寶前 源垂哀納受)’가 우선 떠오르고, 시식의식에서 대령(對靈) 시 인례향욕(引詣香浴)편이 생각난다. 이는 영가를 청정수로 목욕시키는 절차다. ‘금장감로다 봉헌증명전 감찰건감심 원수애납수(今將甘露茶 奉獻證明前 鑑察虔懇心 願垂哀納受)’, ‘백초임중일미신 조주상권기천인 팽장석정강심수 원사망령헐고륜(百草林中一味新 趙州常勸幾千人 烹將石鼎江心水 願使亡靈歇苦輪)’ 등 다양한 다게가 있다.

반세기 전만 해도 이 땅의 어느 곳에서든 흐르는 물은 대부분 그대로 마실 수가 있었다. 그러나 환경오염과 상업 및 편리성으로 인해 물을 사서 마시는 시절이 되었다. 급기야 조계종이 수년 전부터 <물은 감>이라는 감로수에서 따온 명칭으로 생수를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몇 일전부터 이 생수판매의 로열티가 이상한 곳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과 더불어 고발이 있었고 이 사실이 방송망을 타고 전국에 전파됐다.

청정한 감로수 자체가 오염될 리는 없으니 평범한 물을 감로수로 변위시키는 것도 출가자의 역할이고 능력이요, 그 이미지가 훼손되고 변질되는 데에도 출가자의 책임이 있다. 총무원은 이번 감로수 사태에 청정한 감로수와 같이 명징하게 증명해서 명예를 회복해 내야 한다. 그러나 미진만큼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불교의 ‘감로수’에 담긴 그 중요한 의미를 훼손시키고 이미지를 오염시킨 잘못을 마땅히 엄히 물어야 할 것이다.

법응 | 불교사회정책연구소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