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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기원 - 우빠니샤드 영향의 불교 기원설 ③
서구·일본학계 학설 비판 없이 수용
2019년 04월 08일 (월) 15:31:00 조준호 yathabhuta@hanmail.net

앞 호에서 살펴본 바처럼, 인도나 서구 학계에서는 대체로 우빠니샤드 철학이 불교의 기원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이번 호에서는 불교가 우빠니샤드에 영향을 받아 기원했다는 서구의 학설이 일본학계에 수용된 뒤 다시 국내 학자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물론 최근에는 일본을 거치지 않고 바로 서양 학술서를 근거로 서술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점에서 불교가 우빠니샤드에 영향을 받아 기원했다는 일본과 국내 인도철학, 불교학계의 서술은 서구학계 학설을 추종한 것처럼 보인다. 현재도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거의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거나 습관처럼 받아들인다.

먼저 일본 학계는 대체로 기존 서구 학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보다 신뢰하고 성실하게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서구의 입에 전반적으로 공감하거나 아니면 더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 예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일본의 초기불교학자 미즈노 고겐(水野弘元, 1901~2006)을 들 수 있다.

그는 “초기불교 경전 속에서 붓다나 그의 제자들을 바라문이라고 불렀다”거나 《숫따니빠따(Suttanipāta)》를 근거로 “(타락한 당시 바라문교에 대해 불교가) 과거의 어진 바라문들의 이상과 의지를 계승하여, 그들의 뛰어난 유풍을 세상에 진작시키는 것이었으리라”고 서술했다. 그는 또 “(붓다가) 자기 자신이 옛날의 진정한 바라문의 이상을 계승·부활하고자 한 것”1)이라거나, “붓다는 자신을 개혁자가 아니라 단지 옛 길, 즉 우빠니샤드의 길을 복귀시킨 자로 여겼다. … 불교는 바라문교가 그 본래의 근본적인 원리를 회귀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미즈노 고겐은 이처럼 불교가 우빠니샤드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설명했다. 미즈노 고겐의 주장은 인도의 라다끄리쉬난의 말을 바로 떠올리게 할 정도이며, 오래전부터 서구학자의 저술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미즈노 고겐은 불교를 ‘개혁 바라문교(a Protestant Vedicism)’의 하나로까지 보려했던 것이다. 마치 예수의 기독교를 유대교의 이단에서 출발한 개혁종교로 보려는 태도와 비슷하다.

초기불교에 관한 미즈노 고겐의 저서는 초기불교 개론서처럼 여겨져 여러 역자에 의해 국내에도 번역돼 오랫동안 널리 읽혀져 왔다.

다음으로 미즈노 고겐보다 더 세계적인 명성과 영향력을 떨친 인도학 불교학 학자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1912~1999)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그의 여러 번역서는 현재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그 또한 다방면에서 불교가 우빠니샤드 철학에서 기원하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기술했다. 그는 불교는 본래 무아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비아(非我)로서 우빠니샤드의 아트만(Ātman)을 궁극적으로 찾기 위한 가르침이었다고 주장할 정도이다.2) 나아가 불교의 목표는 우빠니샤드와 같이 범아일여(梵我一如)의 경지라고 이해했다.3) 이 같은 나카무라 하지메의 주장에 이르면 불교와 우빠니샤드의 차이는 궁극적으로 없어져 버린다. 물론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은 많은 비판을 받는다.

나카무라 하지메의 연구 분야는 대단히 방대하다. 그는 인도철학과 불교는 물론 중국과 티베트 불교사상까지 많은 연구결과물을 내놓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불교의 기원과 우빠니샤드의 관계를 신중하게 검토하지 못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초기불교의 무아설을 우빠니샤드의 아트만설로 이해한 것 외에도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점이 많다. 특히 그는 양대 문헌에 나타나는 문학적인 비유를 들어 영향 관계가 분명하다는 듯이 결론을 내린다. 이는 영국의 곰브리치 교수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 가운데는 그럴 듯한 주장도 있지만 잘못된 주장도 있다.

나카무라 하지메는 서구의 선행 이론을 의심 없이 수용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하지만 일본의 동시대 학자인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 1915~2002)나 나라 아스야끼(奈良康明, 1929~2017) 등은 미즈노 고겐이나 나카무라 하지메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그들은 불교의 기원은 우빠니샤드라고 쉽게 이야기하기보다 신중한 자세를 보인다. 많은 일본학자가 다방면에서 불교의 기원을 우빠니샤드 철학에 두고서 서술하지만 그들의 저작을 보면 우빠니샤드에 영향을 받아 불교가 기원했다는 학설을 쉽게 단정하여 말하지 않는다.

한국 학계는 불교의 우빠니샤드 기원설을 따르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나카무라 하지메가 여러 분야에서 유명한 만큼 한국불교학에 미친 영향도 크다. 불교의 우빠니샤드 기원설을 비판적 검토 없이 수용한 서술은 오랫동안 국내의 많은 글과 강의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한국불교학이 서구와 일본불교학계의 지대한 영향 속에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직도 일본불교학은 가장 모범적이며, 한국불교학이 추구해야 할 방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는 일본 강점기 이후 많은 학자가 일본에 유학하거나 일본학계의 연구결과물을 우리에게 소개해 왔기에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러한 직접적인 영향으로 한국불교학계에도 우빠니샤드 영향의 불교기원설이 이의 제기 없이 수용돼 왔다.

대표적인 예가 동국대학교에서 출판한 《불교학개론》이다. 이 책에서는 불교의 핵심인 무아를 설명하는데 있어 잃어버린 참다운 아(我)를 상정한 자아탐구4)는 결국 우빠니샤드와 같은 ‘우주적인 대아(大我)’5)를 설명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여기에서 ‘우주적인 대아’는 문맥상 우빠니샤드의 아트만에 다름 아니다. 단일실재로서 보편적 자아를 의미하는 영역 ‘Universal Self’이나 ‘Cosmic Self’를 시사한다. 하지만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초기불교의 기원을 근본적으로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도록 하는 주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자신의 연구 분야를 집요하게 수행해 온 호진 스님의 경우를 살펴보자.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한 스님은 오랫동안 무아와 윤회가 상충하는 문제를 깊이 천착하면서 역작을 내놓았다. 스님의 소르본 대학 박사학위 논문은 국내에서 《무아와 윤회의 연구》로 출판됐다. 최근에는 개정판도 나왔다.

스님은 이 책에서 주로 프랑스 등 서구학계의 연구결과물과 한역 《아함경》을 주로 인용한다. 그런데 스님도 윤회사상의 기원을 우빠니샤드에서 구하고 있다. 스님은 이 책의 한 장에서 업과 윤회사상이 어떻게 베다에서 기원해 우빠니샤드까지 전개되는지 꼼꼼하게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이러한 우빠니샤드의 업과 윤회설이 어떻게 초기불교에 그대로 이어지고 발전되는지 서술한다.

스님은 우빠니샤드에서 업보와 윤회 사상이 처음으로 출현하였고, 이를 불교나 자이나교 등 다른 고대 인도종교가 물려받았을 것으로 본다. 스님은 많은 프랑스 학자의 연구결과물을 인용하고 근거로 삼는다. 스님은 무엇보다도 우빠니샤드 성립 시기를 석가모니 붓다가 출현하기 이전으로 간주하는 프랑스 학자들의 주장을 신뢰하며 논술한다.6)

스님은 우빠니샤드 성립을 불교 이전으로 보는 것을 꽤 안전한 주장으로 수용한다. 그렇기에 뒤이은 불교나 자이나교가 자연히 우빠니샤드를 접촉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초기불교 경전에 나오는 윤회사상은 가장 오래된 우빠니샤드에서 볼 수 있는 윤회사상보다 훨씬 발달되어 있다”라고 한다.7) 다시 말해, 초기불교 경전에서 나타나는 윤회사상이 내용적으로 우빠니샤드보다 더 발달한 단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불교가 당연히 늦게 물려받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베다나 우빠니샤드 등의 바라문 문헌에 나타나는 윤회 업보와 초기불교에 나타나는 윤회 업보 개념이 어떻게 긴밀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은 생략하고 있다. 적어도 필자의 이해로서는 그렇다. 양자의 내밀한 사상적 연결고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보다는 우빠니샤드 이후 초기불교의 업보와 윤회 사상을 거의 독립적인 장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외의 업과 윤회의 기원 문제는 추후에 논의해 보려한다.

다음으로 이중표 교수를 들 수 있다. 그는 초기불교의 개념을 논증할 때 불교 논서보다 우빠니샤드를 근거로 삼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초기불교의 명색(名色, nāma-rūpa)의 의미를 정신과 물질로 설명하기보다 우빠니샤드처럼 이름과 물질로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명색을 정신과 물질로 보는 것을 아비달마 시대의 오류처럼 설명한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이중표 교수가 초기불교의 기원을 우빠니샤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을 들어왔지만 왜 그렇게 전제하거나 단정해야 하는지에 관해 그럴듯한 이유를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주) -----
1) 미즈노 고겐(水野弘元), 김현 옮김, 《원시불교》, pp. 183 ~187.
2) 나까무라 하지메(中村元)·미츠요시 사이구사(三枝充悳), 혜원 옮김, 《바웃드하 불교(佛敎)》, pp.128-134; H. Nakamura, 《Indian Buddhism》, pp. 63~64.
3) 마츠모토 시로(松本史朗), 혜원 옮김, 《연기와 공》, p. 233.
4) 동국대학교 교양교재편찬위원회, 《불교학개론》, pp. 64, 70.
5) 앞의 책, p. 93.
6) 윤호진, 《무아 윤회문제의 연구》, 불광출판사, 2015. pp. 51~52.
7) 윤호진, 앞의 책, p.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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