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한 숙소가 있는 타멜거리로 향하면서 바라본 카트만두의 밤 풍경은 심난했습니다. 가게는 다 문을 닫았고 인적이라고는 없었습니다. 가로등 희미한 불빛에 비친 네팔의 수도는 흑백사진으로 봤던 한국전쟁 후의 서울 풍경 같았습니다. 가난하고 어수선했습니다. 꼬불꼬불한 2차선 도로 옆으로 반쯤 무너진 채 앙상한 속살을 내보이는 건물이 있고, 무너진 건물에서 떨어진 잔해가 곳곳에 쌓여있고, 쓰레기봉지가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늑대처럼 큰 개가 무리를 지어 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한순간 눈을 의심했습니다. 인간이 사라진 밤에 개들이 도시를 차지한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개들은 왜 이리 덩치가 큰가, 이 많은 개들이 어디서 나타났는가, 등등 갖은 생각을 다했습니다.

예약한 숙소에 도착해서도 깜짝 놀랐습니다. 셔터가 내려져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택시 기사가 전화를 해줘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소박한 프런트에서 간단한 절차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밤 12시가 한참 넘었습니다. 내일 새벽 5시에는 국내선을 타러 나가야 하므로 몇 시간밖에 시간이 없었습니다.

네팔의 가난, 양면을 보다

▲ 국내선 공항에서 나눠마신 비싼 커피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네팔이 아시아 최빈국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인줄은 몰랐습니다.

아마도 2015년 네팔을 강타했던 대지진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있는 듯했습니다. 그때 네팔을 강타했던 지진은 규모 7.8의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이로 인해 주택 1백만 채가 붕괴됐다고 합니다. 상당한 수의 문화유산도 훼손됐는데 그 중에는 네팔 최대 규모의 불탑 보드나트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였는데 대지진으로 경제상황은 더욱 악화된 것입니다.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네팔의 가난한 살림은 내겐 가장 큰 화두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경험했던 가난이 상대적 빈곤이라면 이곳의 가난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소유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여행이었습니다.

미국의 어떤 연구기관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경제적으로 풍요로울수록 행복지수가 올라간다고 합니다. 이 논리로 봤을 때 네팔은 굉장히 불행해야 합니다. 나도 카트만두에 도착해서 심난한 밤거리를 보면서 이들은 많이 불행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네팔을 떠나면서는 바뀌었습니다. 매일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내리는 짐꾼도, 아주 가끔 가족을 만나는 요리사도 결코 불행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행복지수가 오히려 높아 보였습니다. 경제적 풍요와 행복지수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제적 부분은 행복을 결정하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아침에 본 카트만두는 심난했던 어제 밤과는 달랐습니다. 아침이 오고 도시는 다시 인간의 차지가 됐습니다. 아주 이른 시간인데도 활기를 찾았습니다. 쓰레기차가 쓰레기더미를 치우고 청소부는 도로를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을 여는 가게도 보였습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자 마음이 놓였습니다.

포카라로 가는 작은 비행기

▲ 카트만두에서 포카라 가는 국내선 기내 풍경.

택시는 너무 빨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어젯밤에는 꽤 오래온 것 같았는데 다시 보니까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그래서 비행기가 뜰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많이 추웠습니다. 네팔은 난방 개념이 없습니다. 어디를 가도 난방이 안 됐습니다. 우리나라 늦가을정도의 날씨인데 난방이 안 된 이른 새벽의 공항청사는 많이 추웠습니다. 거기다 배도 고팠습니다.

뭔가 먹을 만한 게 있나 두리번거렸데 커피와 쿠키 등을 파는 매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커피 값이 많이 비쌌습니다. 트레킹 중 묵었던 롯지 비용하고 맞먹었습니다. 그래도 워낙 춥기 때문에 따뜻한 걸 마시고 싶어서 한 잔을 사서 남편과 나눠 마셨는데 맛있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자주 쓰는 명언 중에 “물건 값을 모르면 돈을 더 줘라” 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에 공감했습니다.

비행장에서 거의 2시간을 기다렸습니다. 한 시간은 우리가 너무 서두른 탓이고 한 시간은 원래 예정보다 비행기가 연착됐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보딩타임이 전광판에 뜨고, 드디어 비행기를 탔습니다. 오른쪽에 앉아야 히말라야의 설산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빨리 타서 오른쪽으로 앉았습니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헬기입니다. 30인승인데 승무원이 한 명 타서 땅콩이랑 음료수를 주었습니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갈 때 내내 설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륙하고 비행기는 마치 설산을 따라 달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다들 카메라를 들고 오른쪽 창을 응시하며 촬영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런 것에 무관심한 사람은 딱 두 명이었습니다. 내 앞에 앉은 아이들인데, 한 명은 세 살이고, 나머지 한 명은 무조건 반항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는 청소년이었습니다. 이 둘을 제외한 사람들은 새로운 풍경이 나타날 때마다 가벼운 탄성을 지르며 셔터를 누르기 바빴습니다. 30여분 동안의 비행시간 내내 ,비행기 안은 히말라야가 보여주는 화려한 공연에 다들 흥분한 모양새였습니다.

공연의 열기를 안고 비행기는 어느덧 포카라에 도착했습니다. 카트만두는 먼지가 굉장히 많은 도시라 온통 잿빛이었는데 포카라는 정말 예쁜 곳이었습니다. 하늘은 파랗고, 공항청사 마당에는 빨간 꽃이 피었고, 무엇보다도 설산이 도시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포카라 공항에 도착하자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 헬기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산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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