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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 스님, 독립운동가 시신 몰래 수습
‘경주김씨계림파중군공문중가첩’ 기록 확인
후손들, 정부 독립운동 유공자 인정 못 받아
2019년 04월 03일 (수) 13:45:33 불교저널 budjn2009@gmail.com

양산 통도사 주지를 지낸 구하(九河) 스님이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의해 참혹하게 처형된 김병희 불자(처형 당시 58세)의 시신을 몰래 거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고 김병희 선생의 고손자 김준영 오경농장 젤란 대표이사가 2일 <불교닷컴>에 보낸 《경주 김씨 계림군파 중군공 문중가첩(慶州 金氏 鷄林君派 中軍公 門中家牒》(2007년 11월 발간)에서 확인됐다.

고 김병희 선생은 일본 경찰에 처형당하기 이틀 전(前) 아들인 김교상(당시 37세)을 먼저 보내야했다. 고 김교상 선생 역시 부친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무참하게 처형됐다. 김씨 부자(父子)는 중군공(中軍公) 문중의 제17대, 제18대 장손이었다. 그러나 이들 부자는 현재까지 정부로부터 독립운동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관련 증빙서류가 부족하다는 이유다.

부자가 일제에 의해 처형 된 이유는 당시 통도사 인근 지역에서 활동하던 악질 일본인 고리대금업자 2명과 하수인 3명을 처단한 양산시 하북면 성천마을 서경원 등 10명의 의병대원을 배후 조종하고 자금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의거가 일어났던 시기는 1908년 6월 13일 밤 11시경 이었다. 의거를 지원했을 당시 고 김병희 선생과 김교상 선생은 양산지역 만석(萬石) 집안 맏아들·맏손자였다.

《경주 김씨 계림군파 중군공 문중가첩》에 따르면 고 김병희 선생은 일제 경찰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후 통도사 앞산에 수일 간 묶여 있다가 1908년 6월 22일 처형됐다. 당시 누구도 김병희 선생 시신을 거두려 하지 않았다. 이보다 이틀 앞선 6월 20일에는 김교상 선생도 무참히 처형됐다. <불교닷컴>에 자료를 제보한 김준영 씨는 고조부와 증조부 처형일이 음력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경주 김씨 계림군파 중군공 문중가첩》에는 “통도사 구하 스님과 삼감부락 우동신(㝢東臣) 씨 조부님께서 (고 김병희 선생 시신을) 거두어 수습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양산시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상북면 지명을 ‘독립면’으로, 통도사가 위치한 하북면을 ‘만세면’으로, 각각 변경 추진하고 있다.

한편 김준영 씨의 모친은 양산시 상북면 소재 통도사 말사인 용주사 창건 대보살로 생존해 있다.

김원행 불교닷컴 기자
osogaso@gmail.com

※ 업무 제휴에 따라 <불교닷컴>이 제공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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