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종교 상황과 종교 인식

근대 한국불교는 기독교의 비판이나 사회주의의 반종교운동 등에 반응하면서 종교의 의미나 그 역할에 대해서 종래에 비해 한층 더 깊은 해석에 이르고 있었다. 서구 문명을 등에 업고 급속히 성장해 나가는 근대화된 기독교 세력과 사회주의자들의 반종교 운동이라는 양대 흐름에 직면한 불교계는 그 당시 막 유입된 ‘종교’라는 개념으로 ‘불교’를 재정비하여 근대종교로서 ‘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낡은 틀을 새롭게 단장하고자 하였다. 만해 스님을 비롯한 개화기 불교계 인사들은 타종교 특히 기독교의 급성장에 위협을 느끼며, 격변하는 시대 상황을 간파하여 불교의 변화와 쇄신을 모색하였다.

만해 스님은 1910년 무렵의 종교계 상황에 대해 “지금 다른 종교의 대포가 엄청난 소리로 땅을 흔들고, 그 교세가 도도하여 하늘에 닿을 듯하며, 그 물이 점점 불어나 이마까지 넘칠 지경인데 조선 불교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기독교에 대한 위기의식과 경계심을 드러내었다.

만해사상의 형성기에 해당하는 1900년대 초반의 경우, 다양한 근대 담론이 유입되며 새로운 담론의 장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우리의 전통적 사유와 서구적인 근대적 사유가 만나는 이 시공간에는 다양한 인식이 출몰하고 충돌한 시기라는 점에서 정치(精緻)한 이해가 요구되는 시점이며, 이 때 형성된 ‘종교’에 대한 인식은 그 후 한국종교계에 상당히 오랜 동안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독교의 불교 비판에 대해 만해 스님은 불교야말로 가장 근대적인 요소를 함유하고 있다며 맞선다. 즉 만해 스님에게 ‘근대’는 불교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무엇이었다. 문명이 쉽게 만해 스님에게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문명이 서구에서 유입된 게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만해 스님은 불교가 근대적 진리론이나 철학적 사유체계를 갖춘 매우 수준 높은 고등종교라는 낙관론적 인식을 하였던 것이다.

한말 일제하의 기독교는 상승가도에 있었다. 기독교의 교세 확장을 지켜본 만해 스님은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 당시 기독교에 대한 이해는 불교 우위론적 입장에서 다소 피상적이고, 방어적인 모습을 보인다. 극단적으로 유일신교 전통의 종교는 이생의 고통과 고뇌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위안으로서 희망을 갖게 하는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기능으로서 올바른 믿음이 아니라 미혹된 믿음이라고 혹평하였다.

반면 개신교는 스스로 문명종교라고 하면서 타종교에 대해서는 윤리, 철학, 유사종교, 미신 등으로 평가하여 종교가 아니라고 한다. 불교에 대해서는 철학이나 미신이라고 비판한다. 불교의 철학화란 불교에 인격적 신이 결여되었다고 하여 종교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것이고, 불교의 미신화란 불교의 잡신숭배나 우상숭배를 강조하여 역시 불교가 종교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불교 비판에 맞서 불교는 전통종교에 혼재되어 있던 미신적인 종교 요소를 타파하고,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근대적 불교로 변신하고자 하였다. 특히 철학적 종교로서 불교의 특성을 강조함으로써 기독교의 비판에 역으로 응수하였다. 바로 철학적 체계를 갖춘 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종교로서 불교의 위상을 정립하려는 전략을 펼친 것이다.

‘종교’개념의 유입과 ‘불교’

개항(1876) 이후 한국사회에는 근대성이 형성되면서 전통적 종교지형이 해체되고 새로운 종교지형이 형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 사회에서 존재해온 불교는 새로 유입된 서구세계의 사상사조와 만나 과거와 다른 이질적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서구 근대성의 한국사회 유입 가운데에서도 ‘종교’ 개념의 전래 혹은 형성은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었다. ‘종교’ 개념은 한국 종교계 전반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고, 불교계 역시 이러한 변화의 물결에 예외일 수 없었다.

불교를 철학적 종교로 규정한 이노우에 엔료.
이때 누구보다 국내외 정세와 동향에 민감하였던 만해 스님은 서양철학자들의 철학 개념을 원용하여 불교 철학의 우수성을 논증하였다. 석가는 철학의 대가이며, 불교는 철학적 종교로서 동서양철학과 합치되는 부분이 많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불교를 철학적이며 동시에 종교적 성질을 가진 ‘철학적 종교’로 규정한 것은 일본의 메이지시기 대표적 불교 사상가인 이노우에 엔료(井上圓了, 1858-1919)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유개념(類槪念)으로서의 ‘종교’ 개념이 확산되자 불교가 자신을 어떻게 한 종교로서 자리매김하고자 노력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근대 불교가 처했던 복잡, 다양한 종교적 지형을 인식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근대 불교는 기독교 중심으로 정의된 ‘종교’ 개념, 그리고 당시 유행했던 종교진화론 등 비교적 낯선 종교담론들에 대해 불교의 입장에서 대응해야 할 과제가 있었다. 불교는 새로 유입된 ‘종교’ 개념을 이해해야 함은 물론 그것을 통해 불교를 재인식해야 했으며, 나아가 그 범주 안에 불교의 위상을 정립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게 되었다.

당시 기독교의 불교에 대한 비판논리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즉 기독교는 불교를 지적 전통(elite tradition)과 민간전통(popular tradition)으로 분리하여 지적 전통에 대해서는 ‘철학’이라고 명명하는 동시에 민간전통에 대해서는 ‘우상숭배’ 내지 ‘미신’으로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종교’의 영역에서 배제시킴으로써 불교의 종교성을 부인하고자 하였다.

불교의 ‘종교성’을 둘러싼 기독교의 도전에 불교는 먼저 불교가 철학을 포함한 종교임을 들어 반박하고 나섰다. 불교는 철학을 포함한, 또는 철학과 조화를 이룬 종교, 즉 한마디로 ‘철학적 종교’임을 스스로 인정하며, 불교 자체에 이미 근대적인 철학 사상이 내포되어 있는 종교로서 불교의 우월한 종교성을 역으로 강조하였다.

개항 이후 서구 문명과 종교에 수동적으로 개방된 불교계는 새로 유입된 종교개념으로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에 대해 새삼 숙고해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서구의 종교개념과 기독교적 신 관념이 불교에게 분명 하나의 위협적인 도전이기 때문이었다. 기독교 중심의 ‘종교’ 정의는 불교를 종교의 범위에서 배제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그로 인해 불교는 ‘철학’이나 ‘무신론’, ‘미신’ 등으로 정의되었다. 서구의 종교개념을 그대로 따른다면 불교는 ‘종교’의 범주에 소속하지 못하는, 그래서 ‘비종교’ 또는 ‘거짓 종교’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었다. 따라서 불교는 기독교에 의해 던져진 불교의 종교정체성의 위기에 대해 몇 가지 주요 담론들을 통해 대응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불교는 철학적 종교’, ‘불교는 무신론이지만 모든 종교보다 고등한 발전단계’ 그리고 ‘불교는 해탈을 중심으로 한 선정(禪定)의 종교로서 고유한 특징을 지닌다.’는 것 등이었다.

이러한 대응의 과정을 통해 불교는 서구의 종교개념이나 기독교 중심의 신의 개념에 대립한, 혹은 신 개념이 ‘결핍된’ 종교로서가 아니라, 많은 종교 가운데 하나의 고유한 특성을 지닌 종교로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 비로소 수구적이고 방어적인 자세에서 탈피하여 자신의 고유한 존재 의미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듯이 당시 서구 기독교의 혹독한 공격에 직면한 불교는 타자가 자신을 규정하는 논리를 곱씹어 새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계기로 삼았다.

불교는 기독교 중심의 종교 정의의 도전에 맞서 끝까지 종교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포기하지 않았다. ‘종교’라는 영역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아니 그 중심부로 진입하기 위해 불교는 불교의 세계관의 핵심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기독교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불교의 의미를 새롭게, 적극적으로 해석해내었다. 그 결과 ‘불교는 철학에 불과하다’는 기독교의 비판을 넘어서 ‘불교는 철학을 포함한 매우 철학적인 종교’라는 명제를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또한 ‘불교는 무신론에 불과하다’라는 기독교의 비판에 대해서 ‘불교의 무신론은 기독교적 유신론의 단계를 훌쩍 뛰어넘은 더 진화된 종교’라는 대답으로 응수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불교는 ‘종교가 아닌 것’이 아니라 ‘참된 종교임’을 선포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불교의 종교적 특성에 대해 관심을 돌림으로써 하나의 고유한 ‘종교’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의미 기반을 확보하였다. 불교는 서구 종교의 비판에 대응하여 불교 스스로를 성찰하며, 근대적 ‘종교’로 자리 잡아 나갔던 것이다.  


참고문헌

· 김상현, 〈한국 근대사의 전개와 불교〉, 《불교학보》 60, 불교문화연구원, 2011
· 한용운, 《朝鮮佛敎維新論》, 민족사, 최경순 옮김
· 이선이, 〈‘문명’과 ‘민족’을 통해 본 만해의 근대 이해 -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과 〈조선독립(朝鮮獨立)의 서(書)〉를 중심으로〉, 《만해학연구》 3, 만해학술원, 2007
· 이진구, 〈근대 한국 개신교의 타종교 이해 - 비판의 논리를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와 역사》 4,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5
· 송현주, 〈근대 한국불교의 종교정체성 인식 -1910~1930년대 불교잡지를 중심으로-〉
· 송현주, 〈“불교는 철학적 종교”: 이노우에 엔료(井上圓了)의 ‘근대일본불교’만들기〉, 《불교연구》 41, 2014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