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에서는 ‘중생은 누구나 불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그 불성이 어디에 들어 있는지 잘 모른다. 그것은 불성에 세 가지〔三身佛性〕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삼신불성은 삼인불성(三因佛性)이라고도 하는데, 정인(正因)·요인(了因)·연인(緣因) 불성(佛性)으로 분류된다. 정인불성은 온갖 중생이 다 가지고 있고, 일체의 삿된 것을 떠난 중정(中正)의 진여로서 이것이 곧 부처가 될 수 있는 본성이다. 요인불성은 진여의 이치를 비추어보고 도달하여 깨닫는 지혜를 뜻하며, 연인불성은 지혜를 도와서 정인불성을 개발하는 육바라밀(六波羅蜜)의 수행을 뜻한다.

성인(聖人)은 스스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불성을 바로 안다고 한다. 그 불성이 정인불성(正因佛性)이다. 이에 비해서 우리는 세 가지 불성 중에서 요인불성(了因佛性)이나 연인불성(緣因佛性)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요인불성은 진여의 이치를 깨닫는 지혜이니 지혜의 안목을 얻어야 정인불성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연인불성은 불성을 비추는 지혜를 일으키는 모든 선행이니 선근 공덕을 쌓아야 요인불성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천태 대사는 이 불성을 흙 속에 들어있는 금에 비유하였다. 흙 속에 들어 있는 금 자체는 바로 정인불성이고, 흙 속에 금이 들어있는 것을 깨닫는 것이 요인불성이며, 그 금을 땅을 파고 캐어내는 것이 연인불성이라고 한다.

우리가 불성을 가지고 있음을 바로 아는 정인불성의 경지는 성인이나 가능하고, 중생의 안목에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선근 공덕을 많이 행하여 연인불성을 쌓고, 부지런히 정진해 나아가면 요인불성이 나와서 우리가 불성이 있음을 분명히 아는 정인불성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법화경》‘장자 궁자의 비유’에서는 궁자(窮子)가 원래 장자의 아들인데 아버지를 버리고 온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거지가 되었다. 아들이 어느 날 아버지 집에 이르렀으나 눈앞에 있는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이에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똥치는 일부터 집안일까지 갖가지 일을 시켜서 근기가 성숙되자 자신의 아들임을 밝히고 참된 아들로 맞았다. 여기서 장자는 부처님을, 궁자는 장자의 불성을 가진 우리 중생이다. 궁자는 처음에는 자기가 장자의 아들인지 알지 못하였으나 똥을 치고 농사를 배우고 집안일을 하다 보니 자신이 장자의 아들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열반경》에서는 우리가 불성을 보지 못하는 것이 중생의 안목에 사로잡혀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생은 항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생(生)·주(住)·괴(壞)·남(男)·녀(女)의 열 가지 모습으로 되어 있어서 현상에 집착, 불성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가 열심히 다음의 10가지 법을 닦아 성취하면 이들 열 가지 법이 인연함이 없어서 태어남도 없고, 함이 없어서[無爲] 나옴도 없고……, 내지 시끄러움을 멀리하였으므로 적정이라 하고, 영원히 생사를 끊었으므로 병고가 없고, 일체법이 없으므로 무소유임을 알게 돼 분명히 불성을 보게 된다고 한다.

첫째 신심을 구족해야 한다는 것은 두 가지 면에서 믿음이 견실해야 한다. 먼저 불·법·승 삼보가 영원하고, 시방제불이 방편으로 나타낸 일체중생과 일천제가 모두 불성이 있다는 것을 깊이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여래가 생·로·병·사하고 고행을 수행했다는 것, 제바달다가 진실로 화합승을 파하고 부처 몸에 피를 냈다는 것, 여래가 반드시 열반에 들어가고 정법이 멸해 다했다는 것은 방편이니 믿지 않아야 진실로 신심을 구족했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곧 여래가 생사를 보이신 것 등은 중생의 무상을 깨우치기 위해 응신불로 나투어 생사를 보이신 것이고 여래는 원래 생사가 없다는 것이다. 나머지도 마찬가지로 방편으로 보인 것이라는 취지이다.

둘째, 청정 계율을 구족함이다. 보살이 계율을 지니되 계율을 위하지 않고, 지계바라밀을 위하지 않으며, 중생을 위하지 않고, 이양(利養)을 위하지 않으며, 보리를 위하지 않으며, 열반을 위하지 않으며 성문과 벽지불을 위하지 않으며, 열반을 위하지 않으며, 오직 가장 훌륭한 제일의(第一義)를 위하여 금하는 계율을 보호하여 가지는 것을 말한다. 계율을 통하여 제일의제의 진리에 이르는 것이다.

원효 스님이 고선사(高仙寺)에 있을 때 사복(蛇福)이 찾아와“그대와 내가 옛적에 불경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지금 죽었으니 나와 함께 장사 지냄이 어떻겠는가.”라고 했다. 원효가 사복의 집에 가 시신 앞에 이르자, 사복은 원효에게 포살계를 주도록 요청하였다. 원효가“세상에 나지 말 것이니라. 그 죽는 것이 괴로움이라. 죽지 말 것이니라. 세상에 나는 것이 괴로우니라.”라고 하자 듣고 있던 사복이 너무 길어서 번거롭다고 하였다. 원효는 다시 고쳐서 말하였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괴로움이로다.”

셋째, 선지식을 친근함이다. 선지식은 신심과 계율, 많이 아는 것, 보시 지혜를 설해주어 사람들이 받아 행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넷째, 고요한 적정을 좋아해야 함이다. 적정이란 몸과 마음이 고요함을 좋아하여 제법의 깊은 법계를 관찰하는 것이다.

다섯째, 정진해야 한다. 정진이란 마음을 두어 네 가지 법을 관찰하되, 머리에 불이 붙더라도 놓아 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여섯째, 염법(念法)을 구족해야 한다. 염법이란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승가를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고, 천상을 생각하고, 사(捨)법을 생각하는 것이다.

일곱째, 부드러운 말을 구족해야 한다. 부드러운 말이란 진실하고 미묘한 말을 하는 것, 상대보다 먼저 문안하는 것, 때에 맞추어 말하는 것, 참된 말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여덟째, 정법을 수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른 법을 사랑하여 항상 연설하기를 좋아하고, 읽고 외우고 쓰고 뜻을 생각하고 널리 선전하여 멀리 퍼지게 한다. 만일 다른 이가 똑같이 쓰고 해설하고 읽고 외우고 찬탄하고 뜻을 생각함을 본다면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하여 공양하되 의복과 음식과 와구(臥具, 누울 때 쓰는 물건을 총칭)와 의약으로 도와주며, 법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니 이를 법을 수호한다고 한다.

아홉째, 동학(同學)에게 부족한 것을 공급해주어야 한다. 함께 배우고 함께 계를 받은 이가 부족한 것이 있음을 본다면 발우나 물든 옷〔染衣〕이나 간병에 필요한 의복과 음식과 와구와 방 같은 것을 다른 데서 빌어서라도 공급해야 한다.

열째, 지혜를 구족함이다. 지혜란 여래의 상(常)·락(樂)·아(我)·정(淨)과 모든 중생에게 불성 있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또한 법의 두 가지 면을 관찰하는데 이른바 공함과 공하지 않음, 항상함과 무상한 것, 즐거움과 즐겁지 않음, 내가 있고 내가 없는 것, 깨끗함과 부정한 것이다. 또한 서로 다른 법〔異法〕의 끊을 것과 끊지 못할 것, 서로 다른 법의 인연 따라 나는 것과 인연 따라 보는 것, 서로 다른 법의 인연으로 생긴 과(果)와 인연으로 생기지 않은 과를 관찰하는 것을 지혜를 구족한다고 한다.

이기운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 lkiw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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