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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기원 - 우빠니샤드 영향의 불교 기원설 ②
힌두 국수주의 영향, 불교를 아류로 조작
2019년 03월 06일 (수) 17:58:04 조준호 yathabhuta@hanmail.net

서구에서 불교가 우빠니샤드(Upaniṣad)에 영향을 받아 기원했다는 설은 주로 인도고전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시기에 제기되었다. 베다나 우빠니샤드, 그리고 불교를 연구하기 시작한 초창기에 해당한다. 당시는 인도 고대 문헌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인도의 종교 문화와 사상을 폭넓게 이해한 시기도 아니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학자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종교학자인 막스 뮬러((Friedrich Max Müller)이다. 뮬러는 불교가 우빠니샤드에 영향을 받아 기원했다고 전제하였다. 다른 학자도 대체로 그의 입장에 동조하였다. 서구학자들은 대체로 이러한 관점에서 인도 고대 종교사나 철학사를 서술하였고, 현재도 그 관점에 머물러 있다. 서구학자의 관점은 인도는 물론 일본학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제 강점기에 일본학자가 전한 이런 관점을 수용해 현재까지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뮬러 학설 무비판 수용한 라다끄리쉬난

인도의 라다끄리쉬난(Sarvepalli Radhakrishnan)은 초창기 서구학자들의 주장에 자신감을 얻고 크게 고무되었다. 라다끄리쉬난은 여기에서 몇 걸음 더 나아가 우빠니샤드가 불교 기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처럼 적시했다. 라다끄리쉬난은 우빠니샤드가 불교 기원에 영향을 미쳤다는 설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별 조심성 없이 주장을 남발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라다끄리쉬난의 주장은 나중에 인용하겠지만 한국에도 재포장되어 두루 유통되고 있다.

인도나 서구학자들은 우빠니샤드가 불교 기원에 영향을 끼쳤다는 설을 지금도 정설처럼 서술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영국 옥스퍼스대학교의 불교 전공자인 곰브리치(R. F. Gombrich)가 지은 《How Buddhism Began》(1996) 같은 저술이 그것이다. 곰브리치는 스스로 초기불교 전공자라고 칭하지만 이 문제를 엄밀하게 검토해보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기존 관점을 수용해 논의를 쉽게 진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곰브리치의 주장은 고도의 철학적 분석이나 문헌학적인 검토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문학적인 비유와 관련되어 있다. 곰브리치의 저서는 최근에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었다.(리처드 곰브리치 지음, 김현구 외 옮김, 《초기 불전의 기원, 불교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 씨아이알, 2017)

마가다지역 영향 받은 우파니샤드

이에 비해 스위스의 브롱코르스트(Johannes Bronkhorst) 같은 학자는 비판적 검토를 시도했다. 브롱코르스트가 저서 《Greater Magadha: Studies in the Culture of Early India》(2007)에서 기술한 바라문 종교와 불교 기원에 대한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 브롱코르스트는 저서에서 빠딴쟐리(Patañjali, 서력기원전 150)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베다 문명과 다른, 마가다 지역만의 독자적인 문화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자이나교나 불교 등 사문종교의 핵심 개념인 업과 윤회사상, 해탈도 이 지역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했다. 이 지역에서 자이나교와 불교가 발생했고, 이곳은 두 종교의 중심무대이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흔히 업과 윤회, 해탈 등의 종교개념이 바라문의 우빠니샤드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서술한다. 하지만 브롱코르스트는 이런 종교개념은 바라문 종교와 이질적이라며, 거꾸로 우빠니샤드가 사문종교가 기원하고 활동한 지역, 즉 마가다지역에서 영향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제시했다. 그는 또 이런 종교개념이 나타나는 우빠니샤드는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브롱코르스트의 주장은 필자의 견해와도 많은 부분이 일치한다. 필자 또한 브롱코르스트의 저서가 출간되기 전에 여러 가지 점을 들어 비슷한 주장을 제기한 적이 있다. (조준호, <기원과 Upaniṣad 철학 : 불교는 Upaniṣad 철학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가?>, 《보조사상》 제13집, 2000년)1)

이제는 예전처럼 불교의 기원을 단순하게 바라문교의 반동만으로 보지 않는다. 또한 붓다가 단일한 우주영혼을 믿는 형이상학자 중 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는 이도 없다. 붓다는 우빠니샤드적인 우주영혼 개념까지도 부정했다.

사문종교(문화)의 독자성과 관련해 기존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연구는 인도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라다끄리쉬난처럼 1세대 서구학자들의 주장에 의지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천착하는 학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라다끄리쉬난은 뮬러를 비롯한 초창기 서구학자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열렬하게 받아들였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자.

힌두교 발생 시기는 1세기

먼저 들 수 있는 것이 시기 구분의 문제이다. 라다끄리쉬난은 “붓다는 힌두교인으로 태어나고 양육되었으며, 그렇게 살다가 죽었다.”며, 붓다에게 힌두교라는 용어를 적용시켰다. 이 주장에서 어느 시기부터 힌두교로 볼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 모든 학자의 견해가 일치하지는 않는다. 또한 일부 학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베다시대를 원시 힌두교로 간주하는 것도 널리 수용되지 않는다.

힌두교 시대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서력기원후 1세기에 즈음하는 시기로 규정된다. 여기서 문헌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시대 구분이 가능하다. 즉, 베다(종)교 시대, 바라문교 시대, 힌두교 시대가 그것이다. 베다종교 시대는 리그(Ṛg), 야주르(Yajur), 사마(Sāma), 아타르와(Atharva)의 네 베다가 중심이 된 종교시대다. 초기불교 경전에 언급되는 삼명(三明)이 그것이다. 이어 바라문 시대는 이 네 베다를 바탕으로 브라흐마나(Brāhmaṇa), 아란야까(Āraṇyaka), 우빠니샤드가 성립된 시대로 나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힌두교 시대는 다시 베다와 바라문 종교 요소를 바탕으로 수많은 종류의 종교문헌들이 더해진 시대로 구분된다. 많은 종류의 《뿌라나(Purāṇa)》나 《마하바라따(Mahabharata)》와 《라마야나(Ramayana)》가 모두 이 시대에 성립되었다. 그 중 《마하바라따》의 한 품인 《바가바드기따(Bhagavad Gītā)》는 독립 경전이 돼 현재 힌두교의 중심 경전이다.

이렇게 바라문이 중심이 된 종교에서는 붓다 출현 이후 새로운 경전들이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다. 이로부터 힌두교의 개념이 성립되었고 바라문의 종교 범위는 크게 확대되었다. 바라문 종교의 범위는 세상 거의 모든 신화와 종교, 철학을 모아 놓은 것처럼 풍부하다. 하지만 붓다 시대와는 달리 새로운 중심 경전이 부상하면서 중심 신격 또한 바뀌어 비쉬누(Viṣṇu)신과 쉬바(Śiva)신이 중심 신격으로 자리잡았다. 비쉬누신이나 쉬바신의 신격은 불교 흥기 즈음이나 이후에도 아주 미미했다. 비쉬누신, 쉬바신과 관련된 신화집인 《뿌라나》가 대략 서력기원후 1세기부터 작성됐고, 이후 두 신은 현대 힌두교에 있어 중심 신격으로 자리잡았다. 즉 바라문 종교시대는 새로운 범위의 종교지평을 갖고 있었으며, 이를 힌두교라고 부를 수 있다.

힌두교 양대 종파는 비쉬누신과 쉬바신의 두 신격이 중심이다. 하지만 힌두교의 신은 두 신격만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다. 베다 시대나 바라문교적인 범위의 신격만이 아니라 불교나 자이나교까지 어느 정도 흡수하여 자기 것으로 삼았다. 하지만 붓다 시대에는 《바가바드기따》와 같은 힌두교 중심 경전이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비쉬누신과 시바신은 붓다나 마하비라(Mahāvīra, 자이나교의 창시자) 시대에 지극히 미미한 주변부 신격으로 언급됐을 뿐이다. 누구도 붓다 시대의 베다나 바라문교에 후대 힌두교의 종교문화가 존재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라다끄리쉬난은 불교를 힌두교의 한 분파라고 주장하려고 힌두교의 기원을 무리하게 붓다 시대 이전까지 끌어올렸다. 힌두라는 용어가 갖가지 종류의 인종과 문화, 종교가 매우 다양하게 뒤섞인 개념이 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다. 그 기원을 붓다나 마하비라 시대까지 적용시킬 수는 없다.

힌두 국수주의 인도학·불교학

그렇다면 라다끄리쉬난은 왜 불교의 기원에 우빠니샤드가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을까? 왜 그가 의도적으로 인용문을 조작하면서까지 그런 주장을 애써 강조하려 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인도에서 불교를 적극적으로 폄하하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집요하게 시도되었다. 서력기원후 1세기를 전후해 성립된 힌두교 신화집 《뿌라나》에서 절정에 달한다. 바라문교를 믿지 않은 자를 심판하여 지옥에 보내기 위해 붓다나 마하비라가 비쉬누 신의 화현이라는 신화를 만들었다. 이런 시도는 인도불교 멸망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자이나교는 바라문의 시도에 효과적으로 대응했지만, 불교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시도는 최근의 인도 학자들에까지 반복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를 필자는 ‘힌두 국수주의의 인도학, 불교학’이라고도 명명한다.

현대 인도학자들의 의도적인 불교 격하나 폄하는 과거와 달리 좀 더 복잡한 배경에 기인한다. 전 세계적으로 조명 받는 것은 힌두교가 아니라 불교이다. 불교는 바라문의 베다 종교를 비판하고 출발한 혁신 종교다. 또 불교와 달리 베다나 바라문 사상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담지한 가르침이 아니라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점은 인도 지식인을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이것이 라다끄리쉬난과 같은 인도 국수주의적 성향의 학자들이 불교를 의도적으로 평가 절하하는 이유일 것이다. 붓다시대의 바라문교는 현재 힌두교의 배경이 되었다. 만약 인도에 종파적인 의미에서 과거처럼 힌두교와 경쟁하는 종교로서 불교 인구가 많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처럼 불교의 발상지는 인도인데도 불구하고 불교는 그들의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인도를 벗어나 세계로 퍼졌지만, 인도에서는 단절되었다. 반면에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불교는 현재까지도 문화·종교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수적 성향의 인도 지식인이 불교를 설명하는데 상당히 복잡한 심사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경향은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라다끄리쉬난이 잘 보여준다. 그는 인도 독립 후 약 15년 동안 초대 부통령과 제2대 대통령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런 경력은 라다끄리쉬난이 인용문을 조작하고 왜곡하면서까지 불교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나아가 힌두교의 아류로 배속시키려 했던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라다끄리쉬난의 학문은 힌두 국수주의와 결합해 있다. 이 때문에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교를 힌두교의 한 종파나 아류에 지나지 않다고 역설한 것이다.

주) -----
1) 이 논문은 《우파니샤드 철학과 불교 - 종교 문화적 그리고 사상적 기원에 대한 비판적 검토》(경서원, 2004)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조준호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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