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공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반야심경》은 불자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친근한 경전이다. 각종 법회나 의례에서 늘 독송하는 경전이고, ‘색즉시공 공즉시색’ 같은 구절이나 반야심주(般若心呪) 즉,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는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반야심경》에서 반야바라밀다를 주문으로 취급한 것은 산스크리트어 원전을 잘못 이해해 오역한 것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태승 위덕대 교수는 《인도철학》(인도철학회 간) 제54집에 발표한 <대·소본 《반야심경》의 비교를 통한 반야바라밀다주 고찰>에서 산스크리트어 대본 《반야심경》과 현장 스님이 한역한 소본 《반야심경》을 대조해 반야바라밀다가 주문으로 취급된 이유와 반야심주의 성격을 규명했다.

반야바라밀다를 주문으로 취급한 것은 구마라집역이나 현장역 소본 《반야심경》은 물론 대본 《반야심경》 한역본도 거의 같다. 이 교수는 자성공(自性空)을 깨닫기 위해 모든 대승불교도가 배우고 닦아야 할 반야바라밀다를 주문으로 취급한 뒤 또 다른 주문인 반야심주를 등장시켜 《반야심경》 이해에 혼란을 준 점을 주목했다.

이 교수는 “(산스크리트어 대본 《반야심경》에) 반야바라밀다의 상태를 드러내는 대주, 대명주, 무상주, 무등등주가 ‘반야바라밀다의 상태에서 설해진 주문’이고, 반야바라밀다는 제법자성공(諸法自性空)의 진리를 깨닫는 경계로서 대승불교도가 닦고 배워야 할 가르침인 것을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는 점을 《반야심경》 오역 주장의 근거로 삼았다.

이 교수는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이 반야바라밀다의 위상을 찬탄하거나 그 곳에 이르는 것을 격려하는 뜻을 갖는다고 한다면, 반야심주의 의미가 보다 명확해진다”고 지적했다. 즉 “만트라는 ‘반야바라밀다의 증득을 찬탄하는’ 혹은 ‘반야바라밀다에 이르는 것을 돕는’ 주문으로 이해해야 하고, 그러한 역할을 하는 주문이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즉 반야심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역본에서와 같이 반야바라밀다를 주문으로 간주하는 것은 반야바라밀다의 의미를 오해한 것”이라며, “《반야심경》 전체 의미에 근거해 살펴보면, 반야바라밀다는 주문이 아니라 제법공상을 통찰하는 지혜의 경계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또 “대승의 불교도가 그러한 지혜의 경계로서 반야바라밀다를 보다 빨리 성취하기 위해 그것에 도움을 주는 주문을 만들었던 것”이라며, “비록 한역의 경전에서 반야바라밀다 자체가 주문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더라도 《반야심경》에서 주는 한국전통에서 일반적으로 반야심주라 불리는 ‘아제 아제 … 사바하’인 것을 분명히 하여 이해하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반야바라밀다를 주문으로 간주하면 《반야심경》의 올바른 뜻은 전해지지 않는다”며, “반야바라밀다의 상태에서 설해지는 주문과 반야바라밀다를 주문으로 간주하는 것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상당수 한역자는 이 부분에 대한 구분이 일정치 않았다”며, “한역본의 역자가 잘못 이해해 번역했거나 대다수 한역자가 구마라집이나 현장 번역을 그대로 수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끝으로 “산스크리트어 대본 《반야심경》이나 한역본 《반야심경》은 반야바라밀다를 선양하고자 하는 뜻을 가진 순수한 경전”이라고 평가하고 “《반야심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고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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