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표문 중 유관순 지사의 인물카드 갈무리.

1919년 3.1운동에 10대부터 60대까지 전 연령대가 참석했고, 백용성·한용운 스님 뿐 아니라 목사 고물상 마차꾼 등 직업과 계급을 초월한 이들이 동참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박경목 관장(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25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발표할 <3.1운동 관련 서대문형무소 수감자 현황과 특징>에 수록된 내용이다.

박 관장은 ‘일제 감시 대상 인물카드’(등록문화재 제730호)에 등재된 4858명 가운데 3·1운동 가담 혐의로 붙잡힌 1013명을 조사했다.

이 조사로 3.1운동 가담으로 체포됐던 인사 가운데 독립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한 342명이 새로 알려졌다. 최고 형량인 12년형을 받았던 홍면, 10년형을 받은 김동순 등 주도자뿐 아니라 3.1 운동 후에도 독립운동을 계속 했던 김운종, 박춘범, 강학범, 안교열 등이다.

3.1운동 수감자 756명 가운데 10대는 14.81%, 20대 42.33%, 30대 21.96%, 40대 12.3%, 50대 6.48%였다.

일제 감시대상 인물 전체 4377명 가운데 10대 10.56%, 20대 57.50%, 30대 19.87%, 40대 7.59%, 50대 3.47%, 60대 0.96%, 70대 0.05%였다.

박 관장은 "이는 3.1운동이 독립운동 전반보다 전 연령대에서 고르게 참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수감자 신분별로는 753명 중 양반이 112명(14.87%) 평민이 641명(85.13%)이었다.

직업별로는 80여 개 직업을 가진 이들이 3.1운동에 참여했다. 면사무소 면장 서기와 순사보, 우체부를 비롯해 인쇄직공 연초직공 재봉직공 지함직공, 금은세공 기술자, 음식점과 직물 숙박업 운영인, 학교 서기, 고물상 마차꾼 사진사 등이다.

이 가운데 당진 대호지면 면사무소 소사 송재만은 당진 대호지, 정미의 4.4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대호지면 면장 이인정은 이를 도와 지역민 100여 명을 도로수선 명목으로 조직적으로 동원해 시위대를 이끌다가 수감됐다. 안동 예안면장 신상면도 예안읍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옥살이를 했다.

1886년생으로 일제 순사를 보조하며 대한문을 지켰던 순사보 정호석은 자신의 왼손 무명손가락을 깨물어 피로 태극기를 그려 대나무에 매달고 홍영학교에 들어가 학생들에게 시위 동참을 촉구했다.

박 관장은 “일제 총독부 직원이던 그의 참여는 일제 식민통치 말단 조선인들도 3.1운동을 지지 참여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했다.

한편, 일제는 3.1운동 직후 조선인 순사보를 일본인과 같은 순사로 승격시키려고 했다.

3.1운동 가담자들은 ‘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수감됐다. 독립유공자 서훈을 아직 받지 못한 이들 가운데는 배화여고 여학생들이 있다. 이들 24명은 보안법을 어긴 혐의로 기소됐지만 대부분 어린 여학생인 점이 참작돼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박 관장은 “3.1운동은 단순한 운동 차원이 아니었다. 일제 식민 체제를 변혁하려는 전 민족의 정치적 변혁 운동의 단계였다”고 했다.

조현성 기자 cetana@gmail.com

※ 이 기사는 업무 제휴에 따라 <불교닷컴>이 제공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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