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다시 단식에 들어간 설조 스님이 단식기도문을 부처님께 고하고 절을 올리고 있다. <사진=불교닷컴>

비구 설조 스님이 다시 단식에 돌입했다. 기한은 없다. 지난해 주변 만류로 목숨을 내 놓지 않고 단식을 중단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게 설조 스님의 생각이다. 혈혈단신인 설조 스님은 14일 아침 서울 안국동 정정법당에서 불전에 예를 올리고 단식에 돌입했다.

설조 스님은 이날 무명초를 깨끗하게 정리했다. 깨끗하게 삭발한 머리에는 곳곳에 상처가 있었다. 스님은 삭발과 면도를 마치고 승복을 단정히 차려 입었다. 그리고 부처님 전에 엎드려 단식에 다시 들어가는 뜻을 고하고 교단이 바로 세워질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달라면서 기도했다.

설조 스님은 지난해 41일간 단식했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 종권 세력의 갖은 비난에도 꿋꿋하게 노상천막에서 41일을 곡기를 끊고 교단 바로세우기에 몰두했다. 당시 설정 총무원장을 둘러싼 갖은 의혹과 MBC PD수첩의 ‘큰스님께 묻습니다 1, 2’편이 방송되면서 조계종 적폐청산 염원이 들불처럼 일어날 움직임이 보일 때였다. 설조 스님의 단식은 설정 총무원장 퇴진이라는 성과와 자승 적폐 세력의 종권 재 장악이라는 한계를 모두 맛보았다. 생명을 걸었던 단식은 주변의 만류로 회향했다. 노구의 비구 스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황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주변의 만류는 교단이 올곧게 정립되어야 한다는 뜻을 계속 잇도록 단식 중단이라는 결과로 회향했지만, “그때 목숨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고 설조 스님은 말했다.

“설정 원장 퇴진이 적폐청산 외침 멈추게 해 아쉬워”

14일 오전 설조 스님은 “설정 총무원장 퇴진이 종단 적폐청산의 방향성을 잃는 계기가 되어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스님은 “설정 원장 퇴진은 적폐의 원흉인 자승 전 총무원장의 구속과 현응·지홍 두 원장의 퇴출이라는 불자들의 발원과 외침을 멈추게 만들었다”며 “설정 원장은 자승 전 원장의 고용인에 불과한 것이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끝난 게 아니다. 현 원행 총무원장 체제 역시 ‘자승 원장’의 힘을 빈 태생적 한계를 가졌다”고 지적했다.

스님은 “지금은 의기소침할 때가 아니다.”고 했다. 설조 스님은 늘 개혁을 바라는 불자들과 스님의 수가 많고 적음을 떠나 발원의 정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 왔다.

설조 스님은 지금이 “자승 전 총무원장이 영구집권을 꽤하기 좋은 때”라고 보았다. 자승 적폐청산을 외쳤던 불자들이 “기진”해 졌을 때 적폐 세력은 더욱 종권 장악에 기를 쓸 것이라는 뜻이다. 스님은 “적폐 세력은 설정 원장 퇴진 후 새 원장을 내세워 마치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위장했다. 이 같은 상황은 시간이 가면 고착화되고 호도될 것이다. 지금이 내가 다시 단식을 결행할 수 있는 때”라고 했다.

“설정 퇴출 가능하나 그 이상 어렵다…문 정부 가이드라인”?

설조 스님은 지난해 단식 중단을 아쉬워했다. 스님은 “불초한 나는 몇 차례 패착이 있었다. 지난해 제 결단이 흐려지고, 사회원로들과 많은 불자들의 간절한 말씀에 미혹돼 당초 뜻을 결행하지 못했다.”며 “지난해 단식을 끝까지 했더라면 적폐청산의 꿈이 이루어졌을 것이고, 교단 정립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설조 스님은 ‘단식 기도문’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조계종 적폐의 원흉과 함수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단식을 중단했던 지난해 8월 초 청와대 한 관계자가 모 인사에게 “설정 총무원장 퇴출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고 발언한 것을 전해 들었고, 이 같은 발언을 유력한 사회 인사를 통해 확인했다는 것이다. 문 정부가 조계종 적폐청산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게 아니냐는 의문을 드러낸 것이다. 또 스님은 단식 중에 천막에 찾아온 정부부처 고위관계자가 “조계종 문제는 정교분리의 원칙에 따라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발언이 자승 전 총무원장과의 어떤 함수관계에 따른 것 아니냐고 인식했다.

설조 스님은 적폐청산에 국민적 염원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종교적폐청산에는 눈 감고 있다고 보고 있다.

스님은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돼 재판을 받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구속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조계종의 적폐 주범들이 두 명의 전직 대통령과 전 대법원장 보다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이냐”며 “조계종 적폐 주범을 보호하는 것은 문 정부의 시대적 사명인 ‘공정한 사회와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피치 못할 어떤 함수관계가 있기 때문은 아닌지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 설조 스님이 14일 단식에 돌입하면서 '조계종 적폐 원흉과 문재인 정부의 함수관계 규명을 위한 단식 기도문'을 읽고 있다. <사진=불교닷컴>

“자승 전 원장은 사찰 거주 자격 없다…종단적 퇴출해야”

설조 스님은 혈혈단신이다.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홀몸처지에도 단식을 다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조 스님은 “우리가 지켜야 할 부처님 교단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외부세력과 적폐 일당이 드세게 설쳐도 순수한 불자와 스님들이 정신을 가다듬어 교단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다시 인식하길 바란다.”며 “지난해 목숨을 내놓지 않은 내 스스로 참회하고 대중의 반성과 분발을 촉구한다.”고 했다.

또 “종교의 신성을 무시하고, 교법과 전통을 무너뜨려 교단의 장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이들에게 반성과 경종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자승 전 총무원장을 향한 설조 스님의 비판의 날이 시퍼렇다. 한국불교의 대표 수행자인 송담 스님을 떠나게 만든 장본인이 용주사에 회주로 자리해 방을 차지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설조 스님은 “자승 전 원장은 윤리적으로, 교단의 위계로도 문제가 많다. 용주사 조실채를 수리해 자신의 거처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송담 스님의 간절한 말씀에도 자승과 그 일당이 금권선거를 해 어른이 종단을 떠나도록 만들고도 감히 용주사에 거처를 만들고 회주가 되려 하느냐. 이런 참담한 일에도 누구하나 나서서 말리지도 공론화하지도 않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적폐 원흉인 자승 전 원장은 사찰에서 거주할 자격이 없다. 권력과 사찰 거주까지 모두 시정되어야 교단이 부패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이라며 “종단적으로 자승 전 원장을 퇴출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적폐청산은 고사하고 종단의 근본까지 몰락하게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설조 스님은 홀로 단식에 돌입했다. 권속도 가까운 지인들도 부르지 않았다. 스님은 “복이 없는 불초의 단식은 대중의 호응에 관계없이 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것이다.”며 “이제 부처님의 가피를 바라며 불자들이 적폐청산에 분발하길 바라는 마음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누구라도 오는 분들에게 종단이 맑아지길 바라는 내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행 체제는 태생적 한계…퇴진할 부류들이 만든 종권”

스님은 원행 총무원장 체제에 “원행 원장은 자승 전 원장의 힘을 빌려 그 자리에 올랐다. 태생적 한계를 잘 알 것”이라며 “지탄을 받고 퇴진해야 할 부류들이 작당해 만든 집행부는 아무리 유능해도 새롭지 않고, 진실하지도 않다”고 평가했다.

스님은 “지난 총무원장 선거에서 경선하던 세 후보의 사퇴의 변은 강한 메시지다. 이 메시지는 바로 현 원행 총무원장 체제를 잘 말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9월 26일 제36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후보자 혜총·정우·일면 스님은 “적폐 세력을 목격했다. 특정세력이 모 후보를 지지하도록 ‘지령’을 내렸다”면서 동반 사퇴했다.

설조 스님은 종단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언로가 트여야 한다고 했다. 말과 글을 막고, 법원의 판결조차 인정하지 않으면서 전제군주조차 하지 않던 언로를 막는 조계종단의 현실이 끔찍하다고 했다.

스님은 “이제 저는 부처님께 매달려 기도하겠다. 속죄하고 교단이 바로 세워지도록 부처님께 조르고 또 조르겠다.”며 “간절함이 닿으면 적폐청산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서현욱 기자 mytrea70@gmail.com

※ 이 기사는 업무 제휴에 따라 <불교닷컴>이 제공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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