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를 실천하는 불교 신행 활동의 하나인 방생이 세계 여러 곳에서 비판받고 있다.

자비의 특징은 자비가 단지 인간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만물이 제대로 조화롭게 살도록 보살피고 마음을 쓴다는 것이다. 방생은 이러한 자비 정신을 체현하는 것으로, 우리의 손길이 아니면 생명을 잃게 되는 동물을 위험에서 건져내어 다시 자유로운 삶으로 돌려보냄으로써 위험에 처한 생물을 돕고 당사자는 공덕을 짓게 된다는 믿음에 근간을 두고 있다. 서구에서 불교의 영향이 커지면서 그간 아시아권 불교국가에서 전통적으로 행한 방생이 서구에서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그러자 방생의 부작용에 대한 인식이 대두되며 환경주의자, 동물권리 활동가, 그리고 심지어 불교신자까지 비난하고 있다. 그들은 공덕을 짓기 위해 자비의 이름으로 행하는 방생의 어두운 얼굴을 지적한다.

대규모 동물 학대와 생태계 교란

생일을 축하하거나 질병 등 악한 기운을 쫓아내기 위해 개인에 의해 자발적으로 행하던 자비로운 행동이 방생법회라는 이름을 빌어 사찰 주도로 치르면서 수많은 동물이 대규모로 수난을 당하게 되었다.

방생을 위해 야생에서 포획된 동물은 그물과 덫으로 심한 상처를 입게 되고 방생에 사용될 때까지 길게는 몇 주 동안 나무상자에 빽빽이 갇힌 채 질식과 굶주림을 겪어야 한다. 방생 후에는 많은 동물이 탈진과 병, 상처 때문에,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거나 혹은 포식자의 먹잇감이 된다. 순전히 방생에 쓰이기 위해 번식되고 사육된 동물의 경우도 야생에 풀려났을 때 충격을 받게 되고 새 환경에 적응해 나갈 수 없다. 매년 방생되는 수백만 마리의 동물 중 극히 소수만이 살아남으며 심지어 방생을 위해 다시 잡혀 팔리기도 한다. 이는 동물에게 끝없는 고통의 악순환이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시의회에서 동식물 보호를 자문하는 이모겐 바셋(Imogen Bassett) 박사는 동물을 낯선 환경에 풀어 놓는 것은 그 동물을 치명적인 위험에 빠트릴 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미묘한 균형을 파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방생으로 풀려난 동물은 먹이나 은신처를 찾지 못하거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또한 뉴질랜드의 생태계는 수입 동물이나 식물에 매우 취약합니다. 다른 지역에서 들여온 거북이나 비단잉어는 토종 어류에게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미 취약해진 민물 생태계에 충격이 가할 수 있습니다.”(<뉴질랜드 헤럴드>)

문제는 방생을 하는 사람은 이 문제를 다른 측면에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들은 방생한 물고기가 혹 죽는다 하더라도 물고기는 해방된 것이기 때문에 다음 생에 더 나은 곳에 태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다. 방생을 위해 들여온 외래종이 천적이 없는 환경에 풀려나 무한번식을 하거나 새로운 질병을 퍼뜨리면서 생명다양성이 손상된다는 점도 지적된다.

방생을 둘러싼 막대한 돈

방생은 이제 선한 마음을 가진 한 개인의 자비심의 표현이 아니다. 수요와 공급, 이익의 극대화, 막대한 돈, 탐욕에 눈이 먼 사람이 얽힌 거대한 산업이다.

방생에 사용할 물고기나 동물 주문이 쇄도하면 이에 맞추기 위해 물고기나 동물의 포획이 이루어지고, 밀렵꾼, 사육자, 판매자 및 이외 많은 종류의 상인이 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방생 산업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사찰이나 불교단체는 팔정도의 하나인 정명(正命)에 위배되는 이러한 행위를 저지르는 이들을 지원하거나 심지어 허가하기까지 한다.

스리랑카에서는 100마리 이상의 소를 방생하는 법회를 정기적으로 갖는데 이는 소 장사꾼이나 공급자에게 큰 이익을 안겨주고 있다.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를 파는 중국의 베이징 시장 거리에서부터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은 물고기와 방생을 위한 패키지 서비스를 약속하는 싱가포르의 씨푸드 레스토랑까지, 방생은 모든 종류의 동물이 사육되고 포획되고 수입되고 밀수되는 수백만 달러의 동물학대 산업이 되었다.

특히 베삭(부처님오신날), 관음재일, 보름, 설날 등과 같은 날에는 거래량이 막대하다. 승려는 방생을 가장 숭고한 자비로운 행위라고 찬탄하며 장수, 건강, 성공, 극락왕생과 같은 방생의 공덕을 높이 노래하고 신도는 이런 상서로운 날의 방생으로 몇 배나 더 많은 공덕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다. 신도는 이 방생 행사 뒤에 승려와 공급업자 간에 은밀한 거래가 있을 수 있음은 알지 못한다.

방생의 기본 정신을 살리는 평화적 대안 모색

다행히 곳곳에서 이런 생명 대학살의 장이 되는 방생을 지양하고 본래대로 자연과 생명을 살리기 위한 방생의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하고 있다.

타이완의 ‘축복과 지혜 불교재단(Bliss & Wisdom Buddhist Foundation)’은 상처받은 동물을 치료해서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연구재단에 기금을 제공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불교단체는 대중에게 방생의 치명적 영향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일반 사찰도 신도에게 맹목적인 방생을 자제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미국의‘국제박애회(Humane Society International)’와 ‘미국불교연맹(American Buddhist Confederation)’은 홈페이지에 동물의 안녕과 보호를 위해 방생의식 대신 할 수 있는 25가지 행동수칙을 제시하고 있다.

동물 및 환경운동가는 생명에 대한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서 방생 대신 생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육류 소비를 줄이거나 매달 일정한 날에 채식을 하는 것, 동물실험을 하는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 동물 보호단체를 후원하는 것 등이다. 또한 뉴질랜드의 환경보호부가 제안하듯 토착 동물을 보호하는 프로젝트나 단체의 활동에 동참하는 것도 한 예이다.

독실한 불자이며 오클랜드대학의 의학강사인 토니 페르난도는 자비심으로 가득 찬 불자가 공덕을 지을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동물을 자연 속에 돌려보내는 것은 자비를 실현하는 숭고한 전통입니다. 그러나 보다 실제적이고 동시에 보다 더 어려운 수행은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의 가족, 동료, 친구, 그리고 낯선 이에게 하는 말과 생각과 의식적 행동 속에서 친절을 실천하는 것입니다.”(<뉴질랜드 헤럴드>)

방생은 누구를 위함인가? 복을 짓는다는 자기만족을 위해 무수한 생명을 희생시킬 자격이 인간에게는 있는가? 자신의 장수를 위해 외래 거북이를 들여오고 4억 7500만 년 동안 이 지구에서 살아온 투구게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 자비인가?

수행자의 발에 밟힐 미물을 걱정해 우기(雨期)에 안거의 전통을 세운 부처의 정신은 지금 누가 지키고 있는지 묻고 싶다.

하여 | 자유기고가, eun80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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