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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기원 - 우빠니샤드 영향의 불교 기원설
인도․서구학자 “불교는 우빠니샤드 철학의 아류”
2019년 01월 31일 (목) 16:22:29 조준호 .

1. 불교의 우빠니샤드 기원설

불교 기원에 대한 기존 학계의 일반적인 입장은 우빠니샤드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를 불교의 우빠니샤드 기원설이라 이름 지을 수 있다. 그런데 실제 불교가 우빠니샤드 철학과 접촉해 영향을 받았는가 하는 문제는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불교가 우빠니샤드 철학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아 기원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로는 라다끄리쉬난(Radhakrishnan)이 있다. 그는 저서 국내에 《인도철학사》1)로 번역된 《Indian Philosophy》에서 “불교는 우빠니샤드 철학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 인용문을 동원했다. 그는 인용문을 왜곡했지만 어느 정도는 기존 입장을 반영했다.

먼저 그는 빠알리성전협회(Pāli Text Society)를 설립한 영국학자 T. W. 리스 데이비스(Rhys Davids)의 입장을 임의로 왜곡하여 소개했는데 다음과 같다.2)

“고따마는 힌두교인으로 태어나고 양육되었으며, 그렇게 살다가 죽었다. … (이런 저런 정통 체계들에서 발견되지 않는 고따마 자신의 형이상학과 원리들은 많지 않으며, 그가 가르친 윤리 규범의 대부분은 초기 혹은 후대의 힌두교 경전들과 같은 맥락을 지닌다.) 고따마의 독창성은 이미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충분히 말해진 것들을 골라서 내용을 보다 풍부하게 하며 그것을 체계화한 사실에 놓여 있다. 그가 그들의 논리적인 결론에 대하여 행했던 식으로 평등과 정의의 원리들은 탁월한 힌두교 사상가들에 의하여 이미 인식되고 받아들여진 것이다. 다른 스승들과 그의 차이는 주로 그의 심원한 열정과 만민에 대한 박애 정신에 놓여 있다.”3)

계속해서 그는 “불교는 정통 신앙의 품안에서 성장하고 번성하였다”4)라고 인용한다. 하지만 이 부분을 리스 데이비스의 원본과 대조해 보면 원문의 의미를 완전히 달리 생각하도록 왜곡해 인용했음을 알 수 있다. 라다끄리쉬난은 리스 데이비스의 글을 왜곡 인용하면서 “초기불교는 완전히 독창적인 어떤 교설이 아니다. … 우리가 감히 짐작하건데 초기불교는 우빠니샤드의 사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 붓다 자신은 그의 가르침과 우빠니샤드의 사상 간에 어떤 모순이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 불교는 적어도 그 기원에 있어 힌두교의 한 분파이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5)

이처럼 라다끄리쉬난의 인용문을 리스 데이비스의 《Buddhism》의 원문과 대조해 보았을 때 불교 기원을 우빠니샤드에 두려는 목적에서 고의적으로 왜곡하여 인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라다끄리쉬난은 나아가 유명한 인도학자 막스 뮐러(Max Müller)의 주장도 왜곡해 인용한다. 즉 “우빠니샤드의 교의 가운데 다수는 의심할 나위 없이 순수 불교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불교는 여러 점에서 우빠니샤드에 놓인 원리의 지속적인 발전이라고 해야 한다”라는 구절이 그것이다.6) 이처럼 라다끄리쉬난은 서구의 유명한 인도학자의 글을 왜곡해 인용함으로써 다음과 같이 과감하게 단정하고 있다.

“불교는 이미 우빠니샤드로부터 시작된 사상의 전체 흐름 가운데 후기 단계에 불과하다. … 붓다는 자신을 혁신자가 아니라 단지 옛 길, 즉 우빠니샤드의 길을 복귀시킨 자로 여겼다. … 불교는 그 당시만 해도 선택된 소수에게 국한되어 있었던 우빠니샤드의 철학을 대중화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 불교는 바라문교가 그 본래의 근본적인 원리로 회귀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붓다는 우빠니샤드의 이론에 대한 반작용의 파도 마루를 타고 성공한 개혁자라기보다는, 널리 유행하던 우빠니샤드의 이론을 개조해서 수승한 측면이 드러나게 하고자 했던 개혁자였다. 붓다의 가르침이 지니는 결정적인 결함은 스스로의 윤리적 진지함 때문에 진리의 절반만을 취해서 그것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확대했다는 것이다. 형이상학에 대한 그의 혐오는 그 부분적인 진리가 필연적인 보완을 필요로 하며, 그것이 스스로 부과한 한계 너머로 그 자체를 확장시키는 원리들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다.”7)

그리고 라다끄리쉬난은 여러 곳에서 다양한 언사로 불교의 기원을 가일층 재단한다. 그 사례가 P. V. 바파트(Bapat)(ed.)의 《2500 Years of Buddhism》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단행본은 불기 25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인도 정부 차원에서 간행된 책이다. 인도에서는 불교학을 위한 기본 교재처럼 사용된다. 필자가 인도에서 유학할 당시에도 수업시간에 이용되었다. 여기서 그는 “붓다는 새로운 종교를 선언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8)거나 “불교는 새롭고 독립된 종교로 시작하지 않았다. 이것은 고대 힌두 신앙의 이교자(異敎者)나 이단자와 같은 아류였다.”9)라는 식으로 마음껏 불교의 기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상한 것은 이 같은 직접적인 단정의 어조가 비판 없이 현재까지도 수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유학 당시부터 그의 주장에 여러 가지 어폐가 있음을 느꼈다.

이처럼 라다끄리쉬난은 “붓다는 우빠니샤드 철학의 뒤를 이은 우빠니샤드 철학자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으며, 나아가 우빠니샤드 철학의 완전한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심지어 불교는 우빠니샤드 철학의 주류도 아닌 아류나 부산물 정도에 지나지 않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현재까지도 인도계 학자는 물론 다른 나라의 인도학·불교학 학자들에게 깊이 작용하고 있다. 다음에는 나중 국내 학자들에 나타나는 이러한 영향을 살펴 볼 것이다.

라다끄리쉬난이 이런 주장을 펼친 것은 서구의 인도학·불교학자들의 일반적인 입장에 고무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앞서 말한 막스 뮐러는 불교에 대해 “바라문교의 반동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10)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 산스끄리뜨 사전을 편찬한 유명한 M. 모니어윌리엄스(Monier-William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붓다의 방법은 오래된 가르침에 새 옷을 입히는 것이거나 또 다른 비유를 끌어 들여 오래된 병에 새 술을 담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모든 인도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끌게 하는 굉장한 무엇인가 있었다. … 붓다는 모든 인도인들과 같이 형이상학자였다. 그리고 그는 우빠니샤드 철학에 깊이 공명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도 깨달음을 얻기 전 대부분의 바라문들처럼 단일한 우주적인 영혼 (One Universal Spirit)의 존재를 굳게 믿었을 것이다.”11)

이러한 서구 인도학·불교학계의 견해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재까지도 이어져 우빠니샤드 철학이 불교가 기원하는데 깊이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일부 서구학자나 인도학자는 나아가 불교 기원에 끼친 우빠니샤드의 영향을 증명하려고 시도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불교 전공자인 R. F. 곰브리치(Gombrich) 교수의 《How Buddhism Began》(1996)과 같은 종류의 연구서가 그것이다.

주) -----
1) 이후 라다끄리쉬난의 책은 국내 번역의 《인도철학사》(이거룡 역, 한길사, 1997)를 인용한다.
2) 이러한 왜곡은 원저서의 원문과 대조시켜 확인했다. 아래 각주 3, 4가 이에 해당한다.
3) 이거룡, 앞의 책, p. 156 ; 인용문의 힌두교인(Hindu)과 힌두교(Hindu)는 원래 원문의 인도인(typical Indian)과 최초기(earliest)인데 각각 임의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원문에는 첫 문장이 끝나면서 바로 ‘가우타마 당시에는 힌두교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어 힌두교인이나 힌두교라는 말을 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의로 생략했다. 그리고 밑줄 친 부분의 문장의 인용문은 아예 원문에 없는 것이 삽입되어 있다.
4) 이거룡, 앞의 책, p. 157. 여기서도 “불교는 정통 신앙과 함께 나란히 성장하고 번성하였다”의 원문 “Buddhism grew and flourished side by side with the orthodox belief.”를 “Buddhism grew and flourished within the fold of orthodox belief”로 왜곡했다.
5) 이거룡, 앞의 책, pp. 155-157.
6) 이거룡, 앞의 책, p. 291.
7) 이거룡, 앞의 책, pp. 291-293.
8) P. V. Bapat (ed.), 《2500 Years of Buddhism》, p. ix.
9) P. V. Bapat (ed.), 앞의 책, p. xii.
10) M. Winternitz, 《A History of Indian Literature》, vol. Ⅰ. p. 272.
11) M. Monier-Williams, 《Buddhism》, pp. 104-105.

조준호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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