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명차(名茶)의 생태(生態)

중국 속담에 “고산(高山) 운무(雲霧)는 좋은 차를 잉태하고, 좋은 산과 좋은 물에서 명차가 난다.”고 하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소개하면서 문득, 필자가 예전에 본고 편집장의 부탁으로 불교와 연관된 중국의 차문화를 <중국차 기행>이란 제목으로 연재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연재를 마치면서 본고에 발표한 원고를 묶어 2011년에 《명산(名山), 명사(名寺)에서 명차가 난다》라는 제목으로 졸고를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이 말 또한 중국 차업계(茶業界)에서 많이 회자되는 속담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속담은 표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좋은 차는 좋은 생태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이러한 논리는 비단 차(茶)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라, 모든 농작물에 다 적용될 수 있는 진리일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명차를 살펴보면 대부분 생태환경이 우수한 명승지나 그 주위에서 생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 ‘10대 명차’ 중의 하나인 ‘황산모봉(黃山毛峰)’은 황산 풍경구 내의 해발 700-800미터에 위치한 도화봉(桃花峰), 자운봉(紫雲峰), 곡운사(谷雲寺), 송곡암(松谷庵), 적교암(吊橋庵), 자광각(慈光閣) 일대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용정차(龍井茶)’ 중에서도 최상급을 자랑하는 ‘사봉용정(獅峰龍井)’ 같은 경우는 무려 해발 1,000m 이상의 사봉산(獅峰山) 정상에서 생산되고 있다. 그 곳은 대나무가 울창하여 녹음이 우거지고 늘 운무가 자욱하며, 기온이 따뜻하며, 강우량이 충만하다. 아울러 토양에는 부식질(腐植質)이 풍부하고, 미네랄 함량이 비교적 높다. 이러한 천혜의 조건은 차나무의 생장(生長)은 물론 찻잎의 자연적 품질 형성에도 대단히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오룡차의 원조인 ‘무이암차(武夷岩茶)’는 중국의 동남 일대에서 가장 기이하게 빼어난 ‘무이산(武夷山)’에서 생산된다. 무이산은 기후가 따뜻하고, 연 강우량이 2,000mm이며, 산 자체가 구곡계(九曲溪)를 끼고 있어 사철 물이 풍부하여, 조석으로 운무가 산정을 감싸고 있다. 산 전체가 기암절벽과 봉우리로 되어있으며, 전형적인 붉은 단하(丹霞)지형으로 풍부한 부식질을 함유한 산성의 붉은 토양은 차를 재배하기엔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외에도 명차가 나는 곳을 살펴보면 각기 차의 특성에 따라 천부적인 생태환경을 이루고 있다. 차의 발상지인 몽정산(蒙頂山)을 비롯해 모봉(毛峰)으로 유명한 황산(黃山), 죽엽청의 아미산(峨眉山), 보이차의 발상지인 경매산(景邁山), 오룡차의 아리산(阿里山) 등이 모두 그러하다.

《다경(茶經)》을 비롯한 중국의 역대 다서(茶書)를 보면 제일 먼저 반드시 거론되는 것이 바로 차의 생장에 적합한 생태환경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굳이 명차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일단 차를 재배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선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명차를 재배하는데 필요한 천연적인 생태환경 조건은 크게 네 가지 정도로 집약할 수가 있다.

첫째는 일조(日照), 둘째는 온도(溫度), 셋째는 습도(濕度), 넷째는 차나무가 생장하는 곳의 토양(土壤)이다. 이상의 생태적 조건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제다법의 중요성을 거론할 수가 있는 것이다.

1) 일조와 명차의 품질의 관계

당대(唐代) 육우(陸羽)가 쓴 《다경》에서는 “양지바른 벼랑의 그늘진 숲에서 자주빛 나는 것이 으뜸이요, 초록빛 나는 것을 다음으로 친다. 순(笋)을 으뜸으로 치고, 싹〔芽〕을 다음으로 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1) 이것은 차나무가 양지바른 산비탈의 숲으로 그늘진 곳에서 생장하기에 적합함을 말하는 것이다.

송대(宋代) 조길(趙佶)의《대관다론(大觀茶論)》에서는 “차를 심어 생산하는 땅의 언덕은 반드시 햇볕이 들어야 하며, 차밭은 반드시 그늘져야 한다. 차의 성미는 차가운 것이므로 그 잎이 눌려서 메마르면 맛은 거칠고 엷어지니, 반드시 화창한 봄철 햇살의 도움으로 드러내야 한다. 한편 땅에는 번성하게 하는 성미가 있어 그 잎이 거칠고 시들어서 맛이 강하여 제멋대로이니 반드시 그늘의 도움으로 절제되어야 한다. 음과 양이 서로 도우면 차가 자라는 데 있어서 더욱 마땅하게 된다.”2)

이 기록은 차의 재배에 음(陰) 양(陽)의 조화가 필수적인 조건임을 보여준다. 즉, 좋은 차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그늘과 햇볕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함을 설명하는 것이다.

일조는 차나무의 광합성 작용과 유기양분을 제조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차나무는 음지에서 잘 견디는 식물이며 햇볕의 강도와 일조 시간이 광합성 작용의 진행과 그 질량을 형성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찻잎의 생산량과 품질의 관계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현대에 이르러 차나무 생장과 생태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전문 다서와 논문도 많이 출간되는 추세이다.

왕진항(王鎭恒) 주편(主編)의《차수생태학(茶樹生態學)》에 보면 “햇볕의 직사광이 아닌 반사광(反射光)3)이 차나무의 생장에 가장 적합하며, 이렇게 반사된 일조, 즉 간접적인 일조를 받은 찻잎에 ‘엽록소B’가 비교적 많이 생산된다.”고 하였다. 아울러 반사되는 일조의 빛 중에서도 푸른 자주빛〔藍紫光〕을 이용하여 각종 ‘아미노산’을 생성하는데, 이것은 찻잎의 향기를 끌어 올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비교적 높은 고산지역과 장기적으로 운무가 덮여있고, 간접적 일조량이 많은 곳에서는 질소화합물이 많이 생성되어 찻잎의 향기를 높게 하는 방향(芳香)물질이 증가, 찻잎의 품질이 비교적 좋게 형성될 수 있다.

이러한 명차의 생태적 조건들을 염두에 두고, 명차들의 생산지인 몽정산, 무이산, 아미산, 아리산, 고산(高山), 황산, 구화산(九華山), 경매산 등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가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사실과 연구를 토대로 볼 때 명차를 따고 만드는 차나무들이 대부분 해발이 비교적 높은 차밭에서 많이 생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해발이 비교적 높은 차밭에는 일조가 짧고, 대나무가 무성하여 그늘을 이루어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으며, 햇볕의 반사광이 비교적 많다. 차나무는 부분적으로 파장이 길게 비치는 일조 반사광 중에 포함된 등적색빛과 푸른 자색빛을 흡수하여 엽록소와 방향물질의 형성에 유리한 작용을 얻는다.

반대로 일조량이 긴 평지의 차밭에서 차를 재배하여 취하려면, 주변에 숲을 이루거나 혹은 인공적으로 햇볕을 차단하여 그늘을 만드는 등의 일련의 조치를 하여 일조 시간을 단축시켜야만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찻잎의 유기화합물단백질이나, 아미노산, 엽록소, 카페인의 함량을 높일 수 있다.

주) -----
1) 당(唐) 육우(陸羽) 《다경(茶經)》 〈일지원(一之源)〉 : “……陽崖陰林, 紫者上, 綠者次; 箏者上, 芽者次。…… ”
2) 송(宋) 휘종〔徽宗 : 조길(趙佶)〕, 《대관다론(大觀茶論)》. “植茶之地, 崖必陽, 圃必陰, 蓋石之性寒, 其葉抑以瘠, 其味疏以薄, 必資陽和以發之; 土之性敷, 其葉疏以暴, 其味强以肆, 必資陰蔭以節之. 陰陽相濟, 則茶之滋長得其宜.”
3) 반사광 : 중국어로는 ‘만사광(漫射光)’, 혹은 ‘만사(漫射)’, 또는 ‘만반사(漫反射)’이라고 한다.

박영환 | 중국 사천대학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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