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스스로 청정(淸淨)하게 하는 일

 

어른 스님들을 뵈면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독특한 향기와도 같은 그 무엇이 있다. 그 스님들은 자고로 몸보다는 마음이 크고, 마음보다는 일신의 법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관암 스님(불광선원장·대구·사진) 역시 그런 면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어른 스님이다.

제가 출가가 좀 늦어요.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이게 아니다 싶어’출가를 결심했죠. 하지만 출가 결심이 갑자기 선 것은 아닙니다. 그에 앞서 수많은 불연(佛緣)으로 이미 저는 반(半) 스님이 되어 있었죠. 통도사 아랫마을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어머니 치맛자락 붙잡고 백련암도 자주 갔었고, 대학 생활의 절반을 대불련 활동으로 보냈으니까요. 졸업 후에 교편을 잡고 있을 때도 청년회 활동을 하며 신심을 다잡았으니, 출가 결심을 할 수 있었던 신심의 씨앗이 제법 컸을 것입니다.
재가로서 마지막 신행 활동은 전주 의곡사 청년회였습니다. 늦깎이 행자를 흥쾌히 받아주셨던 은사 스님은 그 절(의곡사)에 주석하고 계셨던 황산 큰스님입니다. 제가 출가를 결심할 때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산문에 들어섰다고 했죠. 물론 그것도 단초라면 단초일 수 있겠지만, 그 용단(勇斷)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가장 가까운 곳에 가장 불제자다운 스님을 뵐 수 있었기에 기능했습니다.
나옹혜근 선사의 시 중에서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靑山兮要我以無語 蒼空兮要我以無垢 聊無愛而無惜兮 如水如風而終我)”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황산 큰 스님은 그 시의 본뜻을 오탁악세(五濁惡世)에서도 고스란히 실천으로 보여주신 법향(法香) 가득한 수행자이셨습니다. 그런 모습이 ‘할까 말까’하는 망설임을 일도에 자르고 출가사문이 되는 용기를 제게 주셨습니다.
행자 시절과 강원 학인 시절은 의곡사와 해인사에서 보냈습니다. 습의는 어릴 적부터 몸에 익어 있었고, 신행 활동에서 배운 교학도 나름대로 쓸모가 있었어요. 그렇지만 절집에서의 대중 생활은 단지 ‘앎’으로만 채워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깊이를 더하고, 반듯한 서원을 세우고 반드시 실천하는 학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자리하고 있었던 구절이 있습니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다 보면 그 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는 법이니 그 선한 점을 본받아 따르고 그 나쁜 점을 골라내어 고쳐야 하느니라.(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라는 공자의 가르침이었습니다.
해인사에는 많은 대중이 공부하는 곳입니다. 그중에는 용도 있고 뱀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학인이라면 반야의 지혜를 상징하는 ‘취모검(吹毛劍)’을 높이 들고, 삿된 분별없이 그 모두를 스승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합니다. 취모검이란 칼날 위에 솜털을 올려놓고 입으로 불면 끊어지는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로 고대의 명검입니다. 선어록에는 금강보검(金剛寶劍), 막야검(劍), 관우 장군의 대도(大刀)가 자주 등장하는데, 반야의 지혜의 영묘한 작용을 비유한 것입니다. 저는 『유마경』에서 번뇌의 적을 타파하다고, 『증도가』에서 외도의 심장을 쳐부순, 취모검을 들기 위해 촌분을 아끼며 정진했습니다.
성철 스님에게 3천배를 올리고 ‘마삼근(麻三斤)’이라는 화두를 받아 들고 학인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구참 수좌 스님들의 ‘7일 용맹정진’에 동참했던 것도 ‘취모검’을 들고자 했던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그 일은 저에게 값진 경험이 되었습니다. 화두 공부에 익어가는 선배 스님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며 ‘선교입선(先敎入禪)’을 실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경험을 통해 스스로 화두에 몰입해 보고 싶다는 ‘굶주린 사자’와 같은 발심을 온몸에서 일으켰습니다.
강원 수업을 끝내고 저는 청화 큰 스님 회상(會上)을 찾았습니다. 수행의 길을 열기 위해섭니다. 태화사에서의 공부는 제가 바라던 것 이상의 수확을 얻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수행자의 최고의 서원인 ‘깨달음’이 화두를 들고 참구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이란 ‘아들’이 있다면, 그것이 있게 한 부모(근원)는 누구안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십시오. 그 문제는, 공부에 뜻을 둔 이들이라면 꼭 짚어야 할 일입니다. 저는 그 해답을 청화 큰 스님의 자비(慈悲)와 원력(願力)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원력이라는 아버지와 자비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깨달음이란 아들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청화 큰 스님은 후학들에게 ‘선화(禪化)’을 가르치셨던 스승이셨습니다. 『법화경』에는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이 나오는 데, 이는 편견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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