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불교유신론》 초판본(선학원 소장)

"종교는 시대의 욕구에 응하여 방편을 조화하는 것"

1905년 출가 이후 한용운의 사상과 실천 그리고 종교 체험은 불교 수행자로서의 정체성 안에서 원숙해지고 발전해 나간다. 불교 특히 설악산 오세암은 한용운이 언제나 돌아와 쉬고, 성찰하며, 정진하고, 재충전하는 정신적 안식처이자 새로운 글이나 사상을 잉태하고 생산하는 그만의 작업공간이었다. 또한 불교는 한용운이 새로운 개화사상이나 신문물을 접할 수 있는 통로였고, 자신의 종교 사상이나 내적 종교 체험을 풀어낼 수 있는 실험의 장이자 모든 대외적 활동의 기반이었다.

출가한 후 5, 6여 년간 오세암에 머물면서 불경은 물론 다양한 독서를 통해 사유의 폭을 넓혀나가게 되었다. 즉 《영환지략(瀛環地略)》를 통한 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대와 무엇보다 양계초(梁啓超,1873-1929)의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통해 서구 근대 사상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나아가 일본 견문으로 신문명을 접하면서 축적된 경험과 사유를 주체적으로 소화시켜 자신의 사상 체계를 정립해 나가게 되었다.

이기주의를 배격한 자유주의, 불교에 결합시켜 개혁사상 주창

한용운은 불교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진보적 계몽주의자가 되었고, 근대적인 자유주의를 불교적 평등의 개념에 흡수하였다. 그러면서도 자유주의에 결부되기 쉬운 이기주의를 배격하는 동시에 불교의 보살 정신을 사회 개혁의 사상적 기점으로 확인하였다. 혼돈의 시대에 근대 사상의 진보적 측면을 불교 속에 철저히 여과하고자 했다.1) 즉 불교인이자 종교인이었던 한용운은 종교에서 개인의 실존적인 고민뿐만 아니라 민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고자 하였다. 그는 종교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불교부터 개혁하고자 하였다. 그 첫 번째 결실이 바로 《조선불교유신론》이다. 한용운이 발표한 논설 속에 드러난 그의 종교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다.

종교는 인중을 지도하여 그들의 행복을 증진하는 데에 종교의 본질적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즉 시(時) 처(處) 중생(衆生)의 근기(根機)를 따라 제도(濟度)의 방편을 달리하는 것은 교리의 본령을 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시대 인중(人衆)의 욕구에 응하여 사위적(事爲的) 방편을 조화하는 것2)

이처럼 한용운은 종교의 근본정신을 유지하면서도 시간과 공간에 따라 대중의 행복을 신장시키기 위해 시대적 변용과 방편적 응용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불교가 당대는 물론 미래 사회에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시대정신을 잘 읽어 불교적 방편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 안에 이미 재해석 가능한 사상적 자원이 풍부하다고 확신하였다.

종교는 정신생활의 낙원이요 천국이다. 일구(一句)의 법문으로 만장(萬丈)의 업화(業火)를 냉각하고, 편각(片刻)의 선열(禪悅)로 백겁(百劫)의 무명(無明)을 돈제(頓除)하느니, 종교는 지상의 예술이요 최고의 도덕이니, 부르조아지에 있어서 그러하고, 프롤레타리아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부르조아 계급은 어느 정도까지 육체 즉 물적 생활의 안전을 얻는 고로 그 생활상에 다소의 연대성을 가진 정신에 있어서 비교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으나, 물적 생활에 고통을 받는 프롤레타리아는 종교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정신적 위안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3)

반종교운동에 항거 “프롤레타리아에게 종교 절실” 강조

사회주의자들의 반종교운동에 항거하여 종교의 가치와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종교가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과 의미들을 강조하였다. 특히 정신적인 면에서는 프롤레타리아에게 더욱 종교가 절실하다고 보았다.

종교를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부르조아의 향락적 유희물로 보아서 자본주의 몰락과 동시에 종교도 사멸하리라고 보는 것은 종교에 대한 인식부족의 착각이다. 종교 그 중에도 불교와 같은 것은 교리 자체에 있어서 평등주의 비사유주의(非私有主義), 즉 사회주의의 소질을 구유(具有)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라는 것은 시대와 근기(根機)를 맞추어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본령인 이상,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모든 주의와 제도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그 시대 그 중생에 적응한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가장 현실적 과학적인 실행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시대에 있어서는 그 시대에 적응한 방편이 있고, 사회주의 시대에 있어서는 그 시대에 적응한 방편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종교라는 것은 인간 사회를 철학적 윤리적 혹은 정치적으로 어느 제도를 구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 어느 때 어느 사람을 물론하고 그의 기연(機緣)대로 제도하여 마지않는 것이 종교의 금도(襟度)요 본령이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부르조아의 유희물이 되어서 프로 계급의 해독이 된다는 것은, 그 이론의 부족은 고사하고 종교의 본회(本懷)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종교는 제도에 구니(拘泥)하는 것이 아니요, 제도를 초월하여 거기에 구니되지 아니할 뿐 아니라 간섭도 하지 않는 것이다.4)

종교는 특정 제도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초월하여 그 시대에 적합한 방편으로 사람들을 제도하는 것으로 인간이 존재하는 한 종교도 함께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불교 교리 안에 이미 평등주의와 비사유주의 같은 사회주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당대 유행하고 있는 사상 조류와도 소통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나아가 시대 상황의 변화와 더불어 심화 발전되어 온 한용운의 사상은 결국 불교사회주의를 구상하기에 이른다.

불교사회주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발표되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의 사회 사상의 기조인 자유와 평등이 보장된 이상적 사회로 평등과 비사유주의를 현실적 차원에서 구현시키는 방법을 모색한 사상으로 추정된다. 한용운은 석가가 당시 인도사회의 카스트제도를 배격하고 인류는 모두 평등하고 자유롭다는 이상을 갖고 경제적인 불평등을 배척하고 소유욕에 얽매이지 않음을 바람직하게 여겼던 점5)을 들어, 불교 안에 내재된 사회주의적 요소를 적극 부각시켜 불교적 이상세계를 현실 속에서 실현하고자 한 종교 실천가이자 순교자적 정신의 소유자이다.

종교심은 인생의 구유(具有)한 본능적이므로 도저히 일시적 제도로 종교를 반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종교는 영생(永生)이요, 불멸이다. 반종교 운동은 중생계(衆生界)를 떠나서야 비로소 성공이 있을 것이다.6)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의 특성을 간파한 한용운은 ‘인간의 종교적 심성은 원초적 특성으로 영원하리라’ 여겼으며, 오히려 반종교 운동을 펼치는 사회주의자들의 마르크스를 향한 맹목적 믿음이 미신 혹은 광신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역으로 비판하였다. 한용운은 종교 특히 불교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평생 불교의 그늘 아래 자신의 다양한 행적들을 펼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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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염무웅, 〈한용운의 민족사상〉, 《한용운사상연구》, 민족사, 1980, 243면.
2)한용운, 〈조선불교의 개혁안〉, 《불교》 88호, 1931.10.1, 《한용운전집》 2권, 신구문화사, 1973, 164-165면.
3)한용운, 〈反宗敎運動에 대하여〉, 《한용운전집》 2권, 신구문화사, 1973, 280면.
4)한용운, 〈世界 宗敎界의 回顧-佛紀 二九五八年〉, 《佛敎》 93호., 1932.3.1, 《한용운전집》 2권, 신구문화사, 1973, 277면.
5)한용운, 〈석가의 정신〉, 《한용운전집》 2권, 신구문화사, 1973, 1983, 291-2면.
6)한용운, 〈反宗敎運動에 대하여〉, 《한용운전집》 2권, 신구문화사, 1973, 280-28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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