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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분황사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지정예고
옆에 붙은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도 함께 지정
2019년 01월 08일 (화) 15:15:20 박선영 기자 budjn2009@gmail.com

   
▲ 구황동 원지 유적과 분황사 전경  <사진 제공=문화재청>

신라의 대표적인 사찰 가운데 하나인 ‘분황사’가 있던 분황사지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됐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지난해 12월 26일 〈경주 분황사지(慶州 芬皇寺址)〉와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慶州 九黃洞 園池 遺蹟 一圓)〉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하였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2건의 유적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지만 다른 시기의 다른 유적이다. 한때 구황동 원지가 분황사에 속한 사원지(寺園池)로 여겨진 적도 있었으나, 발굴조사 결과 출토되는 다양한 유물의 시기를 추정하여 볼 때 두 유적은 별개의 것으로 밝혀졌다.

〈경주 분황사지〉는 신라의 대표적인 사찰 가운데 하나인 ‘분황사’가 있던 곳으로, 《삼국유사》,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분황사’는 선덕왕 3년(634)에 창건되었으며,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과 원효(元曉)가 머무르면서 불법을 전파하였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1990년부터 2014년까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현재의 경역 내·외부를 확인하였는데, 창건 당시 신라 최초의 품(品)자형 일탑삼금당식(一塔三金當式) 가람으로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일탑삼금당식(一塔三金當式) 가람이란 사찰에서 탑을 중심으로 동·서·북면 세 곳에 법당을 배치하는 양식을 말한다. 그 후 세 번의 중건을 거쳐 광해군 원년(1609)에 현재의 금당인 보광전을 조성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분황사는 황룡사, 흥륜사 등과 함께 신라의 삼국통일 이전 왕경(경주)에 조성되었던 신라불국토설로 조성한 경주 7개 가람인 ‘칠처가람(七處伽藍)’의 하나로, 국보 제30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장기간의 체계적 발굴을 통해 가람의 배치 양상과 그 변화상뿐만 아니라 경역의 대부분을 규명한 사찰로써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 분황사지에서 출토된 유물 <사진 제공=문화재청>
   
▲ 구황동 원지 출토 유물 <사진 제공=문화재청>

또한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은 처음 경주 황룡사지와 관련한 전시관 건립 부지로 선정되어 1999년 시굴조사를 하던 중 통일신라시대의 석축, 담장, 우물 등의 유적을 확인하고, 2004년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원지 유적이다. 구황동 원지는 동궁과 월지, 용강동 원지에 이어 세 번째 신라왕경 원지 유적으로 희소성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조경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지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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