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대학을 다닐 때는 비록 독재정권 치하였지만 대학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란 어느 시인의 말에 공감하였다. 교수가 방일과 더불어 고독과 싸워가며 진리를 탐구하고 이를 올곧은 목소리로 토해내었고, 학생들은 그로도 갈증을 느껴 지구 전체를 삼킬 듯한 지적 호기심으로 밤새 하얗게 눈을 밝히며 책을 읽고 거리와 교정을 오고가며 고통스럽게 사색하였고 열정을 다하여 토론하였다.

지금 ‘진리탐구의 실천 도량, ‘양심과 비판지성의 보루’로서 대학은 없다. 신자유주의의 유령이 대학을 뒤덮어버렸다. 대학은 시장에 편입되고 시나브로 물신을 섬기는 신전이 되었다. 대학본부가 골몰하는 것은 백년지대계로서 교육이 아니라 취업률, 교수의 연구업적과 같은 계량적 수치다. 이것이 곧바로 대학평가의 서열, 정부의 지원금, 입학생의 점수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승진, 업적, 프로젝트에 관여된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 학생들은 한참 낭만과 지적 열정으로 불탈 새내기부터 취업공부에 매진한다. 올곧게 이론과 진리를 가르치는 강의는 속속 폐강이 되고 취업에 도움이 되거나 감각적 즐거움을 주는 강의에 몰린다.

한 마디로 한국 대학에서 진리는 교환가치로 대체되고, 지성은 효율성 앞에 무너져 내렸다. 오죽하면, 김민섭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에서 대학이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면서도 햄버거 가게보다 더 사람을 위하지 못하는” 장이라고 표현하였겠는가. 이번 강사 대량해고 사태만 하더라도 대학의 정신이 살아있다면 착상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시간강사들은 대략 40% 정도의 강의를 교수와 똑같이 수행하면서도 그 대가는 십분의 일 가량만 받아 왔다.(교원보수 중 강사료 비율은 연세대 3.38%, 고려대 4.43%) 강사의 평균연봉이 1천만 원이 채 되지 않으며, 그들은 교원이 아니었고 언제든 잘릴 수 있었으며 4대 보험의 보호도 받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며칠 전에 국회에서 통과된 강사법은 강사에게 교원의 지위를 부여하고 재임용 절차와 4대 보험을 상당한 정도로 보장하고, 방학 중에도 임금을 지급하고 퇴직금도 주도록 하였다. 그런데 법이 통과되기 전부터 사립대학들은 전체 예산에서 0.01%도 되지 않는 단지 10에서 20억 원 정도의 비용을 절약하기 위하여 강사대량해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단지 시간강사의 직업을 박탈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들이 학문 후속세대이기에 학문의 미래에 스스로 철퇴를 가하는 것이다. 강사를 대폭 줄이면 대학원생들은 박사 학위 취득 이후 그나마 강사로 학자의 길을 이어가는 것 또한 극히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이는 학문생태계를 붕괴시키고, 나아가 대학에서 탐구한 진리가 사회와 국가 발전을 도모했기에 대학과 국가의 미래를 포기하는 어리석은 행위다. 한양대 교수 53인이 이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낸 것은 지성의 전당으로서 대학을 복원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학의 붕괴를 알리는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표절 의혹으로 그동안 퇴진 압력을 받았던 동국대 한태식 총장이 연임한다는 소문에 동국대학교 전 총학생회장 등이 시린 추위를 감내하며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표절은 지식인으로서 범해서는 안 되는 중대한 범죄다. 더욱이 표절의혹에 있는 자가 대학을 대표하는 상징의 자리에 있다는 자체가 대학을 부정하는 행위다. 불자로서도 지계(持戒)가 전제되지 않는 수행은 모래성에 지나지 않는다. 이 추운 날씨에 고공에서 농성하는 제자에 대한 자비심이 없다면 부처님의 제자 또한 아니다.

현대 대학은 진리탐구와 함께 사회봉사의 기능을 수행할 책임이 있다. 대학은 수직적으로는 진리를 후세대로 전달하여 집단학습에 따른 문명의 발전을 도모하고, 수평적으로는 진리를 퍼트려 허위의 장막을 걷어내고 사회와 국가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그렇기에 유럽 국가의 흥망은 대학의 그것과 정확히 비례한다. 이런 대학의 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한태식 총장이 연임을 포기하고, 각 사립대학 본부가 재정 손실을 감수해서라도 강사 고용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그나마 상처 투성이고 곪을 대로 곪았지만 대학을 아름다운 장으로 되돌리는 최소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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