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5년 3월, 일본 교토에 임진왜란 강화사로 다녀왔던 사명대사는 자신의 공적을 묻는 임금 선조에게 “더 바랄 것은 없다”고 한다. 조정에서 모두다 그의 공적을 인정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대답했다.
사명대사는 자신의 공적보다 노론파들이 주장하고 원하는 바를 말한다. “왕조실록을 잘 보관할 장소를 만들자”고. 아마도 그때 조정에서는 큰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을 것이다.

이 뜻밖의 주장은 실록이 5군데로 나뉘지는 계기가 됐다. 이보다 먼저 서산대사의 유물과 비석은 전국 곳곳에 나뉘어 배치됐다. 전라도 등 아전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 또 강원도 고을 현감들의 금강산 유람, 유희의 전횡을 줄이기 위해 자신의 공적보다 그들을 잘 활용하는 지혜를 보여주었다. 솔로몬의 지혜가 아니라 남북 불교교류에는 서산‧사명대사의 슬기가 더 필요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남북관계에서 신계사와 영통사 복원의 공적만으로 교류의 물코를 열겠다고 하는 것은 아전인수격의 해석일 수 있다. 불교계에게만 유리한 공적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현재와 내일의 상황을 고려해서 교류와 협력을 주문할 때이다. 타종교와의 형평성을 주장하는 것은 궁색한 변명일 수도 있다. 나는 준비를 해서 갔는데 평양에서 불교 대표를 만나지 못하고, 이웃종교에서는 만나서 얘기까지 하고 왔더라는 넋두리는 다시 이야기할 거리가 못된다.

남북 공조에 의해 북녘사찰이 복원될 적에 있을 수 있던 사안을 역지사지할 필요가 있다. 너희들은 없어서 못하잖아가 아니라 교류의 정책적 목표가 불교와 달랐던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불교계의 자랑에 표면적으로 동조하고 있을지라도 이웃종교에서는 일비하지 않고 자기 패턴대로 유지하고 있다. 교류가 활발할 때에 ‘완장을 차고’ 전면에 나서기보다 필요한 곳에 인력과 재원을 투입해 교류기반을 조성하고, 중단되면서부터는 교황청 등에 주요 인사를 파견(유학)하거나 정책적으로 외교와 교육, 공무원 사회 등을 통해 미래를 준비해온 것이다.

종단의 일시적인 정책이나 또 직책을 맡은 인물의 성향에 따라 적극성을 띄다가도 상황에 따라 바뀌는 불교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 왔다. 특히 가톨릭 등 이웃교단에서는 단체, 위원회 등을 조직화해 북측과의 교류 파트너십을 효율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물론, 교류를 담당하거나 조직을 운영하는 인사들의 관리체계도 거의 안정적이다. 필요와 상황에 따라 교류의 인물과 지원을 원활하게 가동, 언제라도 복원할 수 있는 교단적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웃종교들과 함께하면서 대의적 명분을 만들고, 우리 정부와 심지어 로마 교황청까지 교류의 창구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대형사찰을 짓고 과거의 연고권을 주장할 때에도 이웃종교에서는 이미 통일 이후의 계획까지 수립하였다. 교육과 의료 분야의 진출을 1과제로 삼고, 이어 사회간접자본 시설의 확충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자체계획을 수립하고 지금도 가다듬고 있다.

내년 초로 예정된 교황의 평양 방문이 그러한 시작이자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북미대화의 여부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남북관계를 예의주시하면서 중장기적인 교류와 협력의 테이블을 준비하는 이웃종교의 전략과 전술을 이해하는 것도 불교교류의 새로운 과제이다.

교황의 방북은 세계 톱뉴스인데 신계사 템플스테이만으로 양(兩)국을 설득해 내기는 어렵다. 남북관계에서의 현실은 냉정하다. 과거 성과와 형평성만으로 주장하는 것은 몽니로 비춰질 수 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만약에 넓은 바다를 보았다면 아마도 심장이 멈추고 말았을 것이다. 종단적 톱뉴스가 될지라도 지금 국면에서 충분조건이 안 된다. 당국간 대화와 교류 의제의 무게감이 떨어지는 내용이기도 하다.

북녘에서의 템플스테이는 조불련이 해결할 수 있는 단위도 아닐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어려운 여건이 더 많다. 최근 불교계의 요구성 제안은 묵살될 개연성이 짙다. 남측에서는 지금 제안할 수준의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북측에서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는 일인데 자꾸 요구하게 되면 두 곳에서 모두 실없는 이야기로 회자될 뿐이다.

북측은 전례와 꽌시(人脈)를 중요시 한다. 남북불교에서는 인적관계 회복을 통해 정기성을 만들어 내는 일이 관건이다. 10년 동안 단절된 교류의 복원은 팩스 한 장, 인사 한번으로 다 해결할 수 없는 무언의 간극이 존재하므로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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