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절에 가면 앞만 보고 올라간다. 목적지는 대웅전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웅전 속 부처님이다. 부처님도 최종 목적은 아니다. 진짜 목적은 부처님 앞에서 무언가를 비고 싶은 욕심이다.

향림사(주지 묘혜 스님·경북 경산). 장군산 자락에 앉아 있는 이곳에서 근대 한국불교의 대들보였던 향곡혜림(香谷蕙林·1912~1978) 큰 스님의 흔적을 찾기란 아주 쉽다. 절 이름은 선사의 법호와 법명에서 한 자씩 빌려온 것이고, 대웅전 네 기둥에 걸린 주련도 후학들에게 공부의 길을 열어준 선사의 게송이다. 그리고 향림사 주지 묘혜 스님의 불연(佛緣) 역시 향곡 큰 스님에서 비롯됐다.
장군산 자락에 앉아 마음과 맞닿아 있는 향림사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전각들이 서 있는 사찰이다. 장군산과 하나가 되어 흐르는 절묘함이며, 불교의 교리가 녹아든 수려한 건축적 조형성 등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향곡 스님의 선기가 서린 곳이니, 반듯하고 정갈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 그 모습은 탐방객에게 부처님께 욕심이나 빌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마음부터 바르게 잡기를 가르친다.
향림사가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는 바탕을 이룬 것은 묘혜 스님이 500여 평의 시주로 개산(開山)을 한 지 20여 년이 흐른 뒤였다. 향림사 초입에 걸려 있는 현수막은 올해가 향림사 개산 30주년임을 말해준다. 현수막과 마주보고 있는 경내에 들어섰다. 작은 돌들이 빼곡이 깔려 있는 공간은 넓지만 꽉 차 보였다. 그래서인지 수려한 전각이 도드라져 보이는 듯한 향림사이지만 그 본래면목은 전각 사이의 공간에 있는 듯했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어느 절의 무슨 대웅전이 보물 몇 호라느니 하는 데 집착하지 쉽지만, 향림사 경내 공간은 만큼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봄직한 공(空) 사상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사실 부처님 가르침의 근간은 공사상이다. 형태적 물성뿐 아니라 구성 원리까지 포함하는 모든 법이 ‘공’하다는 가르침이다. 공사상은 물적 형상의 고정된 상태에 집착하지 말 것을 가르친다.
이것은 조형적인 사유에서의 ‘비움’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즉 향림사의 속내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 것에서 찾지 말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빈 상태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향림사의 공간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진입공간이다. 외벽과 나란히 난 길에서 시작해 주차장까지의 공간이다. 둘째는 대웅전 영역의 바깥 경계과 대웅전 앞마당이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삼성각, 종안당, 선방 등이 에워싸며 ‘ㄷ’자형 경내이다. 그리고 셋째는 대웅전 속 부처님 앞이다. 마지막 종착점이자 새로운 시작점이다.
진입공간에서 대웅전까지는 오름 구도이다. 각 단계를 차례로 통과하여 완만한 경사를 오르는 느낌은 상쾌하다. 대웅전이라는 종점도 분명 발걸음을 끄는 매력적 요소이다. 이것마저 없으면 사찰에 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인가? 아니다. 이것은 일부일 뿐이다. 진입공간에는 일직선 점증구도를 흐트러트리는 절묘한 장치들이 숨어 있다. 길은 꺾이고 갈라진다. 굽이돌아 다시 앞을 향한다. 계단은 중요한 요소이다. 계단의 수를 흐트러트리고 서로 어긋나게 한다.
대웅전을 향해 오르기만 하는 점증 구도에는 빨리 부처님 앞에 나아가 세속적 욕심을 빌고 싶은 우리의 이기심이 녹아 있다. 절에 가서는 이래서는 안 된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산사의 참 뜻을 곡해하는 것이다. 이기심과 욕심에 이끌리니 발걸음 이유 없이 빨라진다. 진입공간은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세속적인 욕심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향림사의 공간은 그것을 묵묵히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여느 사찰처럼 ‘큰 화주’도 없이 오로지 정진만으로, 백장청규의 검약(儉約)만으로 한 사찰을 일궈낸 대중 스님들의 원력이 있었기에, 이런 공간의 구도가 자연스레 배어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향림사 경내에 서 있는 대웅전, 삼성각, 종안당, 석탑 위로 법회 때마다 찾아오는 불심 돈독한 불자들이 수없이 겹쳐보였다. “마음과 행동이 둘이 아니다. 안팎이 똑같은 사부대중이 되자”는 묘혜 스님의 가르침이 올 겨울부터 선객을 받을 선방의 선기와 함께 수승한 전통으로 이어져 장군산 자락에 법화(法花)가 만발하는 듯했다.

 

향림사 | 경북 경산 하양읍 금락1리 86 | (053)854-2178


오종욱 | 월간 선원 편집실장, gobaoou@han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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