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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당간] 선은 수행 아닌 깨달음이다- 3
2018년 10월 26일 (금) 10:09:48 김태완(무심선원장) budjn2009@gmail.com


육조혜능(六祖慧能)이 오조로부터 깨달음의 인가를 받고서 15년 동안 숨어 살다가 드디어 인종 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는 곳에서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그대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말하여 자신이 5조에게 인가받은 6조임을 드러내었는데, 이윽고 인종 법사가 물었다.
“황매산의 오조(五祖)께서는 법을 부탁하실 때에 어떻게 가르쳐주십니까?”
육조가 말했다.
“가르쳐 주시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견성(見性)을 말할 뿐이고, 선정(禪定)과 해탈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왜 선정과 해탈을 말하지 않습니까?”
“이법(二法)이기 때문에 불법(佛法)이 아닙니다. 불법은 둘 아닌 법입니다.”
인종이 다시 물었다.
“불법이 둘 아닌 법이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육조가 말했다.
“법사께서 <열반경>을 강설하시면서 밝게 불성(佛性)을 보시는 것이 곧 불법이 둘 아닌 법입니다. 예를 들면 <열반경>에서 고귀덕왕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4가지 중죄를 범한 자와 5가지 역죄를 지은 자와 일천제 등은 분명히 선근(善根)인 불성(佛性)이 끊어진 자입니까?’ 부처님이 말씀했습니다. ‘선근에는 둘이 있다. 하나는 변함없음이고, 하나는 변함이다. 그러나 불성은 변함없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으니, 이 까닭에 불성은 끊어짐이 없다.’ 이것을 일컬어 둘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는 좋고, 다른 하나는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성은 좋지도 않고 좋지 않지도 않으니, 이것을 일컬어 둘이 아니라고 합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세계를 중생은 둘로 분별해 보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 자성(自性)에 둘이 없음을 밝게 압니다. 둘이 없는 자성이 곧 불성입니다.”

오조홍인에게 얻은 육조의 선(禪)은 선정을 닦아 해탈을 얻는 것이 아니고, 다만 견성뿐이라고 한다. 견성이란 곧 둘로 나누어 볼 수 없는 불이법인 불성을 보는 것이다. 둘로 나누어 보는 분별을 벗어난 불가사의한 불이중도(不二中道)가 불성이고, 이 불성을 체험하는 것이 견성이고, 견성이 곧 깨달음을 이루는 성불(成佛)이다. 즉, 오조에게서 얻은 육조의 선법(禪法)은 불이중도인 견성성불을 뿐이고, 어떤 종류의 수행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육조단경>에 보면 육조혜능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불이중도인 자성(自性)을 가리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러면 견성 즉 자성은 어떻게 깨닫는가? 육조는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려면 모름지기 말을 듣고서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알고 자기의 본성을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즉 선지식의 설법을 듣고서 견성성불의 깨달음을 얻는 것임을 명확히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육조는 이렇게 말했다.

“어찌하여 자기의 마음에서 진여본성(眞如本性)을 문득 보지 못할까요? <보살계경>에 이르기를 ‘내가 본래 타고난 자성은 깨끗하다.’고 하였으니, 만약 자기 마음을 알아서 자성을 본다면 모두 불도를 이룰 것입니다. <유마경>에서는 ‘곧장 활짝 열려서 본래 마음을 되찾는다.’고 하였습니다. 도반들이여, 나는 오조홍인 스님이 계신 곳에서 한번 말을 듣고서 문득 깨달아 즉각 진여본성을 보았습니다. 이리하여 이 가르침을 전해 주어, 도를 배우는 자로 하여금 문득 깨닫게 하여 스스로 본성을 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면, 모름지기 바른 길을 곧장 보여 주는 대선지식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 선지식에게는 교화하고 이끌어 본성을 볼 수 있게 하는 큰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반드시 선지식의 가르침을 구하여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후 선을 공부하는 선사(禪師)들은 모두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서 즉각 깨달음을 얻었음을 <전등록> 등 관련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선은 말을 듣고서 즉각 깨닫는 것일 뿐이고, 어떤 종류의 수행을 점차 닦아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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