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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제24권 ‘석가여래성도기주’ ‘석가보’가 주된 전거
<석보상절> 학술대회(요약-3)-불교주해의 의의
2018년 10월 12일 (금) 10:16:56 최기표(금강대 교수) budjn2009@gmail.com


『석보상절』 권제3은 정반왕이 관상가를 불러 태어난 싯다르타 태자의 상을 보게 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후 성장과정과 결혼, 사문유관(四門遊觀)으로 불리는 출가의 계기, 아들 라후라의 잉태 등이 이어지고 19세에 출가하는 행적이 서술된다.

그리고 두 선정 수행자들과의 만남, 6년간의 고행, 고행을 버리고 목욕을 한 뒤 보리수 아래에 정좌하는 내 용까지 기사가 이어진다. 이는 팔상성도(八相成道)라고 불리는 석가모니 일대의 주요 장면 가운데 두 번째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룸비니에서 태어나는 모습)부터 사문유관상(四門遊觀 相:생로병사의 괴로움을 관찰하는 모습), 유성출가상(逾城出家相:성을 넘어 출가하는 모습), 설산수도 상(雪山修道相:설산에서 수행하는 모습)의 네 가지 모습에 해당한다.

『석보상절」에서는 이 행적 들마다 석존의 연령과 중국의 해당 시기 제왕 및 간지를 밝히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권3 은 석가모니 탄생 직후부터 30세까지의 행적이다. 앞 권에서 다뤄졌을 팔상성도의 첫 번 째 장면은 도솔천에서 인간계로 내려오는 모습인 도솔내의상(兜率來儀相)이다.

『석보상절』 권제6은 상두산(象頭山=伽耶山)에서 설법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라후라 와 마하가섭의 출가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어서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라 불리는 재가불자 수달타가 최초기의 불교 사원으로 유명한 기원정사를 지어서 보시하는 내용이 전개되는데 이는 전체의 반이 넘는 분량(13ㄱ~40ㄱ)이다. 몇 가지 삽화를 지나 수달타 장자는 부 처님의 머리카락과 손톱으로 탑을 세운 이야기, 죽은 뒤 도솔천에 태어난 이야기 등으로 다시 등장하니, 『석보상절』에서 매우 중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세존이 여러 곳 을 다니며 법을 설한다는 내용이 전개되는데 명칭뿐이지만 여기서 거론되는 경전은 『승만경』·『화엄경』·『수행본기경』·『대운륜청우경(大雲輪請雨經)』·『입능가경』·『십일면관자 재경』 등이다. 이어서 『아함경』 12년, 방등경 8년 및 『대방등대집경』을 설했다는 이야기와 다시 방등을 8년, 반야부 경전을 21년 설했다는 내용으로 마무리 된다.

 화엄시-방등시반야시로 이어지는 천태의 5시 교판설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권에서 다루고 있는 석가모니의 행적은 석가모니 32세부터 50세까지에 해당한다.

『석보상절』 권제9는 단 한 가지 『약사경』 만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내용 전개나 저본의 확인이 수월한 편이다. 『약사경』으로 약칭되는 한문 경전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당 시대 현장(玄奘; 602~664)이 번역한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藥師琉璃光如來本願功德經)』이 가 장 널리 읽히며 『석보상절』에서 인용한 경전도 현장의 역본이다.

 이 경전의 내용, 즉 『석보상절』 제9권의 내용은 고통 받는 중생이 동방 유리광정토에 왕생할 것을 권유하는 것 이다. 아미타불이 보살일 때 48대원을 세워 서방에 극락정토를 건설한 것과 마찬가지로 약사여래도 보살 수행을 하며 장애나 병고에서 구제하겠다는 등의 12대원을 세워 동방에 정유리 세계를 세웠으니 그곳에 왕생할 것을 석가세존이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계를 어기고 보시를 행하지 않아 고통을 받게 될 때도 약사여래의 힘으로 다시 선행을 하게 되고 고통을 벗어나게 되며, 나라에 역병이 돌거나 외침을 당하거나 태풍·가뭄 등의 재해가 일어날 때 왕이 중생들에게 자비심을 내고 약사여래를 공양하면 나라가 편안해진다는 내용도 있다. 이렇듯 『약사경』은 내세의 행복을 추구하는 정토신앙을 기본으로 하면서 도 현세의 기복, 호국, 밀교적 의례 등을 고루 담고 있는 경으로서 삼국시대부터 주요한 신앙대상이었다.

 약사신앙은 조선 초에도 이어져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중궁의 쾌유를 빌며 약사정근을 하였다는 기록이 태종 13년 조에 있고, 세종 시대에도 약사기도, 약사정 근 등이 행해진 일이 최소 4회 검색된다.

『석보상절』권제11은 석가세존이 도리천에 올라가 모친 마야부인을 위해 설법하고 돌아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석보상절』 찬술자는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배열하고 풍부하게 구성하기 위해 『석가보』의 전개 순서를 바꾸고 중간에 『지장경(地藏經)』을, 말미에 『대방편불보은경(大方便佛報恩經)』을 삽입하였다.

 즉 석존이 도리천에 올라가게 된 배경은 『석가보』의 제23편에서, 올라간 후의 첫 장면은 제16편에서 이끌어오고 마야부인 을 위해 설법했다는 서술만 있고 내용은 없으므로 설법 내용으로서 『지장경』을 인용하였다. 『석보상절』에서는 인용하면서 뺀 구절이지만 『지장경』은 “한 때 부처님께서 도리천에서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셨다”로 시작하고 있으므로 내용상 정확히 부합한다.

다만 『지장경』 전체를 인용하지는 않았고 열세품 가운데 앞의 두 품만 언해하였다. 이어 석존이 도리천에 있는 동안 부처님을 그리워한 우전왕과 바사닉왕이 불상을 조성한 이 야기를 『석가보』 제23편과 24편에서 인용하였고 석존이 인간세계로 돌아온 행적은 다시 『석가보』의 제16편에서, 돌아온 뒤 석존이 조성된 불상을 보고 불사(佛事)를 부촉한 내용 은 『석가보』의 제23편에서 이끌어 편집한 것이다.

 돌아온 직후 외도들이 부처님을 질투하자 자신의 전생인 인욕태자가 부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일화와, 모친 마야부인이 전생에 사슴의 딸로 태어나 왕비가 되어 5백 왕자를 낳고 이들을 모두 출가시킨 녹모부인이었음을 밝히는 내용이 『대방편불보은경』 권3에서 발췌되어 마지막에 놓인다.

『석보상절』의 권제13과 19, 20과 21은 모두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을 언해한 것으로서 경문을 풀이하는 협주로 이용된 불전은 송대 계환(戒環)이 저술한 『묘법연화경해(妙法蓮華經解)』이다.

『석보상절』 권23은 석존이 열반에 드는 것과 다비 후 사리탑을 조성하는 내용까지 전개된다. 팔상 가운데 마지막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사라수가 쌍으로 서있는 숲에서 열반하시 는 모습)에 해당한다. 이곳의 불전 인용 양상을 보면 『석가보』의 전개 순서를 대체로 따르고 있으나 사이사이에 더욱 상세히 묘사하고 싶은 부분은 『대반열반경후분』을 이끌어 오 고 있다. 분량으로는 『대반열반경후분』이 『석가보』보다 한결 많다.

마지막 권인 『석보상절』 제24는 부처님 입적 직후 마하가섭을 중심으로 경전 결집을 하는 내용과 세월이 한참 흐르고 아쇼카왕이 8만4천 탑을 조성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전술한 『석가여래성도기주』와 『석가보』가 주된 전거이다.

이 권에서는 이번 주해에서 저본 찾는 작업이 많이 진척되어 선행 연구에서 미상으로 되어 있거나 부정확하게 찾아놓은 부분이 모두 『석가여래성도기주(釋迦如來成道記註)』에서 인용된 것임을 밝혀 놓았다. 이 책은 『고려대장경』은 물론 『대정신수대장경』에도 없고 『속장경』에 실려 있는 문헌이어서 찾기가 용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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