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보상절』은 최초의 한글 활자본이고, 최초의 한글 산문작품이며, 최초의 언해불전이 다. 또한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시대에 편찬된 석가의 일대기이기도 하다. 이상과 같은 문 화사적 의의로 인해 『석보상절』은 일찍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서지학·국어학· 국문학·불교학 등의 여러 분야에서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그 중에서도 중세국어의 실상을 구명(究明)하기 위한 국어학적 연구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졌고, 본격적인 연구의 출 발이 되는 해제 역시 주로 국어학자들에 의해 작성되었다.

『월인석보』는 세종이 『석보상절』을 보고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본문으로 삼고, 『석보상절』을 해설 삼아 합편한 것으로, 첨삭 및 증수의 과정을 거쳐 1459년(세조 5)에 간행되었다. 총 25권 중 권3·5·6·16·24를 제외한 20권이 전하고 있다.

『석보상절』과 『월인석보』의 현전본 중에는 그 저경과 내용이 유사한 권차가 다수 보이고 있다. 저경과 내용이 대응되는 『석보상절』·『월인석보』의 존재와, 세종 당대에 간행된 『월인천강지곡(상)』에 其194까지의 노래가 실려 있다는 사실은, 『석보상절』에서 『월인석보』로 합편되는 구체적인 양상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현재 전하지 않는 『석보상절』의 주요 내용 및 저경을 추정할 수 있게 한다. 월인부와 상절부로 구성되어 있는 『월인석보』는, 세종 당대에 간행된 『석보상절』 및 『월인천강지곡』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특히 상절부와 협주에서 많은 변개가 이루어졌다. 『석보상절』의 저경이 다시 번역된 결과, 표기법은 물론이고 어휘·문장 구조·번역 양식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석보상절』에 없던 여러 저경과 협주가 새로 첨가된 것이다. 그러나 『월인석보』에 새로운 노래가 추가되지는 않았고, 상절부의 변개 또한 월인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현재 전하지 않는 『석보상절』 권차의 저경은 최소한, 『월인천강지곡(상)』 및 해당 『월인석보』의 권차에 수록된 월인부 관련 삽화의 저경에 대응될 수 있다고 여겨진 다. 물론 현전 『석보상절』 권11과 『월인석보』 권21의 내용 및 저경이 유사하고, 『석보상 절』 권13~21과 『월인석보』 권11~19의 저경이 『법화경』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석보상절』 과 『월인석보』의 권차는 권10까지만 동일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전하지 않는 『석보상절』 권14~18은 『법화경요해』의 비유품 제3~분별공덕품 제17 를 수록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화성유품 제7을 노래하고 있는 <월인천강지곡> 其283~293와 견보탑품 제11의 내용인 其296~302의 사이에 실린 其294·295는, 『법화경』에 없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 주목된다. 『월인석보』 권15의 1ㄱ3∼2ㄱ2에 수록되어 있는 其294·295는, 아래의 인용문에서 보듯, 『석가보』 석가동삼천불연보 제6이 그 저경인 것이다.

『석보상절』의 저경은 그 성격상, 위에서 제시한 것처럼 크게 불전(佛傳)·대승경전·사 전(史傳)·논서·위경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불전과 대승경전이 저경의 중심을 이루고 있고, 위경인 『안락국태자경』과 『목련경』 또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석가보』와 함께 『석보상절』 저경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대승경전은, 그 내용 및 성격이 다양하다는 특징을 보인다. 『법화경』은 교리·신앙의 측면에서 모두 숭앙되는 대표적 인 대승경전이고, 『아미타경』·『관무량수경』·『약사경』·『지장경』은 교리적인 측면보다 는 신앙적인 면에서 신봉되는 경전들이며, 『관불삼매해경』·『대운륜청우경』은 밀교적 성 격의 경전이다. 그리고 『대방편불보은경』은 윤리적인 성격, 『미증유인연경』·『대반열반경 후분』은 사전(史傳)의 성격을 띠고 있다. 다양한 성격의 이러한 대승경전 중, 석가일대기의 맥락에서 벗어나 있는 『법화경』과 신앙적 성격의 『아미타경』 등이 『석보상절』에 큰 비중으로 편입된 이유는, 소헌왕후의 추천 (追薦)이라는 『석보상절』의 편찬 동기에서 찾을 수 있다.

<법화경>은 그 교리·신앙상의 중요성으로 인해 사경불사(寫經佛事)에 가장 많이 쓰인 경전이고, 『아미타경』·『관무량수경』·『지장경』 등은 모두 인간의 사후(死後) 문제와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 경전은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사경(寫經)되었고, 세종의 추천불사를 위해 조성된 사경 목록에서도 확인된다.

『석가보』·『법화경』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대방편불보은경』은, 그 이름에 서도 알 수 있듯이 ‘보은(報恩)’에 관한 이야기와 교설로 되어 있다. 『석보상절』 권11과 『월인석보』 권21에 수록된 논의품(論議品) 제5·악우품(惡友品) 제6은 석가가 전생에 중생에게 보시하고 부모께 효도한 이야기를 통해 석가가 성불한 이유가 보시와 효도에 있음을 강 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경전의 중심 내용에 해당하는 『월인석보』 권20 소재의 효양품 제2에서 석가는, 자신이 지금 부처가 된 것은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 중생과 부모 의 은혜를 알고[知恩], 고행(苦行)·인욕(忍辱)·보시·효도를 통해 은혜를 갚았기[報恩] 때 문이라고 설하고 있다.

그런데, 보시·대승적 보살행 효도는 각각 『태자수대나경』·『안 락국태자경』·『목련경』의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이들 불전(佛典)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보시’·‘보살행’·‘효도’는, 『대방편불보은경』의 효양품 제2에서 제시하고 논의품 제5·악우품 제6의 본생담을 통해 예증하고 있는 ‘보은’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위인 것이다.

곧 이 네 불전은 보은의 강조와 보은을 위한 방법의 제시라는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일치함을 보인다. 불교의 윤 리사상인 ‘보은’은 초기 불교의 아함경(阿含經)에서부터 설해진 중요한 개념으로,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보는 불교의 보편적 윤리관이 충효와 같은 특수한 인륜을 발생시킬 수 있는 통로라 할 수 있다.

결국, 『석보상절』은 신앙적·기복적 목적 외에도 백성들에 대한 교화의 필요성으로 인해 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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