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5. 부처님이 사위국(舍衛國)에 계실 때에 성 안에 80세가 다 되어가는 한 바라문이 있었다.
재산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부자였지만, 성격이 완고하고 진리에 어두워서 교화하기 어려웠다. 도리와 덕을 알지 못하고, 무상함도 헤아리지 못했다. 좋은 집을 새로 지었는데 앞 채, 뒤 채, 시원한 누각과 따뜻한 거처 등 동서의 곁채가 수십 채가 되는 굉장한 집이었다.
마지막으로 공사가 뒤채의 차양만이 남아있었다. 그 때도 이 늙은 바라문이 직접 그 일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부처님이 도안(道眼)1)으로 그 노인을 보니 하루가 마치기도 전에 명을 다하게 되었는데 스스로 알지 못하고 조심성 없이 행동하며, 야위도록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매우 가여웠다.
부처님이 아난을 데리고 함께 그 문에 들어가 늙은 바라문을 위로하셨다.
“피곤하지 아니한가? 지금 그 집을 지어서 무엇에 쓸 것인가?”
늙은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앞채는 손님을 대접하고, 뒤채는 저의 공간이고, 동과서의 두 곁채는 자식과 재물, 노비가 있을 곳이며, 여름에는 시원한 누각에 오르고, 겨울에는 따뜻한 채에 들어갈 갈 것입니다.
부처님이 늙은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숙덕(宿德)2)을 오래 들어 이야기를 나눌까 생각했는데, 마침 인생에 유익한 게송이 있어서 말해 주고 싶다. 일을 잠깐 멈추고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는가?”
늙은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지금 많이 바빠서 앉아서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후일에 다시 오시면 공손히 잘 대접하고, 그 말씀하시는 요긴한 게송을 듣겠나이다.”
부처님이 게송을 즉시 말씀하셨다.
“재물이 있고, 자손이 있다는 것에 급급한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나 조차 나가 아니거늘 자손과 재물은 무슨 걱정이리오. 여름에는 여기에 머물고, 겨울에는 저기에 머문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생각은 많으나 다가올 일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어리석음 속에서 스스로 나를 안다면 어리서음으로 지혜를 이기고자 하는 것이니 이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늙은 바라문이 말하였다.
“그 게송을 잘 말씀하시기는 하였으나 지금 참으로 많이 바쁘니 후에 다시 와서 말씀해 주시옵소서.”
부처님이 슬퍼하고, 탄식하면서 그 곳을 떠나셨다.
부처님이 떠난 후에 늙은 바라문이 지붕서까래를 건네주다가 서까래가 떨어져 머리를 쳐서 즉시 죽었다. 가족들이 큰 소리로 통곡하니 사방의 이웃들이 매우 놀라 쫓아왔다. 부처님이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 일이 있었다.
부처님이 마을 입구에 도착하시니 바라문 수십 명이 부처님께 물었다.
“어디서 오십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 죽은 늙은 바라문의 집에 가서 그를 위해 설법을 했는데, 나의 말을 믿지 않고 무상의 도리를 알지 못하고 홀연히 죽었다.”
그리고 모든 바라문을 위해서 그 앞의 게송을 다시 말씀하시니 바라문들은 듣고 나서 크게 환희하여 곧 깨달았다.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516.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정사(祇樹精舍)에 계시면서 천인(天人), 제왕(帝王), 제신(諸臣), 백성(民) 등 모든 제자들을 위해 감로법을 설하고 계셨다. 그 때에 먼 지방에 사는 장자인 바라문 7명이 부처님의 처소에 와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우리들은 먼 지방의 사람입니다. 부처임의 성스러운 교화를 듣고 오래부터 귀의하고 싶었지만 모든 장애가 많은 까닭에 이제 와서 성안(聖顔)3)을 친견합니다. 원컨대 제자가 되어 모든 괴로움을 없애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그 뜻을 즉시 허락하고 모두 사문이 되어서 7명을 한 방에 함께 지내게 하셨다. 그 7명은 부처님을 친견하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지만, 무상의 도리를 생각하지 않고, 방 가운데 함께 앉아서 세상의 일만을 생각하고 수근 대고 크게 웃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성패(成敗)를 헤아리지 못하고, 명(命)이 다하기를 재촉하며 단지 함께 히히덕거리며 마음을 삼계(三界)4)에 미혹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부처님이 그들의 수명이 다해가는 것을 아시고 가엾게 여기시어 그 방에 들어가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도(道)를 배움에 있어서 마땅히 깨달음을 구해야 하거늘 어찌 크게 웃고 있는가? 모든 중생이 스스로 다섯 가지를 믿고 있으니, 첫째는 젊음을 믿음이오. 둘째는 아름다움을 믿음이오. 셋째는 힘이 세다는 것을 믿음이오, 넷째는 부유함을 믿음이오. 다섯째는 귀한 성품을 믿음이다. 너희 7명은 수근 대며 크게 웃고 있으니 장차 무엇을 믿고 그러하는가?”
그리고 즉시 게송을 말씀하셨다.
“무엇이 기쁘고 무엇이 즐거운가. 온갖 생각 언제나 치열하여 마음을 깊이 가리어 어둡게 하니, 선정(禪定)을 구함만 같지 못하느니라. 몸의 형상을 보고서 이것에 의지하여 편안함을 위하다가 생각이 번거로워 병들고 보면 그 몸이 진실이 아님을 어떻게 알겠는가, 늙으면 몸이 쇠하고 병들면 광택이 없어지며, 가죽은 늙어지고 살은 오므라들어 죽은 목숨이 가까이 다가온다. 몸이 죽어 넋도 따라 떠나면 마부가 마차를 버림과 같아서 살은 썩고 뼈 또한 흩어지나니 그 몸을 어찌 믿을 것인가.”
이 게송을 설하시니, 일곱 비구는 마음이 해탈하고 망상이 그쳐서 즉시 부처님 앞에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었다.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각주
도안(道眼): 수행에 의해 얻어진 뛰어난 눈.
숙덕(宿德): ①오래된 덕망(德望)  ②전세(前世)에서 쌓은 복덕(福德)  ③학덕(學德)이 높은 노인(老人)
성안(聖顔): 거룩한 부처님의 얼굴.
성패(成敗): 우주만물의 成住壞空, 生住異滅, 生老病死. 무상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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