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암 선원 불사중.

하루는 부친이 문경의 갈평토굴로 찾아왔다. “모친이 가슴앓이 병이 심해 위독하다. 막내를 보고 눈을 감고자 한다”는 전갈이었다. 스님은 부친에게 “집을 떠나온 출가자입니다. 부모 형제를 위해서는 그쪽으로 한 발도 옮길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전쟁에 두 아들을 잃고, 막내아들을 절로 보낸 모친은 그리움에 속병이 깊어졌을 터였다. 결국 부친만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조카에게서 편지가 왔다. “작은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스님은 그 편지를 아궁이에 넣어버렸고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다. “청상과부가 외아들이 벼락을 맞아 죽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만큼 무서운 각오가 아니면, 이 공부할 생각 마라”던 성철 스님의 말씀을 뼛속에 새기고 살 때였다.

소풍가듯 떠나 온 길, 열네 살 출가해 ‘내일 오마’하던 아버지를 기다리며 3년 동안 울었던 동승이 ‘모친의 죽음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수행에 전념’해 종정의 반열에 올랐다. ‘절구통 수좌’로 불리는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의 이야기이다.

《누구 없는가》는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의 자서전이다. 상좌 원철 스님과 인연 깊은 박원자 씨가 법전 스님의 구술을 정리했다. 7년여의 여정이었다. 마지막 2년여는 본격적으로 책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공들인 티가 역력하다. 한국불교 대표종단의 종정인 법정 스님의 수행과 깨달음을 좇는 삶의 이야기가 소설책 읽듯 흥미진진하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밤새 읽어도 졸리지 않는다. 원철 스님의 말처럼 “독자들을 배려한, 대중성을 충분히 반영”했다. 해설은 짧게, 문장은 가능한 쉽고 친절하게 정리했다. 불교용어, 주요 인물, 개념, 경전 등 너무 친절히 다루려던 설명은 부록으로 담으려다 뺐다. 자서전 펴낸 출판사 ‘김영사’ 홈페이지를 통해 부록은 서비스로 제공한다. (www.gimmyoung.com/truth)

그렇다고 ‘사실’을 왜곡하지도 과장하지도 않았다. 모든 일을 교차 확인했다. 법어집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의 전반부 법전 스님의 행장에서 빠진 부분과 잘못된 부분을 일일이 바로 잡았다. 원철 스님은 “치밀하지 못했던 부분을 바로잡았다”고 했다. 종정 법전 스님의 자서전 《누구 없는가》는 그렇게 법어집의 내용을 바로잡고 대중이 읽기에 재미없고 지루한 틀을 깨고 대중에게 다가갔다.

살아있는 동안 자서전을 낸 스님은 드물다. 원철 스님은 “어른 스님들이 열반 하신 후 다른 이들의 눈을 통해 본 스님들의 행장과 평전을 보아왔다. 하지만 이설과 이견, 작가의 주관이 담긴 평전으로 문제 소지가 많다. 사실 확인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 시봉했던 스님들이 생전에 큰 스님의 삶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아 책을 내게 됐다”고 출간이유를 설명했다.

《누구 없는가》는 법전 스님 개인 행장에 한국근현대사는 물론 불교사마저 그물처럼 얽혀 있다. 세수 85세의 종정 스님의 회고는 70년간 절집에서 살며 수행한 기록에 개인적 삶은 물론 세상사마저 담았다. 원철 스님은 “개인사를 통해 역사성과 시대성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 성철 스님과 함께.

성철 스님이 법전 스님의 깨달음을 인가하는 이야기(‘인가’-책 127쪽)가 궁금한가? 불교를 모르는 이라면 절집에서 깨달음을 좇고 이에 대한 결과는 어떻게 보여지는지 알고 싶다면 꼭 찾아봐야 한다. 흥미 있는 ‘전투신’이 펼쳐진다.
수도암 시절, “제가 오면 성불한 줄 아시고 안 오면 못 한 줄 아십시오.”라고 편지 한 통 달라 남기도 산 속으로 가출했다가 사흘 만에 돌아온 상좌의 이야기에서는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법전 스님의 자애스런 아버지의 모습과 수도자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다시금 생각나게도 한다.

《누구 없는가》는 수행자로서 올곧이 살아갈, 구도적 삶을 좇을 청안납자를 찾는 ‘종정’의 애틋함이 담긴 호소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불조의 마음을 이을, 수행에 미친 눈 밝은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염원이 제목으로 뽑혔다. 성철 스님으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스스로 잇고 이를 다시 전수할 ‘제자’를 찾는 법전 스님의 말은 간절하다. ‘한국불교의 미래를,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 자리할 인재를 찾는 선지식의 마음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법전 스님/원철·박원자 기획진행/김영사/14,000원
서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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