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국대 일산병원 11층에 23일 나타난 설정 스님의 상좌 주경 스님. 주경 스님은 "설정 스님 기자회견은 사실이 아니며 입장문은 도용된 것"이라고 주장했다.(사진=불교닷컴)

탄핵된 조계종 35대 설정 총무원장이 자승 전 총무원장을 향한 반격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인의 장막에 갇혀 자신의 입장을 세상에 알리는 데 실패했다. 기자회견이 막혔고, 총무원장 불신임 관련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지만 실행하기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23일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려던 설정 전 원장은 수덕사 산내 암자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련사 감금 논란에 이어 수덕사 감금 논란이 일고 있다.

설정 전 원장은 총무원장 불신임 인준 동의를 위한 원로회의 직전 총무부장과 호법부장 서리 등을 다급히 임명하려다 측근들에 막혔다. 총무원장 직인이 보관된 금고 비밀번호가 바뀌고, 담당자는 사라졌다. 결국 법련사로 이동한 설정 전 원장은 반격의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상좌들과 총무원 부실장, 국장, 재가종무원에게 둘러싸인 설정 전 원장은 고립무원에 빠졌다.

결국 원로회의가 총무원장 불신임안을 12대 7로 인준하자, 설정 원장은 동국대학교 일산병원으로 몸을 옮겼다.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사퇴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다시 산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발언한 것은 자승 전 원장 세력의 조직적인 탄핵 몰이에 끝까지 저항하는 메시지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일산병원에서 설정 전 원장은 반격의 기회를 엿본 것으로 확인된다.

설정 전 원장은 23일 오전 11시 20분께 일간지와 방송사, 교계 언론에 긴급기자회견을 예고했다. 처음 오후 2시로 알려진 긴급기자회견은 3시로 바꿨다. 기자회견 예고는 설정 전 원장과 수시로 연락하는 A 보살(우바이)과 B 스님 등 두 가지 경로 통해 전파됐고, C 스님도 설정 전 원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한 게 맞다고 확인했다.

23일 오후 2시께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11층에는 <불교닷컴>을 비롯해 몇 명의 교계 언론 기자, MBC, JTBC 등 취재진이 도착했지만, 병원 측은 설정 스님이 입원한 것으로 추정되는 병동 측 복도를 차단하고 기자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병원 측 경비원 4~5명과 수덕사 재적승으로 보이는 스님 등이 대기하고 있었다.

설정 전 원장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10개월 동안 재임하면서 겪은 자승 전 원장과 기득권세력에 대한 폭로와 종단개혁 의지, 참회와 대중 호소, 총무원장 불신임에 대한 법적 대응 등을 말하고자 했었다.

<불교닷컴> 취재진은 동국대 일산병원으로 가던 오후 1시 20분께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명의의 기자회견문을 입수했다. '종도에게 고합니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문에는 자승 전 원장이 자신에게 "16차례나 찾아와 총무원장 선거에 나서 달라고 요청했던 이야기와 이를 뿌리치지 못하고 출마해 지금까지 겪은 고통"을 담고 있었다. 또 “재임 10개월을 암흑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술수와 압박” 속에서 보낸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종권 연장을 위해 모든 종정 기구를 총 동원하여 합법이란 허울 속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자승 전 원장을 수괴로 한 권승들의 카르텔을 부셔버리지 못한다면 조계종의 앞날은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격앙된 어조를 담았다. 이 문건이 이날 오후 2시 40분께 교계단체 한 재가불자를 통해 각 언론사에 전달됐다.

기자회견문이 언론사에 뿌려지자 설정 전 원장의 상좌 주경 스님이 조계종 홍보국을 통해 진화에 나섰다.

주경 스님은 “종단을 지속적으로 적폐라 주장하며 훼불하고 있는 해종세력들이 이제는 큰스님의 명의까지 도용하기에 이르러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면서 “저는 금일 설정 큰스님과 한시도 떨어진 적 없이 지근에서 모시며 모든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던 바, 좀 전에 배포된 큰스님 도용 글에 대해서 큰스님께서는 내용을 보신적도 배포에 동의하신적도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전했다.

오후 2시 50분, 동국대 일산병원 11층에 주경 스님이 등장했다. 주경 스님은 기자회견 취재를 위해 대기하던 기자들에게 “큰스님께서 퇴원하신 게 언젠데 여기들 있나. 기자회견은 사실이 아니다. 스님은 수덕사로 가셨고, 하안거 해제를 준비하고 계신다”고 했다. 이어 복도에서 대기하며 기자들을 주시하고 있던 병원 관계도 주경 스님이 지나간 뒤 “설정 스님께서 퇴원하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제 퇴원을 하셨나”라는 물음에는 “퇴원하셨다는 말씀 밖에 드릴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11층 설정 전 원장이 입원한 것으로 알려진 병실로 향하는 철문은 여전히 굳게 잠겼고, 경비원들도 철수하지 않고 있었다.

긴급 기자회견을 알렸던 A 보살과 B 스님, 이를 확인해 줬던 C 스님까지 연락이 두절됐다. 설정 전 원장의 휴대전화는 ‘착신 금지’상태였다. 누군가 설정 스님의 휴대전화를 빼앗았다고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기자들은 설정 전 원장의 행적을 찾아 병원을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설정 전 원장이 주경 스님 등 상좌들을 피해 병원에서 탈출했다는 설과 상좌들이 수덕사로 데리고 내려갔다는 설이 흘러 나왔다. 오후 3시 30분께 설정 전 원장이 입원했던 병실 쪽 철문이 개방됐고, 병실은 불이 꺼진 채 굳게 잠겨 있었다. 결국 설정 전 원장의 기자회견은 무위에 그쳤다.

설정 전 원장은 주경 스님의 말처럼 기자회견을 원치 않았고, 기자회견문이 도용됐던 것일까. 주경 스님의 주장은 취재진이 확인한 것과 전혀 달랐다. 주경 스님은 “좀 전에 배포된 큰스님 도용 글에 대해서 큰스님께서는 내용을 보신적도 배포에 동의하신적도 없다”고 주장하고 기자회견 계획도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불교닷컴> 취재결과 설정 전 원장은 A 보살과 B 스님을 통해 기자회견 준비를 요구했고, 공지하도록 했다. 또 언론사 등에 기자회견문을 배포한 교계단체 관계자 D 씨 역시 “설정 총무원장과 두 차례나 직접 통화해 의중을 확인했고, 주경 스님의 주장이야 말로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D씨는 “나도 한 스님으로부터 기자회견문을 전달받아 언론에 배포하는 역할을 맡았다”며 “글만 봐서는 설정 스님의 의중이 맞는지 확인이 어려워 총 두 차례에 걸쳐 스님과 직접 통화를 했다. 설정 스님이 기자회견문이 본인의 주장과 일치하며 기자회견을 할 의사가 있음을 거듭 밝히셨다. 지금 상황은 기자회견을 원하는 스님을 상좌 등이 막아선 형국”이라고 했다. 또그는 설정 전 원장이 기자회견 예고와 문건을 여러 단계에 걸쳐 여러 방면으로 전달한 것에는 "주변의 방해를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했다.

설정 전 원장이 자승 전 원장 등 기득권 세력에 배신감을 느껴 탄핵 이후라도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려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설정 전 원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한 E 씨는 <불교닷컴>에 “원장 스님은 자승 전 원장과 기득권 세력에 분명하게 대응하고 싶어 했다”며 “총무원 부실장을 비롯해 재가종무원까지 자승 전 원장의 영향력 아래에 있고, 상좌들마저 등 돌리면서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었지만, 자승 전 원장의 행태에 크게 실망해 이에 대해 폭로하고, 여러 의혹으로 신뢰를 잃었지만 종단 개혁 의지만큼은 분명하다는 뜻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E씨는 “일산병원에서 기자회견을 하려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내게 전화 와서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씀도 하셨고, 기자회견문을 보내와 수정해 보내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병원에서 발표하려던 기자회견문은 제가 작성하지 않아 평소 문투와 다르지만, 언론인 출신의 F 씨와 한 스님, 그리고 A 씨가 조율해 만들었고, 원장 스님도 동의하신 것”이라며 “주경 스님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며 “내가 이런저런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조언하자 원장 스님은 그런 이야기는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으면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이날 말씀하시려던 것에는 자승 전 원장에 대한 폭로도 있었다”고 했다.

E 씨는 "원장 스님과 통화하던 휴대폰이 불통이다. 착신 금지로 나온다. 상좌들과 수덕사 대중들이 스님의 휴대폰을 가져가 이렇게 만든 것 같다"며 "원장 스님 상좌들이 이렇게까지 할 줄 누가 알았겠나"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 예고와 무산 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은 설정 전 원장이 자승 전 원장에 대한 큰 배반감에 폭로성 기자회견을 하려 했다는 점이다.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새나갔고, 상좌와 수덕사 대중들이 나서서 회견을 막고 설정 전 원장을 퇴원시켜 수덕사로 데려간 것으로 보인다.

중앙종회 불신임, 사퇴발표에 이어 종회 인준이라는 속된 말로 '확인사살'까지 당한 설정 전 원장의 기자회견 꿈은 무산됐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임명한 부실장, 국장 심지어 상좌까지 등을 돌리거나 자승 전 원장의 꼭두각시가 되는 처참한 장면을 목격한 설정 스님이 이대로 가만히 있을지, 아니면 새로운 출구를 찾아 대중 앞에 다시 나설지 주목된다.

* 이 기사는 업무제휴에 의해 불교닷컴이 제공했습니다.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